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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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삭막하다고 느끼는 때가 많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고 느낄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것을 나에게서 느껴 놀랄 때도 있었다. 호의를 불신으로 여겨 오해로 이어질 뻔 한 일들이 가끔 있었는데, 한마디로 의심이 커져만 갔다는 거다.

 이 책은, 우리들의 좁은 속을 비집고 들어와 차지한 ‘불신시대’를 태산이의 눈높이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떡집 아저씨 아줌마의 도움과 처음 보는 오촌아저씨의 등장은 더 이상 태산에게 호의로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그들의 행동이 태산의 처지를 돕기 위해서라 해도, 그들의 호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묻혀 태산을 곤란에 빠뜨린다. 바로 태산이가 옥상에서 내 던진 ‘돈’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사람은 착해,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은 나빠, 믿을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평가가 그 사람을 단정 지을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떡집 아줌마와 아저씨, 그리고 오촌아저씨를 믿지 못하는 태산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나도 이러한 적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름표 아래 자신보다도 어리고 작은 아이들의 피와 영양분을 빼앗아가는 거인들이 너무나 많다. 태산이가 부딪힌 문제는 이 책의 제목처럼 ‘네버엔딩 스토리’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이 열린 결말로 되어있어 우리에게 태산이의 출생비밀을 상상에 맡기게 하는 것도 책의 제목을 추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떡집 아저씨 아줌마와 서로 도우며 살아갔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태산이는 그 두 부부를 ‘선’으로 인식한다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자기 나타난 오촌아저씨에 태산이는 그를 ‘악’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태산’이라는 인물에게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그 방법의 차이를 태산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누가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를 결정짓게 한다. 그러니 태산이가 내리는 오촌아저씨와 떡집 부부에 대한 판단력은 불확실한 정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기 때문에 끝이 없다. 이런 상황에 서 있는 태산에게 그저 두 인물은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장애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미궁으로만 빠지고 끝이 없는 의견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더 우중충해져만 가는 주변인들의 관심과 세상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태산에게 해리 미용실은 돌파구다. 그 돌파구로 직진한 태산이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걸 떠올리게 한다.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기억에 오류를 겪는 남겨진 자들, 가까운 이의 죽음에도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남겨진 자들. 각자 이유와 원인은 다르더라도, 남겨진 자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사고라는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던- 누렇게 변색한 사진이라면 남겨진 자들에게 사고라는 사건은, 그때의 장면을 일그러짐 없이 담아낸- 그래서 슬픈 사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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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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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수거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사실, 우리가 살면서 ‘의류수거함’이라는 단어를 몇 번 언급할지도 의문이다. 나에게 의류수거함이란 아파트나 주택가를 지나가다 가끔 보는, 초록색 우체통이다. 우체통같이 생긴 게 왜 이렇게 클까 하고 보면 ‘의류수거함’이라 쓰여있다. 가끔은 엄청나게 큰 쓰레기통인 줄 착각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런 수거함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인 ‘도로시’는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다. 나중에는 본명이 어색할 정도로 그들이 부르는 이름에 익숙해질 정도이다. 책을 읽으며 갑자기 들었던 생각인데,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정말 자신에게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겪거나 심적으로도 불안, 우울해지면 자살에 대해 고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더 우울하거나 자신처럼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도로시와 같은 판결을 내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로시처럼 글을 써내려 나가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드물다 해도, ‘저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번 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를 만나,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그 도움을 통해 자신도 삶의 해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도로시의 이야기는 수많은 책에서 읽어왔다. 그러나 의류수거함이라는 매체, 수단으로 이야기를 연결 짓는 것이 신선하고 읽는 내내 다음 편을 상상하게 했다. 내가 도입부에 말을 했던 것처럼, 의류수거함은 나에게도, 내 친구들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지나치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느껴 눈길도 주지 않았던 수거함. 그러한 수거함을 통해 옷은 우리들의 손길이 깊숙이 닿지 못하고 미처 눈길도 주지 못한 어딘가로 배달되어 갈 수도 있고, 그 수거함을 자주 애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소설처럼 자신의 인생, 삶의 추억과 기억을 버리려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류수거함에서 도로시가 발견한 것은 천 쪼가리뿐만이 아니다. 그 옷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측할 수도 있고 생명을 찾을 수도 있으며,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 먼 이웃의 인생을 단번에 집게로 낚아챌 수 있다. 이것들은 ‘버려졌다’라는 의미 자체로 인해 우리에게 색안경을 끼게 한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을 잡아낼 수가 있었는데, 바로 ‘청소년’이 아닌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다. 소설에서, 학생이라는 도로시의 신분은 눈여겨볼 부분이 아니다. 물론 195와 도로시에게는 학생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그 둘을 무기력의 블랙홀로 빨아들였다. 그러나 이 둘 말고도 숙자와 마마, 카스 삼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아픈 과거를 지니고 살아간다. 청소년 성장 소설은 아이들끼리 아픔을 견뎌내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어른들도 지닌 상처를 아이들과 공유한다.

