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저 입술이 낯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8
박상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이건 문제가 있어.’라고 의문을 제기하게 된 원인은 수시 원서를 접수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어느 학과에 지원했는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도중, 한 아이가 말했다. 자신은 딱히 목표로 하는 학과가 없어서 그나마 이름 있는 대학의 경쟁률이 제일 낮은 학과에 지원했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 옆에 있는 아이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말을 이었고 그 옆에 앉아있는 아이도 맞장구를 쳤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정말 소수의 아이를 빼놓곤 대다수의 아이가 ‘그다지 원하지 않는 과이지만 합격만 한다면 가서 수업은 들을 거야’라는 식의 마인드로 수시에 지원했다고 얘기했다. 그 순간 혼란스러웠다. 나는 정말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더 깊게 탐구하고자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인데, 아이들은 왜 대학에 가려는 걸까? 확고한 목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스물일곱 살, 방황하고 있는 청년이다. 어둠을 좋아하고 깨어있기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나와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부분 고등학생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그는 학교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대도시의 광장 한복판에 뛰어들어 촛불을 켰고, 일상생활에서 음식의 원산지를 직접 검열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눈을 뜬 학생이었다. 친구들이 암기공부를 하느라 급급해할 땐 시를 낭송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의 독백이 이야기해주듯, 남들과는 ‘다른’ 삶을 택한 그와 그의 친구들의 삶은 달라지지 못했다. 같은 길을 선택했다면 평범함이라도 추구할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머물러있는 스물일곱 젊은 청년들의 넋두리는 광장을 수놓던 촛불의 열기를 무색게 할 정도로 차갑다. 뉴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에 아주 조금이라도 픽션이 가해져 있기를……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바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냉담했다. 스무 살이라는 경계와 마주 선 내게 이것이 현실이라는 듯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8년 후,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소설은 기성세대로부터 전해 들은 역사를 바탕으로 직접 역사 속 사건의 주체가 되었던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세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다. 결국엔 이러한 관계에서 출발해 형성된 ‘나’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청춘을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나는 다시 한 번 내 친구들을 떠올렸다.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불행한 건 아니다. 반대로, 남들보다 일찍 꿈을 찾았다고 해서 삶이 꼭 행복해질 거라고 보장할 순 없다. 친구들과 나는 이제 막 방황을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더 넓은 세상에 발을 디딜 때쯤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는 모르겠다.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할 수도 있고 몽상가의 길을 걸을 수도 있겠다. 내 친구들은 그1, 그2, 그3이 되어 이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연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다는 중2병 시기였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교실 뒤편에서 담배를 주고받는 남자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본 아이가 교실에 나밖에 없어 재빨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했던 것일까? 무슨 계기로 어떻게 담배에 손을 대게 된 것일까.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성돈이가 무척이나 익숙했다. 이름이 낯익은 게 아니라, 말투, 행동이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인지 성돈이가 그 친구들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청소년이 흡연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는 것.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알아내야 하는데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 이것이 성돈이와 요즈음 아이들이 겪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성돈이가 담배에 손을 대기까지의 원인은 크게 준영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상황 자체에 모든 원인을 전가하고 싶진 않다. 분명, 친구가 아닌 다른 외적인 요인이 성돈의 목에서 갈증을 일으켰을 것이다. 목구멍에서 들끓는 진득한 가래. 바로 가족이었다.

주식과 헤픈 씀씀이로 돈을 날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자주 갈등을 겪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어머니,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누나와 열여섯 살의 나이에 담배 없이는 하룰 견딜 수 없는 아들.

이 가족을 보고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지만, ‘불행해 보인다’라고 말할 사람 또한 몇 명이나 있을까? ‘비정상적인 가족이 아닌가요?’라고 말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요즈음 내 주변에서 이러한 가정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책, 신문기사, 주변 지인들. 흔히 듣는 가정문제이다. 분명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고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분명한데, 이 불안정한 분위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연한 모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별 탈 없는 가정의 형태로 말이다.


소설에선, 이런 방식으로 구조화된 가정을 성돈을 불안하게 하고, 담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설정했다. 믿고 의지해야 하는 집안의 어른과 형제가 어느새 그에겐 귀찮고 짜증 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입을 열기만 하면 성돈의 귀에 꽃인 가시 돋친 말들. 어찌 보면 담배가 성돈의 짜증과 분노를 해소해주는 돌파구가 된 셈이다. 단지 그 돌파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소설 초반에서 중반까지, 그에게 흡연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가?


