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세상이 미워지고 내가 안쓰러워지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갑자기 문을 두드려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술의 힘을 빌려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나는 괜찮다며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나를 언제까지나 지탱해줄 수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을 때 나는 감사하게도 오히려 내가 가진 슬픔이 나를 빚어낸 거구나, 그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더 강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일종의 구원과 같은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기원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상 속에서 자잘하게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우울이나 무기력을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 안에 처리하기에 딱 좋은 나만의 무기로 틈틈이 잘 활용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이유 없이 단단했던 멘탈이 말랑해지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를 진정으로 알아줬으면 할 때가 다시 돌아오면 여전히 그 무게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항상 낯설고 새롭다. 내가 그동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던 건 아닐까 자신감이 뚝 떨어지고 힘들게 힘들게 쌓아 올려놓은 나의 세계가 덜컹 하고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수많은 그런 약한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너지지 않을 듯 굳세어 보이는 양희은도 확신에 찬 순간까지 오기에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게 나한테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24살 어린 나이에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대 차이가 나는 분의 말에 이렇게까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젠 그만 불안해 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