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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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저

바야흐로 '좋아요'의 시대. 인스타그램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없다. 아픔을 철저히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좋은', 좋기만 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다. '나의 비하인드와 남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지 말자'는 말이 그토록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가끔은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이 우리 사회에는 낄 자리가 없어 보여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꾸며내고 살아야 하는 압박 때문이 아닐까. 우리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던 아픔이나 고통은 정리해고를 당하듯 이제 그 자리를 빼앗겼다. 힘들고 날 괴롭히는 건 무대 뒤에서 아무도 모를 때 혼자서 견뎌야 하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요즘 내 하루의 목표는 '일희일비하지 않기'다. 원래 난 인생을 즐기며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갑자기 인생이 추락하는 것처럼 힘든 순간이 오면 친구들을 찾아 왜 힘든지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면서 삶을 버텨내는 사람이었다. 입을 열고 말을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 나는 너무 값지고 마음 찡할 만큼 좋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언젠가부터 한가롭게 앉아 입만 놀리고 있는 건 어린 아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러니 묵묵히 할 일이나 하자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생겨버렸다. 힘들 때 가만히 있으니 정말 고통은 금방 잊혀졌고, 그렇게 다시 찾은 마음의 안정, 그리고 그로부터 가능해진 일의 효율은 나를 사회에 나가기 좋은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픔을 잊어야 하는 만큼 행복도 함께 억눌러야 했다. 고통을 포기하니 가슴 꽉 채우는 그 충만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라. 마냥 웃고 즐기기만 하다 고통의 순간이 오면 더더욱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좋은 순간이 와도 기분이 산을 타고 올라가지 않도록 조절을 하게 됐다. 이건 아마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기복이 심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란 걸 살면서 본능적으로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감정이 평균치를 벗어나게 하는 짓을 지양하는 건 내가 이 성과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마련한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난 내 행복을 희생해 사회에 날 욱여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고통 속에서 더 많은 양의 웃음을 발견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이가 있다. 이전에 인간의 고통 속에 깊이 파묻힌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웃을 수 없다.

19쪽

고통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작가의 확신에 찬 말이 그런 나에게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냐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해방감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감옥에 갇혀 있다 누군가가 와서 '너 여기 있을 사람 아니잖아, 나와' 하고 날 끄집어낸 기분이랄까. 그동안 힘들다고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나약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자책하고 채찍질했는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가끔은 그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할 일을 못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란다. 기계도 고장나는 마당에 한치 앞도 모르겠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매번 좋기만 할 수 있겠나. 어차피 힘든 인생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힘들어 하면서 살아야 먹구름이 걷히고 난 후에 오는 햇빛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거다.

시험 기간 때 제일 많이 웃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한 사람들과는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진한 친밀감을 느끼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영화도 책도 마음을 울리는 명작이 등장하는 법이다. 시간이 10년, 20년 지나고 되돌아 봤을 때 가장 오래 남아 있을 기억은 힘듦 속에서 정신 빼놓고 웃었던 순간들이다. 나 하나도 챙기기 벅차던 시절, 내 옆에서 인상 찌푸리다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서로 손 내밀어 이끌어주던 사람들과 앞으로의 인생도 비슷하게 살아가고 싶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풍파가 찾아와 내가 그 고통 속으로 몸을 내던져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어찌저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힘든데 군말 없이 척척 다 해내는 멋있는 사람보다는 멋은 없어도 힘들어 죽겠지 않냐며 술잔 기울이며 웃음 섞인 농담을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쪽이 앞으로 살 날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고통이 저지되면 행복은 흐릿한 편안함으로 쪼그라든다.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깊은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수많은 종류의 괴로움이 무한한 눈보라처럼 쏟아지고, 고통의 가장 강력한 번개 또한 그에게 떨어진다. 모든 방향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고통에 항상 열려 있을 때만 그는 가장 섬세하고 드높은 종류의 행복에도 열려 있을 수 있다."