살아가면서 힘든 때가 오기는 마련이고, 그때 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이 시련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엄청나고 견디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아픔, 고민이 있고 우리는 그걸 세세히 묻질 않고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색안경을 벗어놓으면 한결 편해진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유와 소통의 어마어마한 힘을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느끼길 바랐고 나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요즘 사회는 오히려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하기가 힘들어 생기는 문제가 많다.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질문해도 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내가 보아도 학생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질문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그 질문이 학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든, 생김새가 어떠하든,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그저 아픔을 지녔다는 공통점 하나로 소통하며 치유하는 인물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소통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따뜻한 밥을 올려놓고 식탁에 둘러앉고 눈을 맞추는 순간, 소통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소통이 나는 제일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오늘도 내가 무심코 지나간 의류수거함 속에는 셀 수도 없고 가치도 매길 수 없는 이야기와 기억, 삶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내가 문을 열고 어둡고 차가운 흑백의 의류수거함 속에 햇빛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손만 뻗어 수거함 문을 열었을 뿐인데, 빛이 바래 형형색색으로 빼곡히 쌓인 옷을 상상하니 절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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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7
애드리안 포겔린 지음, 정해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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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가 영어로 The Big Nothing일까? 표지에 있는 저스틴과 기즈모가 참 평안해 보여 나도 모르게 따라 멍을 때리게 된다. 뒤에서 간략하게 저스틴 가족을 소개한 것처럼, 현실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바람나서 집 나간 아빠, 이라크로 파병된 듀안 형, 나약하고 우울증을 앓는 엄마. 모든 상황이 누가 봐도 저스틴에게는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서 저스틴이 좋게 해결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집은 엄마와 저스틴, 단둘이 지키고 있고 한시라도 빨리 아빠와 형이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토라져 작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 사춘기 시절을 저스틴은 보내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저스틴은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비슷하기보다도 그냥 남자인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대변하는 아이기도 했다. 저스틴이 처한 가정문제에 부닥치는 아이들은 주변에 참 많다. 서로 얘기를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학교에선 발랄하고 밝은 모습이 집에 가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다른 가정에 비해 화목하고, 다른 가정처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가는 편이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랄까. ‘상황’만을 제외하고는 저스틴의 모든 걸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재밌고, 두꺼워도 계속 읽게 되는 이유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다 ‘어떻게 나와 상황이 이렇게 비슷하지?’하며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변에선 친했던 친구들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나와 같이 놀 시간도 줄어들게 되고, 애정행각을 보다가는 토가 나올 지경이다. 겉으로는 쿨하지만 속으로는 섭섭함이 조금 있긴 했다.

