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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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저

바야흐로 '좋아요'의 시대. 인스타그램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없다. 아픔을 철저히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좋은', 좋기만 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다. '나의 비하인드와 남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지 말자'는 말이 그토록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가끔은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이 우리 사회에는 낄 자리가 없어 보여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꾸며내고 살아야 하는 압박 때문이 아닐까. 우리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던 아픔이나 고통은 정리해고를 당하듯 이제 그 자리를 빼앗겼다. 힘들고 날 괴롭히는 건 무대 뒤에서 아무도 모를 때 혼자서 견뎌야 하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요즘 내 하루의 목표는 '일희일비하지 않기'다. 원래 난 인생을 즐기며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갑자기 인생이 추락하는 것처럼 힘든 순간이 오면 친구들을 찾아 왜 힘든지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면서 삶을 버텨내는 사람이었다. 입을 열고 말을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 나는 너무 값지고 마음 찡할 만큼 좋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언젠가부터 한가롭게 앉아 입만 놀리고 있는 건 어린 아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러니 묵묵히 할 일이나 하자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생겨버렸다. 힘들 때 가만히 있으니 정말 고통은 금방 잊혀졌고, 그렇게 다시 찾은 마음의 안정, 그리고 그로부터 가능해진 일의 효율은 나를 사회에 나가기 좋은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픔을 잊어야 하는 만큼 행복도 함께 억눌러야 했다. 고통을 포기하니 가슴 꽉 채우는 그 충만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라. 마냥 웃고 즐기기만 하다 고통의 순간이 오면 더더욱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좋은 순간이 와도 기분이 산을 타고 올라가지 않도록 조절을 하게 됐다. 이건 아마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기복이 심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란 걸 살면서 본능적으로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감정이 평균치를 벗어나게 하는 짓을 지양하는 건 내가 이 성과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마련한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난 내 행복을 희생해 사회에 날 욱여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고통 속에서 더 많은 양의 웃음을 발견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이가 있다. 이전에 인간의 고통 속에 깊이 파묻힌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웃을 수 없다.

19쪽

고통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작가의 확신에 찬 말이 그런 나에게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냐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해방감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감옥에 갇혀 있다 누군가가 와서 '너 여기 있을 사람 아니잖아, 나와' 하고 날 끄집어낸 기분이랄까. 그동안 힘들다고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나약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자책하고 채찍질했는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가끔은 그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할 일을 못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란다. 기계도 고장나는 마당에 한치 앞도 모르겠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매번 좋기만 할 수 있겠나. 어차피 힘든 인생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힘들어 하면서 살아야 먹구름이 걷히고 난 후에 오는 햇빛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거다.

시험 기간 때 제일 많이 웃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한 사람들과는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진한 친밀감을 느끼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영화도 책도 마음을 울리는 명작이 등장하는 법이다. 시간이 10년, 20년 지나고 되돌아 봤을 때 가장 오래 남아 있을 기억은 힘듦 속에서 정신 빼놓고 웃었던 순간들이다. 나 하나도 챙기기 벅차던 시절, 내 옆에서 인상 찌푸리다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서로 손 내밀어 이끌어주던 사람들과 앞으로의 인생도 비슷하게 살아가고 싶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풍파가 찾아와 내가 그 고통 속으로 몸을 내던져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어찌저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힘든데 군말 없이 척척 다 해내는 멋있는 사람보다는 멋은 없어도 힘들어 죽겠지 않냐며 술잔 기울이며 웃음 섞인 농담을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쪽이 앞으로 살 날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고통이 저지되면 행복은 흐릿한 편안함으로 쪼그라든다.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깊은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수많은 종류의 괴로움이 무한한 눈보라처럼 쏟아지고, 고통의 가장 강력한 번개 또한 그에게 떨어진다. 모든 방향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고통에 항상 열려 있을 때만 그는 가장 섬세하고 드높은 종류의 행복에도 열려 있을 수 있다."

25쪽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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