그러나 때때로 백 마디의 설명과 기술보단,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청소년일 때는 그 타격이 엄청나다. 준영이의 경우가 성돈에겐 그랬다. 멋있어 보이는 준영을 따라 담배를 시작했으나, 생사를 넘나드는 준영을 보며 갑작스러운 허탈감이 희뿌연 연기처럼 성돈을 에워쌌을 것이다.


갈수록 쉽고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폐가 검게 타버릴 때까지 속으로 섞이는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나도 열여섯을 겪어봐서 알고, 10대의 끝을 달리고 있어서 더욱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우리를 훈계하려 하고 우리가 자신을 지배하려하기도 전에 주도권을 빼앗아 버린다. 청소년  이라는 이유로,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내가 자신을 절제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성돈이처럼 담배를 찾는다. 핸드폰을 찾고, PC방을 찾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톡톡톡, 보풀랜드입니다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부터 인류는 많은 것을 연구하고 발견해왔다. 그만큼 우리가 알아내야 할 수수께끼도 많아졌고, 그 수수께끼를 해결할 방법들은 수없이 발명되었지만, 과연 그 방법이 도덕적인지, 정당한지에 대해선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톡톡톡’에서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낙태를 반대한다면, 왜 반대하는 것이고 찬성한다면 왜 찬성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두 의견의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노랑 모자는 소설 뒷부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던 아기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동굴, 보풀 아지트에서 지내는 노랑 모자의 장면을 읽고 참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정말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의 영혼이 한 군데에 모여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지냈던 날들을 하루라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아기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지냈던 날들만을 기억하는 것이다(심지어 그것이 그들 기억의 전부이다).


사실, 이 책을 덮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낙태하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낙태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보낸다 해서 그들의 변심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는 내가 아니므로 직접 개입하기에도 까다로운 문제이다. 그저 제삼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끝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 우리가 비판할 권리는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라는 문장 자체에는 결점이 없지만, 그 문장에 어떠한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판가름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상대방이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었다면, 그 상황에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취한 정당방위는 저 문장 때문에 ‘매우 도덕적이지 못한 살인 행위’로 간주되어 버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문제를 단순히 저 한 문장으로 판결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기에 아직도 충돌은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책을 읽고 울어본 적은 ‘톡톡톡’이 처음이다. 분명, 결말에선 엄마와 재회한 노랑 모자를 묘사해주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두 문장, ‘모든 아이들은 어디선가 태어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가 담담하게 슬픔을 부각해준 것 같기도 하다.

애기 보풀들이 바다의 파도 소리를 자장가로 삼을 때, 나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로 삼았고 애기 보풀들이 평생 꼬마로 살아갈 때 나는 이미 열여덟 살이 되어버렸다. 분명, 판타지와 결합한 허구적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왜 나는 아직도 보풀 아지트와 슈가맨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 것일까. 그건 아마, 실제로 그 동굴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굴을 보고 지나간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 속에서 은연히 은폐시킨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므로, 동굴이 존재하는 한 우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기들을 위해 생각해봐야 한다. 달림의 언니가 아기를 낳지 못한 이유가, 단지 책임질 수 없는 나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미혼모, 달림의 언니와 상관이 없어-라고 단정 짓는 우리가 요요를 동굴 속에 가둔 것은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 박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1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간고사를 약 2, 3주 앞두고 반 친구가 건넨 말이 있었다. 이렇게 공부해봤자 미래도 보이지 않는데, 얼른 유럽에 가서 치킨 장사를 하자! 고. 물론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았고, 또 현실상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의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친구의 말인즉슨, 결정과 동시에 내일부터 바로 지긋지긋한 교복을 벗어 던지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창업을 준비해 나가자는 거였다. 그때가 3월 말, 4월 초였던 것 같은데 5월이 된 지금, 우리는 중간고사도 무사히 보고 수학여행까지 행복하게 다녀왔다. 점점 날씨가 더워지니 하복을 미리 꺼내놔야 하나...? 하는 이야기까지 오고 간다. 


10대 창업 이야기, 시크릿 박스라는 책을 읽으라고 재촉한 것도 그 친구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도중에 피식피식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10대 창업. 이 말만 들어도 나는 가슴이 설레고 당장에라도 교과서는 집어 던지고 싶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해야 할 일은 공부라는 걸 잘 알기에 ‘창업’은 우리에게 무모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매체에서 성공한 10대 창업가, 쇼핑몰 운영가, 등등 타이틀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진짜 대단한 선택을 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처음엔 순탄하게 가는가 싶다가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소용돌이에 자주 휩싸인다. 그중에는 어른들의 달콤한 유혹도 있고, SNS라는 매체가 그들에게 남긴 상처도 있고, 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학생이기에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시련은 어느 주인공에게나 닥쳐오는 필요조건이지만 ‘창업’이라는 상황이 더 극단적으로 시련을 보여준 것 같았다.

