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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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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시 하나하나 사랑이란 무엇인지, 밝음부터 어두움까지 사랑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한 자리에 조심스레 놓여 있다.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사랑은 복잡하다. 모정과 부정, 성적인 쾌락, 사물에 대한 애정, 처절한 그리움, 안타까운 그 마음, 존경과 미움. 어찌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세상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참 많기 때문에 모든 걸 내 뜻대로 되게 만들게 하고픈 욕심이 들게 하는 사랑은 날 가끔 괴롭게 만든다. 특히나 그중 가장 어려운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인생이 이토록 어렵고 내가 작아 보이는 건 내가 날 많이 사랑해서겠지. 날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을 거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술 한잔, 202쪽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 이 사람을 끌어 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순간도, 밑바닥을 기는 처절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도 느껴야 한다. 그 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점이 될 만큼 버티고 버텨 터질 듯한 마음을 지나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만 좇으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그걸 알아야 지키고 싶은 그 대상을 위해 마음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햇빛이 가리워질 때 오래 묵은 장작처럼 나의 마음을 태워 불씨를 피워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자꾸만 사랑을 하고 싶은 이유는 사랑이 그 빛을 더 밝게 빛날 수 있게 하는 내 어둠마저 좋아보이게 하기 때문. 어둠도 갖고 있어서 다행이다. 내 어둠까지도 쓸모있게 만들어주는 그대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라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국화빵을 굽는 사내, 250쪽

펄펄 끓는 물에

꽃이 핀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그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든다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펄펄 끓는 물에

꽃은 다시 깊게 뿌리를 내린다

물의 꽃, 254쪽

괜히 음악이나 영화도 남들이 모르는 작품 찾아 보듯이 가장 유명한 시가 아닌, 소소해서 더 와 닿는 시 몇 편을 가져왔다.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읽힌 시보다는 낯설게 느껴져 사물과 주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시가 좋다. 특히 국화빵으로 저런 시를 짓다니 감탄스럽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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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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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저

누군가가 김영사 서포터즈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좋았던 책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난 아마 지체 없이 이 책을 이야기할 거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확실히 얻었다거나 정말 큰 배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지식 축적, 혹은 단순 재미를 위해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나의 선택에 그닥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내용의 탄탄함이나 작가의 똑똑함 같은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만약 이 블로그에 있는 나의 글들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적이 있다면 내가 왜 정여울 작가를 좋아하게 됐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글 쓰는 일의 진정한 쾌락은 내가 맺은 인연, 나를 진정 알아주는 사람, 내 글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감사에 있습니다. 글을 쓰게 된 이후로 저는 아주 잠깐 스쳐가는 인연의 소중함을, 아주 오래전 마주쳤던 사람들의 애틋함을,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기에 저는 더욱 강인하고 따뜻하면서도 정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2쪽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글 쓰기란 이 세상을 향한 나의 애정을 듬뿍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내려가는 행위다.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 머물러 앉아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이 시간 동안에 난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금, 여기' 이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밀도 높은 이 시간들은 다음 몇 달을 흔들리지 않고 살아 가게끔 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나만의 소소한 역사적 기록이자 값진 자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글 쓰기에 대한 정여울 작가의 그 마음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이 간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삶이 이토록 풍성했을까,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하는 마음에 글 쓰기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깨닫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관계들로부터 잠시 나를 고립시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은 큰 자양분이 된다. 오히려 글을 통해 나 자신과 친구가 됨으로써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무서울 게 없어진다. 이때 난 어떤 것을 할 때보다 자유롭고 안전하다. 조건은 나 자신한테만은 솔직해야 한다는 점. 솔직하지 않으면 고독은 두려운 존재가 된다. 모순도 많고 상처 받을까 겁나 가끔은 이기적인 나를 혼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부족한 나의 곁에 서있는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며 진정으로 감사를 느낀다. 그리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글 쓰기를 통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필요로 할 때 내가 방패로 나설 만큼 용기가 피어오를 수 있게 말이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순간을 스스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시간이 있기에 어떤 일이 닥쳐 와도 난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지 않는다.

문장이 탁! 하고 떠오르는 순간은 정말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이나 경이로운 순간이죠. 미치게 좋아요. 그 맛에 글을 쓰는 것이죠. 어떤 대상이 나에게로 다가와서 오직 나에게만 말을 거는 듯한 그 아름다운 착시. 그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글을 씁니다. 그 순간의 희열은 독자들에게도 분명히 전달되어요. 내가 기뻐서 쓴 글은 독자들이 귀신같이 알아보죠.