집에서 저스틴이 엄마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어찌나 유쾌했는지, 참으로 시원하고 솔직했다. 아빠가 집을 나간 이후, 엄마는 우울증이 도진 것처럼 내내 우울해했고, 멍 때리는 엄마를 저스틴은 흔들어 깨우듯이 밝게 행동했다. 어떻게 보면, 충분히 저스틴이 방황하고 엇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저스틴은 가볍게 헤쳐나갔다. 그 점이 저스틴에게 다행이기도 했고 충분히 우리가 본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저스틴에겐 당연히 힘들고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있다.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도 있고 말 그대로 저스틴은 평범한 사춘기 소년일 뿐이다. 그런 저스틴에게 피아노는, 깊숙해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새 꿈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고 통쾌했다. 이젠 친구가 아닌, 더 특별한 인연으로 제미에게 다가가 고백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평소 우리가 ‘멍때리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멍때리기를 놓고 좋다,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요즘 시대에 멍을 때린다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멍때리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아무 생각 없이 초점 잃은 눈빛으로 입을 벌린 채 앉아있는 것?

멍을 때리면 때릴수록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 빠르고 복잡한 우리들의 세상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다.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주변의 차는 더 가속도를 내서 달리기 때문에 숨 돌릴 틈 없이 따라가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일 등과 꼴찌는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더는 쫓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당연히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우리에게 ‘득’을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으면서 달린다. 멍때리기도 마찬가지이다. 멍 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두뇌를 깨우고 명쾌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 책에서 소개했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휴식인데 어느 순간부터 브레이크 자체를 없애버려 잊고 산 게 아닐까.

생각은 비울수록 채워진다고 한다. 우리는 자동차를 계속 ‘달린다’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체력이 소진되면 주유소에 들러 힘을 충전하고 다시 달린다. 저스틴은 처음엔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했지만 그레이스 할머니, 선생님의 도움으로 발굴하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연주도 할 수 있게 된다. 저스틴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의 도움과 가끔은 멍때리기 같은 휴식의 시간이, 그들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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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인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6
김경해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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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둘의 관계는 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경계가 있어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 쯤은 겪게 되는 성장 과정이라서, 딱 경계가 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태양의 인사에 등장하는 주인공 태양과 태양처럼 시설에서 맡겨져 사는 아이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던 아이들도 있고, 부모가 찾지 않는 아이도 있으며 부모와 떨어진 채 맡겨진 아이도 있다. 그들이 시설에서 지내게 된 원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면 뿌리에는 ‘부모’가 달려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헤어짐을 원하는 아이들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헤어짐을 고르는 아이 또한 없다. 아이들은 단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라 길이 갈리는 셈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간혹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등을 보게 되면 부모에게 버려져 시설에 사는 아이들이나 미혼모가 등장한다. 나는 아직 엄마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런 일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안다. 어떤 아이는 축복받으며 태어나 대기업 회장의 아들로 자라나고, 어떤 아이는 축복 아닌 축복을 받으며 부모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버려진다. 그들의 부모에 의해서 아이들의 운명은 그렇게 갈린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태양이와 동감이었다. 왜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를 가지고, 결국엔 버리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가난뱅이 집안에서 살기 싫다 해도, 가난한 집안의 아들, 딸인 이상은 벗어나기 어렵고 그 생활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커서 직업을 얻고, 그 후에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자녀가 ‘아이들’일 때만큼은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쓰시는 부모님을 만나 영향을 받고 유전을 물려받았는지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태양의 인사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참으로 캐릭터가 뚜렷하고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 덕분에 질리지 않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사연도 제각각이고 성격도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이 세상의 사회가 ‘돈’, ‘직위’로 서열이 나누어져 있다면 시설 안은 ‘힘’으로 서열이 이루어져 있다. 태양이는 시설에서 나이는 많지만 키가 작고 왜소해서 힘이 약해 아이들의 무시를 받는다.

사랑이는 태양이에게 sun salutation이라며 사진을 보내준다. 330개의 유리판이 아드리아 해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모았다가 밤에 불을 밝힌다. 어둠이 찾아와도 한낮이 태양의 인사를 한다는 말이 사랑이 말대로 참 근사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도 모르는 여자아이고, 가본 적도 없는 먼 곳의 사진만이 있지만 태양에게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 더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던 태양에게 사랑이란 아이는 이름 그대로 ‘사랑’의 존재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뜨겁지만 한낮, 어둠 상관없이 밝혀주는 태양과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은 너무나 닮았다. 둘 다 따뜻함으로 세상을 밝혀주고 드러내 준 다는 것이 비슷했다.

