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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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를 읽은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소외된 계층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전쟁 소설의 한 획을 그었다고 여겼지요.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하 <말리>) 역시 전쟁을 다루고 있었으며, 부커 상까지 수상할 정도라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책일 거라는 믿음에 읽었습니다.

 

<말리>에서 말리는 사진작가입니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 반군 사이를 오가며 여러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속에는 무너진 건물들, 사체들이 담깁니다.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사진과 글을 통해 전쟁을 지켜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뉴스를 통해 전쟁 소식을 접합니다. 영상에 비춰진 피해자들의 암담한 현실, 사체들, 각종 무기의 향연을 지켜봅니다. 피해자들을 안타까워하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요. 이런 마음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은 평온한 세상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리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군인들. 매일 목격하는 피해자들. 매일 듣는 총성과 폭발음. 상상하기도 힘든 잔혹한 모습들. 이런 현장에 익숙해진 말리는 굉장히 덤덤해집니다.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사명감 혹은 의미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작가로서 일을 할 뿐입니다. 만일 자신의 사진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위란의 솜씨라고 합니다. 위란이 노출을 조절하고 프레임을 잘라낸...(중략)...평범한 똑딱이 사진에 미처 의도하지 않았던 깊이를 불어넣는다고(429) 합니다.

 

<말리>는 말리를 통하여 전쟁과 동떨어진 독자를 현장으로 끌어당깁니다. 전쟁이 오래될수록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의 일상이 독자의 평범한 일상과 얼마나 다른지 상상하게 만듭니다. 만일 이 책에 그림이나 사진이 실렸다면 어땠을까요? 상상에 리얼리티가 추가되어 독자를 더 오싹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말리로 대표되는 우리는 전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끊임없이 보도되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들과 영상에 무뎌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타인의 고통,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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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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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제목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낙원과 창백, 이 두 가지 조합이 신선합니다. 창백하다는 말을 긍정적 단어로 써 본 일이 없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낙원을 만드는 손을 창백하다고 표현했는지 궁금증이 일어 책을 읽었습니다. 핏빛 자국이 맺힌 건물 표지는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15년 전후의 도진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습니다. 15년 전, 도진은 아버지의 이중성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병원에 숨어들어 약점을 찾아냅니다. 그 약점을 경찰에 고발하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봤던 현장, 아버지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알고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어쩌면 아버지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감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 좌절감은 한 사건을 계기로 더욱 굳어집니다. 사건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경찰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 한 마디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속삭이면서. 아버지의 죄를 밝히려 했던 도진은 나락에 떨어집니다. 이제 자신에게는 아버지를 고발할 자격이 사라집니다.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도진은 외면을 선택합니다. 경찰이, 아니 어쩌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걷습니다. 면죄되고 싶다는 이유보다 앞으로도 이 사건이 터지기 전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더 큰 욕망을 위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한다. 반성보다는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자신도 인간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그때의 기억을 삼켰다. 구태여 그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도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66-67)

 

이제는 손이 왜 창백해야만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손은 원래 창백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이중성을 알리겠다는 달빛처럼 맑은 의지를 다졌던 손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흐릿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창백해지는지 저자는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차도진이라는 한 인물만을 따라가도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 다양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인물들의 욕망까지 덧붙여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욕망이 가득한 정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정글에서는 욕망이 살아남는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것처럼 늘 길을 점검하고자 합니다. 이 길 위에 떨어뜨린 가치가 있지는 않은지.

호흡곤란이 찾아오면 눈앞이 흐려졌다. 흉통에 느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도진은 고개를 숙였다. 핸들에 머리를 처박은 채 가쁜 숨을 골랐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려 하자 또다시 온몸에 거부 증세가 나타났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한다. 반성보다는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자신도 인간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그때의 기억을 삼켰다. 구태여 그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도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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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은 자신이 처음 확신을 가진 추리를 무너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형사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범인은 그 어둠을 통해 영원히 도주할 수 있다고 말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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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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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이하 산장)를 다 읽은 뒤 떠오른 단어는 위로입니다. 아쓰코, 유리에, 아마미야는 오디션에 떨어지고 연극을 그만두려는 마사미를 찾아갑니다. 연극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우니 그만두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면서 줄리엣이 아닌 맥베스 부인을 연기했다면 심사 위원들이 만점을 주었을 거리고 위로합니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설령 마사미가 연극을 계속하더라도 맡을 수 있는 배역은 정해져 있다고 한계를 긋는 말입니다. 그 말이 마사미에게 위로였을 리가 없습니다.

