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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박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1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3월
평점 :
중간고사를 약 2, 3주 앞두고 반 친구가 건넨 말이 있었다. 이렇게 공부해봤자 미래도 보이지 않는데, 얼른 유럽에 가서 치킨 장사를 하자! 고. 물론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았고, 또 현실상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의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친구의 말인즉슨, 결정과 동시에 내일부터 바로 지긋지긋한 교복을 벗어 던지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창업을 준비해 나가자는 거였다. 그때가 3월 말, 4월 초였던 것 같은데 5월이 된 지금, 우리는 중간고사도 무사히 보고 수학여행까지 행복하게 다녀왔다. 점점 날씨가 더워지니 하복을 미리 꺼내놔야 하나...? 하는 이야기까지 오고 간다.
10대 창업 이야기, 시크릿 박스라는 책을 읽으라고 재촉한 것도 그 친구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도중에 피식피식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10대 창업. 이 말만 들어도 나는 가슴이 설레고 당장에라도 교과서는 집어 던지고 싶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해야 할 일은 공부라는 걸 잘 알기에 ‘창업’은 우리에게 무모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매체에서 성공한 10대 창업가, 쇼핑몰 운영가, 등등 타이틀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진짜 대단한 선택을 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처음엔 순탄하게 가는가 싶다가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소용돌이에 자주 휩싸인다. 그중에는 어른들의 달콤한 유혹도 있고, SNS라는 매체가 그들에게 남긴 상처도 있고, 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학생이기에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시련은 어느 주인공에게나 닥쳐오는 필요조건이지만 ‘창업’이라는 상황이 더 극단적으로 시련을 보여준 것 같았다.
창업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만큼의 책 임또한 져야 한다는 것이 10대로서는 제일 큰 고려사항이다. 그래서 부모님들 세대는 우리에게 공부가 제일 쉬운 거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시크릿 박스에도 나와 있듯, 10대는 도전을 많이 하려 하지 않는다. 실은,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나이라는 장벽과 학업을 포기해야 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게 된다. 결국엔 이것이 두려움이 되어서 ‘어차피 하지 못할 거니까’라는 부정적인 언어들을 만들어낸다.
인문계를 다니는 평범한 여고생으로서, 내가 생각해도 내 나이 또래 아이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언어로 말하자면 멘탈이 약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시야까지 좁아졌다. 공부가 아니면, 수능을 보지 않으면 내 인생은 이대로 하락세일 것 같은 생각.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나는 평범하니까 남들이 가는 보편적인 길로 가야지-하는 생각. 어쩌면 제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제일 힘겨운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총 4부로 된 차례는, 결국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기까지, 결국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 제대로 된 준비란 없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재고 처리반에서부터 시작해 정말로 창업을 시작해보고 여러 가지 일들에 휘말려 이대로 무너지는가 하다가, 다시 끈끈하게 되살아난다.
내가 십 대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니, 오로지 십 대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조금만 더 우리가 여유를 갖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충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