47쪽

다들 내면의 수심 아래로 침잠하는 시간을 한번 쯤은 꼭 가져보길 바란다. 바다가 깊고 어두워 보여도 막상 그 속에 들어가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심오한 풍경에 놀랄 것이다. 수면 위에 있는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이걸 혼자 보고 있어도 아쉽지 않다. 언젠가 누군가 그걸 알아 본다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나와 함께 이 바다를 헤엄치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조용한 새벽 방에서 노트북을 타닥타닥 치는 소리로 정적을 메우거나, 혹은 에어팟을 꽂고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그 장소가 어디가 됐든 난 글을 쓰며 그곳으로 풍덩- 빠진다. 종일 나를 애태우던 잡생각들이 사서가 서가를 정리하듯 알맞는 곳으로 정리되어지는 기분. 절대 풀 수 없을 것만 같던 퍼즐 조각들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 작품이 완성된 기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아마 이 쾌감을 알지 못할 거다.

정유정 작가가 추천의 글을 썼다. "책을 덮고 나니 작가와 밤을 새워 술잔을 기울인 듯한 느낌, 그것만으로도 이다음 글쓰기는 훨씬 덜 외로워질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밀려온다. 이 책과 함께라면 글쓰기는 고독한 외톨이의 투쟁이 아니라, 혼자 있어도 언제나 온 세상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신명나게 춤을 추는 유쾌한 축제가 된다"고. 글 쓰는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거라는 것.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외로움이 사무치게 오는 날이 오면 난 정여울 작가를 떠올릴 것이고, 마치 친구가 옆에 있는 듯 외로움 속 따뜻함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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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마음 - 뇌, 몸, 환경은 어떻게 나와 세계를 만드는가
앨런 재서노프 지음, 권경준 옮김, 허지원 감수, 권준수 해제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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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마음

앨런 재서노프 저

과학 관련 저서를 읽지 않고 독서 편식을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수동적으로 지식을 비판 없이 받아 들여야 할 것만 같은 무력감 때문이었다.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비슷한 점을 행간에서 찾고, 또 내 사고의 빈틈을 보이게 하는 대목에서는 자극도 받는 능동적인 독서를 했을 때 독서를 하고 나서 느끼는 바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입에 대지도 않던 야채를 한번 먹어보기로 결정한 이후로부터 훨씬 다양한 미식을 경험하게 된 신세계가 열린 것처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는 것 외의 분야를 도전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들게 되었다.

<생물학적 마음>은 따라서 이러한 나의 행보의 시작점이다. 아직은 모르는 용어가 나올 때마다 지레 겁을 먹고 페이지를 훑고 넘기던 순간들도 정말 수도 없이 많았지만, 참을성을 갖고 중반부까지 놓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글의 페이스에 이리저리 휘둘리지는 않게 되더라. 극단적인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 섞여 있어 그런가 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주제의식이 뇌와 마음, 그리고 환경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말들로 집중력을 잃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뇌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가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일부 해소시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페이지의 모서리를 계속 접게 되었고, 처음으로 과학이 감정과 일상,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구나 하며 친밀감이 생겼다.

그래서 사람은 식물과 같다. 날씨에 따라 꽃이 피거나 시들고 어떤 경우에는 인테리어 장식가의 변덕에도 좌우되니 말이다. 밝은 날은 더 밝은 분위기로, 더운 날은 더 뜨거운 성질로 이어지고, 더 맑은 날은 더 명확한 사고를 촉진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펴본 환경적 영향은 확실히 우리의 두뇌를 통해 작동하지만, 우리는 두뇌에 지배받지는 않는다. 변화하는 조건의 환경 속에서 우리 뇌는 주변 환경을 흡수하고 반영하여 외부의 영향을 감정 상태와 행동의 변화에 매끄럽게 전달한다.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활기나 무기력은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

203쪽

때로는 감정에 지배받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 날들엔 해답이 없다. 그냥 잠자코 그 시간을 지나쳐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몰되지도 빠져 나가려 애쓰지도 않고 가만히 일상을 흘려 보내다 보면 다시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이 시간은 정말 외롭다. 평소처럼 말이 많거나 까불지 않아 겉으로 보기엔 가장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 속에서 난 수많은 생각들과 전투적으로 싸우고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에 혼자 하는 이 싸움은 고단하다. 내가 문제가 아닐까 나 자신을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그때가 되면 내 세상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래서 우울감과 불안함, 죄책감, 분노 등에 빠지는 이 시간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아직도 완전해지지 못한 것일까 하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망가진 뇌'라는 개념처럼 나는 내가 영구적으로 망가진 거라고 확신했던 시절이 있다.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비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탄하고 나 자신을 매도하기보다 시간에 따라 저절로 회복하기를 기다리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 써놓은 책의 구절이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환경의 자극을 뇌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는 말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내 뇌는 환경에 맞춰 내 상태를 조절하고 있던 거구나 내가 내 감정을 100%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책임감을 덜어준다.