 

셋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다릴 때, 마사미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그 일상에 이제 마사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마사미를 설득하려고 왔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마사미는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집니다. 그래도 동료로서 자신을 설득하려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말에는 자신을 향한 염려나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가까웠던 셋도 그러합니다. 당연히 연극계에서도 잊힐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 불안이 셋을 향한 미움보다 더 커졌을지도 모릅니다.

 

마사미는 자신이 연출한 무대에서 연기하는 셋을 지켜봅니다. 자신을 위해 연기하는 그 셋을 보면서 어땠을까요?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연기에 놀라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합격은 소문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마사미는 그들의 이 아닌 연기에 진정한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2023715일에 초판이 간행됐는데, 벌써 3쇄입니다. 그만큼 국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얼마나 많이 사랑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는 산장 시리즈 3부작이라고 합니다.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하쿠바 산장 살인 사건>을 읽지 않은 관계로 동일한 등장인물이 나오지는 알 수가 없네요. 아니면 산장을 배경으로 한 점이 똑같아서 산장 시리즈라고 부르는 걸까요? 흐음... 시리즈 1,2를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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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말들 -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정확한 연습 문장 시리즈
재수 지음 / 유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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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도서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자신이 소개하는 방법으로 도전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저자와 독자의 성질이 다르니 그 방법이 꼭 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려면 수많은 책을 읽는 수밖에 없지요. 그 중에서 자신과 상황이 제일 비슷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유사한 예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책을 찾더라도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을 찾기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번거로운 과정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기계발 도서를 찾는 이유는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겠지요. 자기계발 도서에서 한 줄이라도 발견한다면, 그 독서는 성공한 셈이지요. 여기 그 과정을 이야기해 주는 책이 있습니다. <자기계발의 말들>입니다.

 

책에는 저자가 자신에게 울림을 주었던 100개의 문장과 문장에 관한 의견이 적혀 있습니다. 주로 책에서 문장을 발췌합니다. 책의 장르를 보면 이외로 다양합니다. 자기계발 도서를 중심으로 뇌과학,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장을 고릅니다. 삶의 방식은 한 장르가 아니라는 것처럼.

 

저는 상황과 목표가 비슷한 예를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쉽게 적용하고 결과를 빨리 얻기 위한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스스로 한계선을 그은 셈이지요. <자기계발의 말들>이 그 한계선을 넘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변화시키는 행동력이 있다면 모든 경험은 도움이 된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결과에 집착했을지도 모릅니다. 타인에게 해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급급했습니다. 자기계발 도서의 저자가 설명한 방법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저에게 맞는 방법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실천하는 과정이 벅찼습니다. 진짜로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 불안했고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 책의 저자의 방법은 나와 맞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며 다른 책을 들췄습니다. 그 책의 저자의 방법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또 다른 자기계발 도서를 찾고... 한 겨울, 눈길 위에서 헛돌아가는 바퀴처럼 돌았습니다.

 

<자기계발서의 말들>을 읽으면서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저자는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마인드맵을 접목해 새로운 방법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왜 저는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요? 실패한 이유를 찾아내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외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짐작건대 실패했을 때, 핑계거리를 남겨두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와 나는 다르다는 핑계.

 

앞으로는 핑계를 둘러대지 않는 삶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재수 작가님이 언급한 수재 챌린지(83) 중 하루 20분 이상 책읽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원래 하루에 한 번은 책을 펼치자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책을 펼치는데 익숙해져서 10쪽씩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양을 늘렸으니 이제 시간을 늘려보려고 합니다. 천천히 조금씩 제 삶에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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