25쪽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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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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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T

무라카미 하루키 저

늘어지는 주말 오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펼쳐 보기 딱 좋은 책. 깊은 사유에 빠지기엔 살랑살랑 오전의 공기는 내 기분을 둥둥 들뜨게 만든다.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난 처음으로 하루키의 사소한 이야기에 내 귀를 맡겼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할 일의 늪에서 오랜만에 벗어나 그의 세상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하루키의 티셔츠 수집 본능은 날 신기하게 이상한 방식으로 위로했다. 아무리 세상과 부딪히며 사는 게 힘들어도, 혹은 정신없이 사느라 며칠이 훅 지나가도 인생의 번외편으로 취미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며 사는 나 자신이 어딘가 내 안에 계속 숨 쉬고 존재하고 있구나, 이러한 생각의 환기가 이번 달 내내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유명한 하루키도 책으로 만나본 적이 없을 만큼 다독하는 사람은 아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니 어디 가서 취미로 '독서'를 꼽진 말아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던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게 언젠가의 목표였는데, 왠지 손이 잘 안 가게 되더라. 장편 소설은 항상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그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내용도 없는 이 책을 읽으니 그렇게 미루던 하루키의 소설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 쌓여 있는 책들을 모두 다 읽고 다음 책을 사러 서점에 가게 되면 아마 하루키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내가 워낙 에세이를 좋아해서 이 책이 유독 마음에 들어 그런 걸까, 아니면 특유의 문체에 반해 하루키를 벌써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건 아마 소설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면 금방 나올 답이겠지.

시원한 쿠어스 라이트를 차분하게 마시고 주위 사람들의 술렁임과 접시나 잔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혹은 이국의 공기를 주의 깊게 들이마시면서 치즈버거 접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비로소 '아, 그렇지, 또 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솟아난다.

25쪽

재산의 규모가 억 소리 나는 단위에 이를 텐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꾸밈이 없을 수가 있는지 하루키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은 상당한 것 같다. 업과 여가를 모두 완벽의 경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뿜어내는 여유와 그로 인한 겸손은 정말 삶에 대한 의욕을 샘솟게 만든다. 밸런스가 아주 잘 조율되어 맞춰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않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유쾌함을 지닐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직업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이런 사소한 취미가 내 삶 구석구석에 묻어져 나오게끔 투자하는 것, 그게 아마 하루키를 이렇게 롱런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 하나만으로.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세계를 모순이나 구멍 없이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니 그 안에서 나온 결과물은 좋을 수밖에 없을 거다. 하루키의 일상은 정말로 그의 책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사적인 영역을 이정도로 잘 채워 놓고 사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든 믿을 만한 사람이다. 이는 내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상대의 일상을 면밀히 살펴보는 이유 중 하나다.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위로를 받으러 잠깐이라도 훅 떠날 어딘가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그 사람이 이제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예상이 되는 지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겐 그러한 곳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봐야 할 영화, 가고 싶은 카페, 구경하고 싶은 책이 쌓인 서점이 여러 군데 생각나는 걸 보면 그냥 막 산 인생은 아닌가 보다. 힘들어도 돌아갈 구석이 있다. 이게 그토록 나에게 위로가 될지 몰랐다.

워낙 레코드라는 걸 좋아해서 철들었을 때부터 용돈을 털어서 마구 사 모았다. 갖고 싶은 레코드가 있으면 점심을 굶어가며 돈을 모아서 샀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여전히 레코드를 사 모으고 있다.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정신없이 레코드를 찾으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사 온 레코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냄새를 맡기만 해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

46쪽

일전에 썼던 글이 떠올라 덧붙인다.

"내가 특별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담은 엽서들이 방 곳곳을 차지하기에 난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영감을 얻기도, 위로를 받기도, 공허해진 마음에 충만함을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텅 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매순간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내 방벽 엽서는 작지만 어떤 것보다도 날 확실히 안심시켜준다. 새벽은 평화롭지만 그 평화로움과 공허함은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가끔 마음이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방 불을 끄고 무드등을 켰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불안은 걷혀지고 마음이 절로 몽글몽글해진다."

