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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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제목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낙원과 창백, 이 두 가지 조합이 신선합니다. 창백하다는 말을 긍정적 단어로 써 본 일이 없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낙원을 만드는 손을 창백하다고 표현했는지 궁금증이 일어 책을 읽었습니다. 핏빛 자국이 맺힌 건물 표지는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15년 전후의 도진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습니다. 15년 전, 도진은 아버지의 이중성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병원에 숨어들어 약점을 찾아냅니다. 그 약점을 경찰에 고발하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봤던 현장, 아버지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알고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어쩌면 아버지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감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 좌절감은 한 사건을 계기로 더욱 굳어집니다. 사건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경찰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 한 마디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속삭이면서. 아버지의 죄를 밝히려 했던 도진은 나락에 떨어집니다. 이제 자신에게는 아버지를 고발할 자격이 사라집니다.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도진은 외면을 선택합니다. 경찰이, 아니 어쩌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걷습니다. 면죄되고 싶다는 이유보다 앞으로도 이 사건이 터지기 전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더 큰 욕망을 위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한다. 반성보다는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자신도 인간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그때의 기억을 삼켰다. 구태여 그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도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66-67)

 

이제는 손이 왜 창백해야만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손은 원래 창백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이중성을 알리겠다는 달빛처럼 맑은 의지를 다졌던 손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흐릿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창백해지는지 저자는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차도진이라는 한 인물만을 따라가도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 다양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인물들의 욕망까지 덧붙여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욕망이 가득한 정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정글에서는 욕망이 살아남는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것처럼 늘 길을 점검하고자 합니다. 이 길 위에 떨어뜨린 가치가 있지는 않은지.

호흡곤란이 찾아오면 눈앞이 흐려졌다. 흉통에 느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도진은 고개를 숙였다. 핸들에 머리를 처박은 채 가쁜 숨을 골랐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려 하자 또다시 온몸에 거부 증세가 나타났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한다. 반성보다는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자신도 인간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그때의 기억을 삼켰다. 구태여 그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도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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