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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마음 - 뇌, 몸, 환경은 어떻게 나와 세계를 만드는가
앨런 재서노프 지음, 권경준 옮김, 허지원 감수, 권준수 해제 / 김영사 / 2021년 6월
평점 :
생물학적 마음
앨런 재서노프 저
과학 관련 저서를 읽지 않고 독서 편식을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수동적으로 지식을 비판 없이 받아 들여야 할 것만 같은 무력감 때문이었다.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비슷한 점을 행간에서 찾고, 또 내 사고의 빈틈을 보이게 하는 대목에서는 자극도 받는 능동적인 독서를 했을 때 독서를 하고 나서 느끼는 바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입에 대지도 않던 야채를 한번 먹어보기로 결정한 이후로부터 훨씬 다양한 미식을 경험하게 된 신세계가 열린 것처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는 것 외의 분야를 도전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들게 되었다.
<생물학적 마음>은 따라서 이러한 나의 행보의 시작점이다. 아직은 모르는 용어가 나올 때마다 지레 겁을 먹고 페이지를 훑고 넘기던 순간들도 정말 수도 없이 많았지만, 참을성을 갖고 중반부까지 놓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글의 페이스에 이리저리 휘둘리지는 않게 되더라. 극단적인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 섞여 있어 그런가 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주제의식이 뇌와 마음, 그리고 환경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말들로 집중력을 잃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뇌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가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일부 해소시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페이지의 모서리를 계속 접게 되었고, 처음으로 과학이 감정과 일상,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구나 하며 친밀감이 생겼다.
그래서 사람은 식물과 같다. 날씨에 따라 꽃이 피거나 시들고 어떤 경우에는 인테리어 장식가의 변덕에도 좌우되니 말이다. 밝은 날은 더 밝은 분위기로, 더운 날은 더 뜨거운 성질로 이어지고, 더 맑은 날은 더 명확한 사고를 촉진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펴본 환경적 영향은 확실히 우리의 두뇌를 통해 작동하지만, 우리는 두뇌에 지배받지는 않는다. 변화하는 조건의 환경 속에서 우리 뇌는 주변 환경을 흡수하고 반영하여 외부의 영향을 감정 상태와 행동의 변화에 매끄럽게 전달한다.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활기나 무기력은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로는 감정에 지배받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 날들엔 해답이 없다. 그냥 잠자코 그 시간을 지나쳐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몰되지도 빠져 나가려 애쓰지도 않고 가만히 일상을 흘려 보내다 보면 다시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이 시간은 정말 외롭다. 평소처럼 말이 많거나 까불지 않아 겉으로 보기엔 가장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 속에서 난 수많은 생각들과 전투적으로 싸우고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에 혼자 하는 이 싸움은 고단하다. 내가 문제가 아닐까 나 자신을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그때가 되면 내 세상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래서 우울감과 불안함, 죄책감, 분노 등에 빠지는 이 시간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아직도 완전해지지 못한 것일까 하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망가진 뇌'라는 개념처럼 나는 내가 영구적으로 망가진 거라고 확신했던 시절이 있다.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비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탄하고 나 자신을 매도하기보다 시간에 따라 저절로 회복하기를 기다리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 써놓은 책의 구절이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환경의 자극을 뇌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는 말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내 뇌는 환경에 맞춰 내 상태를 조절하고 있던 거구나 내가 내 감정을 100%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책임감을 덜어준다.
"어떤 뇌도 외딴 섬이 아니다"라는 6장의 제목이 내가 그 발버둥치는 시간 동안 느끼는 외로움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준다. 뇌과학이 나를 위로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증거로 이루어져 있는 저 문장이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 책 한 권보다 더 나를 안심시킬 수 있겠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면 병이 이미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겨울이 되면 기분이 가라 앉았는데, 그게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빛이 없으면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뇌의 환경 민감도 때문이라는 것 그거 하나만 알아도 곧 다가올 겨울이 덜 무서워진다. 햇빛을 쐬기 어려운 날이 많은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살지 말아야겠다고 예전부터 하던 생각이 책을 통해 더욱 굳혀졌다 ㅋㅋㅋㅋ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