"좋은 기억은 스쳐 지나가기가 너무 쉽다. 어느 순간 그 좋았던 순간은 당연해지고, 행복이 있었던 그 자리엔 어느새 나빴던 기억이 자리를 꿰차고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럴 땐 내 인생엔 행복이라는 게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우리는 좋은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항상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 누군가와 함께 했던 따뜻했던 순간, 내가 무언가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냈을 때의 성취감, 예쁜 것을 보거나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마음을 꽉 채웠던 만족감. 며칠만 지나면 잊힐 그 순간들을 꼭 붙잡고 그로부터 오는 힘으로 내 인생을 채우다 보면 그런 날들이 또 다시 오기 마련이다. 그걸 잊지 않기 위해 난 엽서를 사고 벽에 하나하나 붙인다. 비가 온 뒤엔 행복하게 엽서를 샀던 그때처럼 다시 날이 갤 수 있기를 바라며."

2020.05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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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 -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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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숨 쉬는 과학

리처드 도킨스 저

나의 지식은 이정도구나, 역시 과학은 내 머리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이렇게까지 독서가 힘들었던 건 2학년 1학기 영국문학개론 전공 수업으로 Wordsworth, Coleridge, Shelly 이런 작가들이 쓴 산문 읽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었지 하면서 자꾸 읽었던 문단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저절로 겸손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학자들의 이름도 많았고, 다 읽고 나서 아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는 에세이들도 있었다. 이번 서포터즈 활동을 거치면서 좀 더 다양한 학문을 접해보고 싶다며, 이과 쪽 지식은 민망하리만큼 적은 나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과학 관련 책들도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하필 그 시작이 리처드 도킨스였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리처드 도킨스이 비판받고 쉽게 오해받는 이유가 대체 어느 지점에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나 역시도 그런 부분이 신경 쓰여 책에 푹 빠져들어 읽기가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말에 설득 당하는 것에 있어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뭔가 에세이 내내 갸우뚱거리다가 마지막이 돼서야 "아 그치, 맞는 말이지" 할 수밖에 없어서 인정하기 싫어도 수긍하게 되는 느낌 ...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 마음에 일던 인문학적 쾌감과는 느낌이 달랐다. 상당히 낯선 기분이었다. 마치 친구끼리도 팩트로 때리는 애들이랑은 가끔 대화도 하기 싫고, 왠지 막 그냥 '알았다'고 넘기기 싫은 것처럼 도킨스는 내 안의 자존심과 고집을 건드렸다. 물론 당연히 반박은 못한다. 그만한 논리도 없고, 증거도 뭐도 없기 때문에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어도 그냥 조용히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두리틀 박사를 읽으며 자란 어린이는 이 이중잣대를 지나칠 수 없다. 성서를 읽으며 자란 어린이는 틀림없이 그것을 지나칠 것이다.

159쪽

예를 들자면, 이런 대목에서 과학적 근거와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사람은 이중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문학과 종교이나 철학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그런 오류를 보아도 눈을 감을 거라고 하는데 ... 무슨 소리인지는 대충 알겠다. 성서에는 모순과 차별과 혐오와 비합리적인 것들 투성이니까. 그리고 그걸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배운 사람들은 살면서 편협하고 비정상적으로 사고를 하는 순간들이 꽤 있을 거다. 그러나, 성서가 '틀림없이' 사람들을 눈 막고 귀 막게 만들 거라는 그 편견과, 그리고 두리틀 박사 책을 읽은 모든 어린이들은 모든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을 거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작가님 ..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에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어떤 구절이든 반박을 하고 싶을 때마다 도킨스의 촘촘한 논리에 내가 어느 지점부터 지적을 해나가야 할지 아예 엄두가 안 나서 역시 .. 이성이라는 게 감정만큼이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이다. 차가운 머리에 뜨거운 가슴이라면 그게 바로 완전체 인간이라는 거 .. 휘몰아치는 감정밖에 찾아볼 수 없었던 나의 자아에 '이성'이라는 동아줄이 생긴 건 정말 얼마되지 않았기에 냉철하게 생각하고 세상을 곧이곧대로 보려면 아직은 시간과 노력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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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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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올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저

