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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평점 :
의류수거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사실, 우리가 살면서 ‘의류수거함’이라는 단어를 몇 번 언급할지도 의문이다. 나에게 의류수거함이란 아파트나 주택가를 지나가다 가끔 보는, 초록색 우체통이다. 우체통같이 생긴 게 왜 이렇게 클까 하고 보면 ‘의류수거함’이라 쓰여있다. 가끔은 엄청나게 큰 쓰레기통인 줄 착각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런 수거함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인 ‘도로시’는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다. 나중에는 본명이 어색할 정도로 그들이 부르는 이름에 익숙해질 정도이다. 책을 읽으며 갑자기 들었던 생각인데,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정말 자신에게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겪거나 심적으로도 불안, 우울해지면 자살에 대해 고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더 우울하거나 자신처럼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도로시와 같은 판결을 내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로시처럼 글을 써내려 나가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드물다 해도, ‘저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번 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를 만나,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그 도움을 통해 자신도 삶의 해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도로시의 이야기는 수많은 책에서 읽어왔다. 그러나 의류수거함이라는 매체, 수단으로 이야기를 연결 짓는 것이 신선하고 읽는 내내 다음 편을 상상하게 했다. 내가 도입부에 말을 했던 것처럼, 의류수거함은 나에게도, 내 친구들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지나치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느껴 눈길도 주지 않았던 수거함. 그러한 수거함을 통해 옷은 우리들의 손길이 깊숙이 닿지 못하고 미처 눈길도 주지 못한 어딘가로 배달되어 갈 수도 있고, 그 수거함을 자주 애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소설처럼 자신의 인생, 삶의 추억과 기억을 버리려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류수거함에서 도로시가 발견한 것은 천 쪼가리뿐만이 아니다. 그 옷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측할 수도 있고 생명을 찾을 수도 있으며,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 먼 이웃의 인생을 단번에 집게로 낚아챌 수 있다. 이것들은 ‘버려졌다’라는 의미 자체로 인해 우리에게 색안경을 끼게 한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을 잡아낼 수가 있었는데, 바로 ‘청소년’이 아닌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다. 소설에서, 학생이라는 도로시의 신분은 눈여겨볼 부분이 아니다. 물론 195와 도로시에게는 학생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그 둘을 무기력의 블랙홀로 빨아들였다. 그러나 이 둘 말고도 숙자와 마마, 카스 삼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아픈 과거를 지니고 살아간다. 청소년 성장 소설은 아이들끼리 아픔을 견뎌내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어른들도 지닌 상처를 아이들과 공유한다.
살아가면서 힘든 때가 오기는 마련이고, 그때 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이 시련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엄청나고 견디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아픔, 고민이 있고 우리는 그걸 세세히 묻질 않고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색안경을 벗어놓으면 한결 편해진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유와 소통의 어마어마한 힘을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느끼길 바랐고 나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요즘 사회는 오히려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하기가 힘들어 생기는 문제가 많다.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질문해도 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내가 보아도 학생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질문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그 질문이 학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든, 생김새가 어떠하든,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그저 아픔을 지녔다는 공통점 하나로 소통하며 치유하는 인물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소통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따뜻한 밥을 올려놓고 식탁에 둘러앉고 눈을 맞추는 순간, 소통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소통이 나는 제일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오늘도 내가 무심코 지나간 의류수거함 속에는 셀 수도 없고 가치도 매길 수 없는 이야기와 기억, 삶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내가 문을 열고 어둡고 차가운 흑백의 의류수거함 속에 햇빛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손만 뻗어 수거함 문을 열었을 뿐인데, 빛이 바래 형형색색으로 빼곡히 쌓인 옷을 상상하니 절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