아직 태양이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언제 뿜어낼지는 모르겠지만, 한꺼번에 뿜어낼 그 날을 위해 모으고 있다. 빨리 뿜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천천히, 느릿느릿 햇살을 받아들일수록 태양이 어둠에서 더 크게, 더 오래 인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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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을 두드리는 동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5
박재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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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라는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음악 시간 때마다 시험에 대비해 사물놀이에 등장하는 악기들을 외우고 연주방법 등을 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듣는 선에서만 좋아하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제대로 없어 연주 할 때 느낌이라던가, 감정, 공감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책을 오랜만에 읽어서인지는 몰라도 ‘징을 두드리는 동안’을 읽는데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제각각이다.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면이 나는 좋았다. 남들의 시선은 둘째치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소설의 도입부 부분에선 수린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사물놀이패와 함께 러시아로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해 조금씩 아이들과 수린이의 과거가 드러났다. 나름대로 각자 조금씩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음악은 엄청난 힐링능력을 지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될 수도 있지만 보편적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 힘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매체이다. 사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한데, 직접 두드리면 얼마나 더 시원할까 생각했다. 듣는이도 조용하고, 연주하는 이도 고요해지는 피아노와 같은 악기가 아닌 꽹과리, 징, 장구, 북. 상상만 해도 어깨가 들썩이고 그 악기들만이 낼 수 있는 음색이 벌써 들리는 것 같다. 듣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모두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사물놀이를 보고, 듣고 있자면 다 같이 뛰어놀고 싶다. 다른 음악에 비해 높은 즉흥성은 지루를 잊게 해주고 모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책에서 접했던 문장 하나하나가 나에겐 와 닿았고 청소년으로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뒷부분에서 난희는 우박, 천둥, 번개, 장구 소리 같은 소나기가 하늘의 사물놀이라고 말한다. 축축하고 기분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비는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비가 싫다며 불평을 늘어놓아도, 창밖에서 비가 내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길밖에는 없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황은 생기고, 모두가 그 앞에 직면했을 때 긴장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서,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면, 어차피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면 즐기는 게 어떨까. 비뿐만이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인 공부, 그리고 앞으로 성장하면서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 일들과 부딪혔을 때 비를 맞기 싫어 툴툴대는 소녀로서 대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다음 일도, 또 그다음의 일도, 그다음 다음의 일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매사에 부정적인 채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소중한 ‘나’의 것이다. 나의 삶의 반 이상을 부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간다 생각하니 한숨만 푹푹 나올 뿐이고, 투정부리는 데 시간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아깝다. 이럴 땐 난희처럼, 단순히 생각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을 타고, 느리게 가느냐 빠르게 가느냐에는 상관없이 한가지 목표를 향해서 가는 아이들이 대단하고 부러웠다. 관심사, 이루고자 하는 것, 바라보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은 가정사, 과거에서부터 외모까지 모두가 제각각이다. 만약 학교에서 같은 반 학급 학생으로 아이들이 만났다면,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 채 한 학년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놀이 앞에서, 다 같이 악기를 두드리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그래서 그들은 똘똘 뭉칠 수 있었고 가정사든, 외모든, 과거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의지하며 자랄 수 있었다. 아이마다 상처의 깊이, 크기, 정도가 다르지만 그들은 한가지씩 상처를 지녔다는 공통점을 ‘공유’할 수 있었고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온 힘을 다한 연주, 몸짓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징을 두드리는 동안,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러시아, 더 큰 나라, 세계에 발을 디디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탔던 순간부터 아이들은 하나였고, 도전과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들이 징을 두드리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그 많은’일들을 헤쳐나갈지 않다. 피하지 않고 비 사이를 뚫고 지나가듯 즐긴다. 쥐었던 우산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구 소리에 흠뻑 취하는 수린이를 상상한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피하지 않고 즐기는 너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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