꽤 두꺼웠던 책이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마음을 울리는 장면은 없었다. 당시 독일의 잔혹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도 유대인의 절절한 스토리가 가슴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설은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되는 급박한 순간에서는 설명을 최소화했고, 클라이막스라고 볼 수 있는 체포 장면에서 이야기를 툭 끊어 버리고 책을 덮게 만들었다. 어릴 적에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때나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를 다 보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에 총 맞은 듯한 심리적 고통과 환멸을 느끼던 것에 비하면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다만, 그동안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감히 공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던 1930년대 그 시절 유대인들은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 파장이 그들의 일상을 어떻게 서서히 무너뜨렸는지는 생각보다 더 짙고 은은하게 나에게 여운을 남겼다. 그 사람들이 이랬겠구나, 나도 그 기분 뭔지 알지 하고 반응을 해도 될지 사실은 아직도 조금 조심스럽다.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세상이 더 이상 나의 상식으로 설명될 수 없을 것 같을 때 모든 걸 의심해야 하는 그 기분이 뭔지 알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와닿았고, 더 진실되게 그들의 입장에서 춥고 매정했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내는 얼마나 불안할까. 당장 편지를 써야겠어. 아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정말 다행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비록 걱정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아내는 무사하니까. 그러다가 여동생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고, 체포된 매제 귄터의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가족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그는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 하지만 인간이란 결국 잔인한 이기주의자니까.

139쪽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았더니 역시나 질버만이 머리 속에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는 구절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흔히들 삶이 튼튼한 토대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출렁거리는 파도 위에 있는 것 같을 때 머리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막상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큰 위기에 부딪혀버렸을 땐 사람이 한없이 차분해지면서 초인적인 힘이 생기거나 묘안이 떠올라지는 반면, 폭풍 전야일 때는 자아가 쪼그라 들어 시야를 저멀리 두지 못하는 겁쟁이가 된다. 이게 바로 예지력은 없는 대신 상상력은 부여받은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점이 아닐까 싶다.

미래를 볼 수 없어 운명이 무엇일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수용소로 잡혀가는 결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벌써부터 상상은 간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이 사람은 믿어도 될까. 아무도 믿지 못한다면 최악은 피하기 위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질버만은 그 어떠한 생각에도 안심할 수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차라리 어떻게 하라고 명령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결론이 나버렸으면 마음 편하겠다는 그 생각에 질버만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내 불안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구나 그 무게를 실감했다.

이런 복합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책은 성공작이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의심케 하는 수많은 세계 2차 대전 관련 작품을 보면서 우리나라에게 일본이 그렇듯 그 시대의 독일은 나에게 절대 악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 악에 주목하고 두려워하고 분노하느라 유대인의 삶에 스며들어 진정으로 공감해본 적도 할 새도 없었다. 절대적인 힘에 의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박탈 당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현대 사회 속 우리의 삶과도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 원초적인 불안이라는 감정에서 질버만이라는 인물에 동일시할 수 있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독일의 아픈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매드맥스'처럼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끝없이 어딘가로 도망쳐야 하는 플롯의 서사를 읽을 때 작품이 의도하는 불안감과 불쾌감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편이다. 이 책 역시 가장 마음이 편할 곳이 이동 중인 기차라는 점에서 그 시대 독일이 유태인들에게는 정말로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을 둘 집도 가족도 잃어버린 채 떠돌아다니는 질버만과 그런 인물에 투영된 작가의 모습이 참 고달파 보였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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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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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읽고 나서 그 글을 쓴 사람을 무척이나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책장을 넘기고 마음이 저릿해지는 구절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행여 내가 그 구절이 간절히 다시 필요해질 때가 생길까 책의 모서리를 더 빨리, 더 자주 접어갈 때쯤 양희은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연예인이 쓴 에세이가 다 그렇지 뭐 라는 꽤나 견고했던 편견에 강한 의심을 품게 만들어준 책이다. 한 분야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탈 없이 머무른 사람은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배울 점이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들이 나의 상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모든 것들을 버티고 여기까지 온 나 굉장히 대단하지 않냐며 은근히 뽐내는 그런 속보이는 내용이 아니다. 활자 사이 사이에 그저 작가의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 있어 나의 민망하리만큼 짧은 인생 동안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굳게 먹어두던 나름의 다짐들이 책 앞에서 보자기 풀어지듯 훌훌 녹아내려 없어지고 말았다. 기대를 안해서 더 마음에 와닿았던 걸까 나는 이 책을 펼치고 첫 장을 다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공부하다가 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떠드는 친구들 뒤에서 문학소녀 마냥 걸으면서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답지 않은 일이다.