창업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만큼의 책 임또한 져야 한다는 것이 10대로서는 제일 큰 고려사항이다. 그래서 부모님들 세대는 우리에게 공부가 제일 쉬운 거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시크릿 박스에도 나와 있듯, 10대는 도전을 많이 하려 하지 않는다. 실은,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나이라는 장벽과 학업을 포기해야 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게 된다. 결국엔 이것이 두려움이 되어서 ‘어차피 하지 못할 거니까’라는 부정적인 언어들을 만들어낸다.

인문계를 다니는 평범한 여고생으로서, 내가 생각해도 내 나이 또래 아이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언어로 말하자면 멘탈이 약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시야까지 좁아졌다. 공부가 아니면, 수능을 보지 않으면 내 인생은 이대로 하락세일 것 같은 생각.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나는 평범하니까 남들이 가는 보편적인 길로 가야지-하는 생각. 어쩌면 제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제일 힘겨운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총 4부로 된 차례는, 결국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기까지, 결국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 제대로 된 준비란 없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재고 처리반에서부터 시작해 정말로 창업을 시작해보고 여러 가지 일들에 휘말려 이대로 무너지는가 하다가, 다시 끈끈하게 되살아난다.


내가 십 대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니, 오로지 십 대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조금만 더 우리가 여유를 갖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충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하의 썸 싱 some sing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2
전경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의식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사랑을 할 수 있고, 상대방도 꺼리지 않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하하는 사랑과 관련된 모든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마이웨이를 걷는 두 여자 사이에서 사춘기를 겪는다. 이 글을 읽는 여학생이자, 여자인 독자로서 소설 속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를 꺼리는 이들 사이에 기죽지 않는 인물이 여성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나였어도, 나의 애인이 여러 명과 사귀는 것에 별 아무렇지 않아 한다면 무시당하는 기분도 들고 질투도 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바보같이 영원할 거라 믿는 것이고 그 바보 같은 믿음이 지속하여 결혼이라는 말까지 꺼내게 되는 거다. 그러나 하하의 엄마와 하하의 애인은 이 관습에 ‘왜?’라는 질문을 단다. 이게 ‘일상’이고 다수가 그래 왔으니까,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그 둘이 왜냐고 묻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부부의 역할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을지라도 결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제대로 규정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으로 사람을 묶어둘 순 있어도 사랑으로 사람을 묶어둘 순 없다. 이게 결혼의 최대 오점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하의 엄마는 아들에게, 그리고 만나는 애인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내뱉는다. 꼭 결혼해야 하는지? 그냥 같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하는데, 결혼을 통해 영원을 맹세해야 하는지? 사랑을 충분히 변할 수 있고 나는 변하는 사랑을 따라가고 싶다고. 아직 나는 결혼을 해보진 못했지만, 하하 엄마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사니까-’라는 반박은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몇십 년이 지나 사람의 마음이 식더라도 아들딸 보며 대부분이 그렇게 사는데, 우리도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말은 더군다나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지금 어른 세대와 현재 우리 학생의 세대의 큰 차이를 보여주는 토픽 중 한 가지에 ‘결혼’ 문제도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 사이에서도 여성 남성의 문제로 갈리긴 하나, 여고를 다니는 나를 기준으로 보고 주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열 명 중 아홉은 꼭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된다와 외국인과 결혼 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동거를 통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다-는 정말 한 명도 없었다.


여기서 왜 애인은 한 명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까지 거론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바뀐다.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은데 마음에 들면 다 사귀면 안 되나? 라는 개념은 위의 결혼 개념과는 다르게 보편화하긴 힘들다. 그러나 사랑의 방식은 모든 인류가 각각 개성을 지니듯이 저런 생각도 한 개인의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저 방식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만,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갈등이 생기고 만다. 결국엔 ‘나’를, ‘상대방’을,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하느냐,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나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고 억압할 순 없다. 방식이 다른 게 당연한 거고, 그걸 보며 옳다 옳지 않다 편을 가를 순 없는 문제인 거다.


결혼은 나라마다, 부족마다 전통과 관습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랑은 전통과 관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식과 선택에 따라 행복의 양, 질이 조금씩은 달라진다는 것을 미리 ‘생각’할 수 있다면, 상대방과 나를 배려할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