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저
바야흐로 '좋아요'의 시대. 인스타그램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없다. 아픔을 철저히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좋은', 좋기만 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다. '나의 비하인드와 남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지 말자'는 말이 그토록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가끔은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이 우리 사회에는 낄 자리가 없어 보여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꾸며내고 살아야 하는 압박 때문이 아닐까. 우리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던 아픔이나 고통은 정리해고를 당하듯 이제 그 자리를 빼앗겼다. 힘들고 날 괴롭히는 건 무대 뒤에서 아무도 모를 때 혼자서 견뎌야 하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요즘 내 하루의 목표는 '일희일비하지 않기'다. 원래 난 인생을 즐기며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갑자기 인생이 추락하는 것처럼 힘든 순간이 오면 친구들을 찾아 왜 힘든지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면서 삶을 버텨내는 사람이었다. 입을 열고 말을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 나는 너무 값지고 마음 찡할 만큼 좋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언젠가부터 한가롭게 앉아 입만 놀리고 있는 건 어린 아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러니 묵묵히 할 일이나 하자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생겨버렸다. 힘들 때 가만히 있으니 정말 고통은 금방 잊혀졌고, 그렇게 다시 찾은 마음의 안정, 그리고 그로부터 가능해진 일의 효율은 나를 사회에 나가기 좋은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픔을 잊어야 하는 만큼 행복도 함께 억눌러야 했다. 고통을 포기하니 가슴 꽉 채우는 그 충만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라. 마냥 웃고 즐기기만 하다 고통의 순간이 오면 더더욱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좋은 순간이 와도 기분이 산을 타고 올라가지 않도록 조절을 하게 됐다. 이건 아마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기복이 심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란 걸 살면서 본능적으로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감정이 평균치를 벗어나게 하는 짓을 지양하는 건 내가 이 성과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마련한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난 내 행복을 희생해 사회에 날 욱여 넣으려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