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109쪽

언젠가부터 세상이 미워지고 내가 안쓰러워지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갑자기 문을 두드려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술의 힘을 빌려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나는 괜찮다며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나를 언제까지나 지탱해줄 수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을 때 나는 감사하게도 오히려 내가 가진 슬픔이 나를 빚어낸 거구나, 그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더 강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일종의 구원과 같은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기원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상 속에서 자잘하게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우울이나 무기력을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 안에 처리하기에 딱 좋은 나만의 무기로 틈틈이 잘 활용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이유 없이 단단했던 멘탈이 말랑해지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를 진정으로 알아줬으면 할 때가 다시 돌아오면 여전히 그 무게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항상 낯설고 새롭다. 내가 그동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던 건 아닐까 자신감이 뚝 떨어지고 힘들게 힘들게 쌓아 올려놓은 나의 세계가 덜컹 하고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수많은 그런 약한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너지지 않을 듯 굳세어 보이는 양희은도 확신에 찬 순간까지 오기에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게 나한테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24살 어린 나이에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대 차이가 나는 분의 말에 이렇게까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젠 그만 불안해 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털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상처, 비슷한 아픔 앞에 서면 차라리 가벼울 수도 있는데...... 상처는 내보이면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또 비슷한 상처들끼리는 서로 껴안아줄 수 있으니까, 얘기 끝에 서로의 상처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같은 값을 지워나가듯 그렇게 상처도 아문다. 왜 상처는 훈장이 되지 못하는 걸까? 살면서 뜻하지 않게 겪었던 아픔들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겪은 만큼'이란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상처 덕분에 남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한 눈과 마음이 있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130쪽

한때 양희은을 힘들게 하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어르고 달래는 것처럼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진 아픔을 먼저 꺼내고 나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유약한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을 깊숙이 건드려 각자 꽁꽁 숨겨두던 고민거리를 털어놓게 만들어냈을 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팍팍한 세상에 그래도 우리가 숨 돌릴 구석이 하나 쯤은 있구나 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때 나는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인류애를 느낀다. 어쩌면 그런 관계 속에서 기운을 받는 이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 모두 조금씩 강해진 거겠지.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공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양희은의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유독 특별해진 건가 보다.

늘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함께 살아갈 친구들도 냉면처럼 단순하게 꾸려가고 싶다. 이 사람 저 사람 필요 없이 나를 알아주고,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한 명이라도 충분하다. 고명 하나 없는 냉면처럼 나의 일상도 군더더기는 털어내고 담백하고 필수적인 요점에만 집중하고 싶다.

176쪽

젊은이 중에서는 아이유를, 확실히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들 중에선 김이나와 이효리를 닮고 싶다는 동경을 품으며 살아왔다. 나이가 지긋이 먹고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딱 양희은의 2/3만큼만 따라가도 후회 없이 늙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능력이 그렇게 많은데도 담백한 모습만 보여주는 그들처럼 겸손하고 진실되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부끄럼 없이 모든 걸 드러낼 수 있게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까마득하지만, 따라갈 만한 길이 내 앞에 하나 더 그어졌다는 생각에 그래도 조금은 마음을 놓게 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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