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고전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에 이 작품이 나왔더라' 에 초점을 맞추는 게

대작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또한,

올해로 돈키호테가 태어난지 404년이 됐으니

당시와 현재를 함께 비교해 봐야 하는 것이 바로 고전을 대하는 이치.

 

원작을 읽어보지 않고 돈키호테를 말한다는 것은

감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꼈고,

과연 우리의 눈과 귀로 전해 보고 들은 그 모든 돈키호테의 저자나 연출가들이

과연 그것을 제대로 알고 각색하고 표현해 냈을지 의심이 갈 만큼

이것은 아무나 감히 아무렇게나 건드려서는 안 될 엄청난 작품이었다.

 

너무 두터워서 편하지 않은 장소에서 보고 난 후엔 꼭 팔목을 주물러 드려야 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 시선 의식 안 하고 지하철에서 무식하게 두꺼운 책을 보다 낄낄대는

여자아이로 돌아가게 해주었으니 이 책은 또 다른 면으로도 고맙구나.

 

도대체가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어디서 그런 화술들을 또는 글쓰기를 배웠는지

편력기사의 여행에서 우연만으로 만난 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엄청난 이야깃거리를

(그것도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다음 방향 또한 점지해 주지 않는 그런 이야기)

줄줄이 쏟아낸다.

 

그 내용 중 마음에 조금 들었던 부분은

452쪽부터 시작하는 안셀모에게 친구 아내의 정조를 시험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과

531쪽부터 문과 무에 대해 연설하는 돈키호테의 그 부분과

666쪽 기사도 소설과 연극에 관한 교회법 연구원의 말은

작가 세르반테스가 주둥이만 살아 떠들어대는 그런 치는 아니란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줘서

어쩐지 언어로써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맞춤법이 열 군데 이상 틀린 책이었지만,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교정을 제대로 안 본 것쯤이야 거뜬히

용서할 수 있겠다, 흠^^

 

참, 보면서 자꾸만 예전에 봤던 무서운 영화의 전야제가 떠올랐다.

패러디 영화는 그 작품에 쓰인 모든 영화를 본 후에야 진정한 재미 또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무식한 생각에 무서운 영화에 나오는 스물한 편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본 영화를 대했던 기억.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

세르반테스는 작품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작가와 그들의 배설물을 열거했고

그걸 보기 전엔 돈키호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읽고도 읽지 않은 멍청이 독자가 될까봐

걱정이 됐던 내 알 수 없는 병 때문이었을 것으로 모든 생각은 거기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