"어떤 뇌도 외딴 섬이 아니다"라는 6장의 제목이 내가 그 발버둥치는 시간 동안 느끼는 외로움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준다. 뇌과학이 나를 위로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증거로 이루어져 있는 저 문장이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 책 한 권보다 더 나를 안심시킬 수 있겠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면 병이 이미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겨울이 되면 기분이 가라 앉았는데, 그게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빛이 없으면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뇌의 환경 민감도 때문이라는 것 그거 하나만 알아도 곧 다가올 겨울이 덜 무서워진다. 햇빛을 쐬기 어려운 날이 많은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살지 말아야겠다고 예전부터 하던 생각이 책을 통해 더욱 굳혀졌다 ㅋㅋㅋㅋ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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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
이수정.이은진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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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ㆍ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

이수정ㆍ이은진

범죄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생기고 나서부터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의 심리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도 잘 알게 된 지금이다. 그동안은 마치 악마의 소행처럼 인식되던 범죄라는 영역이 그 안의 심리를 들여다 보고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이토록 추악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됨으로써 단단해진 껍질이 깨부셔진 셈이다. 범죄라는 건 깊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게 가해자와 피해자 두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촘촘한 연결망처럼 하나의 사건이라는 지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어느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는 범죄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도사리고 있는, 모두가 당면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만들어준다. 범죄를 본격적으로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고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끔찍하고 흉악한 일들을 우리의 의식과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차라리 본질적으로 나쁜 한 개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악해 손 쓸 새도 없이 누군가를 해한 거라면 아마 범죄는 이해하고, 처리하고, 통제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범죄 가해자 중에 그게 설령 불합리하고 인정할 수 없을지라도 사연 하나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물론 기구한 사람들 중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 이 사회가 지금처럼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만, 많은 범죄 사건들이 놀라울리만큼 우리와 비슷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간과해서는 안된다. 삶을 살면서 우리도 언젠가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될 수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남의 불행에 보태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며 못 본 체 지나가게 될 수도 있단 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매체에서 본 그 범죄 사건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한 개인이 완성된 인격을 갖는 일은 절대로 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특히 흉악범죄를 일으킨 사람의 과거력을 추적하다보면 첫 단추가 언제, 왜 잘못 끼워졌는지 발견하곤 한다. 물론 이런 발견으로 이들의 잘못을 면책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보다 근본적 원인을 파악함면 그에 대한 대안 역시 찾아낼 수 있다는, 그야말로 학자적 관점에서 각장을 구성했다.

11쪽

책을 읽는 동안 사례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인간은 적절한 사랑이나 관심 없이는 정말 나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고찰을 엿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가끔씩 닥치는 삶의 불행에 의지가 꺾이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 속을 채우면 남이 미워지고, 남을 미워하는 내가 미워지고, 날 미워하게 만든 남이 또 미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음을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충동적인 말로, 부주의한 행동으로, 그리고 배려의 부족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똑같이 생채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인간에게 남을 위한 일을 하는 건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 불행을 내 선에서 끝내야겠다는 그 결단은 정말 그 불행 한가운데에 있을 땐 뼈와 살을 깎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삶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때 나를 포기하고 무책임하게 내 인생을 제멋대로 놓아 버리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을 들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손으로 누군가의 삶을 풍비박산을 내고 그들의 목숨 값을 가져가는 행위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해자들의 몫이다. 생각보다 내 불행을 남 탓하는 것, 가족 탓, 그리고 환경 탓하는 건, 불평하고 투덜대고 신경질 내는 건, 시기하고 질투하는 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되려 상처를 주면서도 피해자인 척하는 건 쉬운 일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음이 정말 큰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나의 아픔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지금까지 살면서 그 의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절로 생긴 사람이 있다면 이따금씩 삶의 무게가 힘들어 보이는 누군가들에게 당신들 특유의 따뜻함을 모아 한마디만 건네줄 수 있길 바란다. 언젠가 어디서 갑자기 어두운 손이 나타나 당신의 삶을 끄집어 내리려 할 때 그때의 그 따뜻함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여러분들에게 되돌아올 테니 말이다. 나 또한 삶이 수월해지고 쉬워질 때 자만하지 않고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다짐하고 간다.


