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아야미
전직 여배우, 오디오 극장의 사무원이자 사서이자 매표원,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는 여자,
어쩌면 시인 여자를 죽이고 오디오 극장의 직원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여자.

 

★ 늙은 부부 중 아내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는 여자,
치마 아래서 살짝 무른 과일과 담배와 젖은 빨래와 생선 포장지 냄새가 나는 여자,

시인 여자의 엄마일 수도 있는 여자.

 

★ 극장장
아야미가 일하는 극장의 극장장,
아야미와 때때로 진정 무거운 어둠이 있는 보이지 않는 식당에 간다.

 

★ 프리랜서 여니
'그럼요, 당신 말을 듣겠어요. 그리고 내 말도 들어주세요.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전화를 했잖아요, 아닌가요?
그럼요,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발견할 거예요, 항상 그렇듯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지금은 여니가 부재중이랍니다.
나중에, 여니가 돌아오면 여니는 당신의 동굴이 될 거예요.
동시에 존재하는 세 개의 동굴......'


이라는 자동응답을 등록해 놓고 때때로 부하와 통화를 해 주는 여자.

 

★ 시인 여자
부하의 설명에 의하면~
독일어 교습을 받는 여자,
부하가 동경하고 늘 살피는 여자,
오디오 극장에서 일하는 여자.

 

★ 부하
시를 좋아하지 않고 읽지도 쓰지도 않지만
시인 여자 때문에 시인을 동경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남자.

 

★ 마리아
부하가 여행간 칠레에서 단 한번 만났는데 돈을 부쳐 달라고 편지로 연락을 해온 여자.

 

★ 김철썩
알려지지 않은 늙은 시인,
학교를 다니던 중에도 여러 직업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집의 아들, 
야간 버스를 운전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자 극장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남자.

 

★ 작가 w
아야미의 집에 묵게 되는 작가,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저자의 작품을 조금 설명해 주고 있지만
아주 친절하게까지는 아니다.
이것이 배수아의 매력이 아닐까~

작품 속 내용이 모두 동그랗게 연결돼 있다.
시인 여자와 아야미, 부하, 극장장, 늙은 부부, 김철썩.

작가 w는 시인 여자와 아야미를 도플갱어라고 표현하지만,
자신의 집 지붕에서 시체로 발견된 시인 여자를 죽인 사람은 아야미,
독일어 수업을 받았던 아야미는 그녀를 죽이고 그녀 행세를 하면서 살지만
시인 여자를 관찰하는 게 생의 낙이었던 부하는 그녀가 그녀가 아님을 알고
극장에 찾아가 죽여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린 것이 아니었을까?
아내인 시인 여자를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극장장을 죽인 것도 아야미.

물론 내 생각이긴 하지만.
ㅎㅎ

다시 읽어봐야겠다.

 

★ 여니가 말하는 동굴

 

1. 첫번째 동굴은 우리를 끌어당기는 은밀한 공간인데, 그것은 우리가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에요. 동굴 속 비밀의 샘 밑에서는 따뜻한 양귀비 꿀이 솟아난답니다.
향기롭고 달콤해요. 샘은 우리의 시작이며 종착지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개미가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요.

 

2. 두번째 동굴은 환영의 동굴이어서, 우리를 아주 먼 땅으로 데리고 가지요.
우리는 술 항아리를 손에 들고 메마른 스텝 황야를 걷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항아리 입구에서 출렁거리는 우윳빛 액체가
우리의 발등으로 떨어지지요. 하얀 액체에서는 꽃 이파리를 발효한 술 냄새가 나요.
우리의 혀는 불타요. 그래서 항아리를 들어 그 속의 흰 술을 마셔보지만,
그래도 갈증은 영영 사라지지 않아요. 멀리서 단 한 번의 처절한 신음 소리와 함께
화산이 폭발해요. 분출된 흰 재와 마그마가 허공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건 자연과 사물들이 동시에 죽는 순간이에요. 의식의 정지, 그리고 암전.
동공과 혈류가 멈추어버리는 순간. 모든 색채와 소리가 사라지고 모든 정체성과
밀도가 소멸하는 순간.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항아리 속의 흰 술 한 방울을 마시기를 소망해요.
화산재가 하늘을 온통 가려버리는 그때, 신과 인간과 공룡이 동시에 죽음을 맞는 그 순간에
말이에요.

 

3. 세 번째 동굴을 컬트의 장소랍니다. 어둡고도 엄격한 비밀의 장소지요.
비밀 가운데서도 가장 은밀하고도 두려우며, 금지된 곳이에요.
황소에게 욕정을 품은 여자들이나 딸과 동침한 남자들이 간다고 알려진 곳이죠.
하지만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금지의 봉인이란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환각에
불과하다고 해요. 종교보다 더욱 원초적인 판타지가 바로 터부라는 거예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운 경외심은 더 이상 본질로서의 두려움이 아닌 쾌락을
배가시키기 위한 역설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말도 있지요.
우리의 잠은 이제 세번째 동굴로 흘러들어가요.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우리의 몸을 동굴의 기운에게 맡긴 채 나아가요.
우리는 넋을 잃은 상태예요. 사로잡혔으니까요.
무엇인가가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강하에 빨아들여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비밀과 한 몸이 되고 있어요.
그건 숨 막히는 불안이고 가슴이 조여드는 공포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혹이고 열락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홀린 듯이 금기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요.

"당신도 이제 알고 있겠죠, 세 개의 동굴은 나에게 속한 육신의 세 개의 구멍에
해당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곧 당신에게 속한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그 장소는 당신에 의해서 비로소 성격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에요.
육체가 교통하는 요소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다른 통로를 통해서도 지금 내가
당신을 아는 것처럼, 그리고 당신이 나를 아는 것처럼 존재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열락의 거울상이 없다면, 우리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세 개의 동굴은 세 개의 거울이에요.
사랑은 알려짖 않은 동굴을 찾아 헤매는 행위지요. 지상 어딘가에 있는, 깊고, 어둡고,
울림이 있으며, 증폭하고, 두렵고, 홀리게 만드는, 그리고 온전하게 사적인,
나를 위한 비밀, 단 하나의 배(ship), 단 하나의 숨겨진 장소......"

 

★ 유일한 하나의 오탈자가 발견되다

82쪽 8줄 : 건너는 -> 건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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