각 사례별로 분석이 많지 않고 성격장애 여러가지를 나열한 느낌이 있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전문성을 찾기 위함이라면 다른 서적을 찾는 걸 추천한다. 어떤 식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약간의 가이드라인이 조금 더 제공되었으면 책을 통해 느끼고 고민하게 되는 바가 훨씬 많았을 것 같다. 즐겨보던 <알쓸범잡>과 비슷한 맥락에 있어 앞으로도 더 관심 갖고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독서 시간이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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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 콘텐츠의 미래를 이끄는 여섯 개의 모멘텀
김경집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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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김경집 저

깊은 인문학적 통찰에서부터 비롯되는 콘텐츠를 상당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의 주제의식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앞으로의 세상은 아이디어 싸움이 될 거라는 경고와 함께 변화에 끌려 다니지 않고, 어떻게 이 세상 속을 헤쳐 나갈 것인지 6가지 키워드로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타파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술에 비해 사회나 산업 구조,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는데, 이를 하나하나 짚어 꼬집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비관보다는 더 발전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었다.

책은 '섬세하고 깊은 사유, 다양한 감각, 풍부하고 독특한 감정' 등의 요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속도를 내가 정하기 때문에 '사소한' 관형사나 부사 하나에서도 감동과 충겨을 받으면 멈춰 서서 오랫동안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 사소한 '낱말' 하나에 꽂혀 한참을 머무르며 그 낱말이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감정, 감각, 이성을 소환하며 엮어낼 수 있는 건 분명히 말이 아니라 글이 주는 엄청난 힘이고 매력이다.

111쪽

책에서 담고자 하는 많은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사고의 호흡과 문장의 길이에 관한 대목이었다. 글쓰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난 단어마다 뉘앙스와 역할이 각각 다르다고 느끼고, 단어에 글을 쓰는 의도와 쓰는 사람의 성격까지 담아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어떠한 맥락에 너무나도 적절한 단어를 쓴 것을 예상 밖의 순간에 목격했을 때 느껴지는 울림은 정말 그 어떤 자극보다도 더 강렬하다. 나 역시도 그렇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글을 쓸 때 딱 그 자리에 필요한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지기도 하고, 인터넷을 탈탈 털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할 그 낱말을 찾았을 때는 정말 기분이 벅차 오른다.

요즘 청소년들의 어휘력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미래에 내가 교사가 된다면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 들이고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원하는 의미를 담기 위해 사고의 호흡을 길게 빼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유연한 사고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텐데, 이런 경직된 상태를 깨부실 만한 심미적, 감각적, 지적 자극제들이 우리 교육과 사회에 좀 더 빈번하게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들의 부족한 점들은 사회가 가진 구멍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문제의 탓을 아이들에게 돌리는 건 무의미하며, 이는 오히려 세대 간의 격차를 벌이는 원흉이다. 아이들이 볼 콘텐츠를 만들 지금 우리 세대가 앞으로는 이런 지점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때로는 영감이 불쑥 튀어나와 그야말로 한 큐에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스파크처럼 발화되는 특정한 지점이나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그 영감이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뜨악해하는 건 기존의 자신의 사고 체계 내에서만 사유하고 추론하기 때문이다. 그런 닫힌 조건에서는 영감이 존재하기 어렵다.

192쪽

영감이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사실 온다기보다도 왔을 때 잡아챌 수 있는 판단력과 직관력이 있다는 게 좀 더 맞는 말이다. 아마 자신을 믿고 묵묵하고도 꾸준히 머리 속에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온 자들에게나 한순간에 스쳐 지나칠 법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글이 되고, 미술 작품이 되고, 직접 작곡한 음악 앨범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기업이 되는 게 아닐까. 모두의 눈을 뜨이게 할 아이디어는 번뜩이지만 텅 비지 않았다. 책에서 작가가 소개해준 여러 사례들을 보면 '무르익었다'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르익어 온 그 생각들이야말로 진정 관습과 편견의 한계를 뚫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말이 있다. "빠른 성공은 대부분 설익은 과일과 같아서 인생의 참맛을 주지 못합니다. 농익은 과일은 모든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인생을 마치는 날 이처럼 탐스러운 열매 같은 삶이라면 그 사람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난 후 픽사와 함께 일을 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집단지성과 직관의 힘을 깨우친 잡스처럼, 수없이 많은 거절에도 어린 시절 무협 소설에서 배운 '의협'으로 꿋꿋이 꿈을 향해 뛰어간 마윈처럼 하루 아침에 일어난 모래성같은 성공보단 잘 밟아 다져진 길을 구축해내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거닐 수 있는 넓은 평지로 이어질 그런 길 말이다.


ㅜㅜ 페이지 수가 상당히 긴 편인데 반복적인 부분들을 줄이면 2/3로 줄지 않았을까 싶ㄷㅏ...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나 구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 약간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만한 페이스였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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