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류소연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문장이 대체로 짤막하다.

그럼에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표현이 덜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안 돼! 이것이 에리히 어머니의 생각이다'와 같은.

 

하인츠와 브리기테, 파올라와 에리히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한 번씩 하더니

끝무렵에는 둘을 함께 나열하며 비교한다.

연애를 하기 전부터 연애를 하게 되는 계기와 그 이상까지.

조금도 달콤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솔직하고 딱딱한 내용에 말투.

하지만 반기를 전혀 들 수가 없이 정확하다.

어쩐지 너무 사실적이라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라며

반대 의견을 전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119쪽 할아버지와 할머니 얘기.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부터 그녀를 증오했는데,

이제 그 증오는 습관이 되어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증오는 늙어서까지 간직된다.

사람이 늙어서 바라볼 게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오래된 그리고 입증된 증오만이 있을 뿐이다.

또 증오가 점점 커지는 이유는

할머니가 아마도 예전에 보유하고  있었을 자신의 유일한 자본인 아름다움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할머니는 이미 가치를 상실했다.

젊은 여자들은 젊은 남자들의 곁에서의 안정된 미래를

썩어빠진 늙은이에게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들도 거의 죽은거나 다름없는 할머니들보다는

느리고 또 서서히 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죽어 간다.

그렇게 죽는 건 죽는 거고, 잃는 건 잃는 거고 사라져 가는 거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부인인 할머니는 젊고 멋졌던 남자가

망할 늙은이가 되어 가는 쇠퇴의 과정을 항상 기억나게 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낡아빠졌고, 할머니는 노쇠해진다.

소비자는 눈에 안 보이는 데도 그들은 소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남편들이 일정한 어느 나이부터는 무거운 죽을병에 걸려서

최후의 종말을 맞을 때까지 부인에게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다.

남편들은 가스레인지, 음식을 차리는 탁자, 책상, 싱크대, 여물통으로부터,

부인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도대체 이 늙은 건달이 어디로 갈 능력이나 있겠는가? '

 

아! 파올라는 열다섯에 에리히의 아이를 임신해 그 아이를 낳고,

머리 나쁜 브리기테는 관계 때마다 하인츠의 아이를 임신하려고 안간힘이다.

거기다 고등학생인 수지를 밀어내려고 우스꽝스럽게 군다,

하인츠에게 눈곱 만큼의 관심도 없는 수지를 말이다.

 

작가는 왜 자꾸만 남편 된 자들의 구타를 말하고 그것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비판도 뭣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구타'란 단어를 그곳에 그저 배치시키고만 있다.

 

작가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자 혼자서는 충족할 수 없다고, 여자가 만들어 놓은 충족을 위해

남자가 여자의 여성적인 특성을 사용해야만 된다고.

양육하고, 보호하고, 가장 포괄적인 의미로는 도와주는 것이다.'

 

어쩌면 파올라와 브리기테 두가지의 경우만 가지고도

세상의 모든 연애와 결혼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한 브리기테는 미래가 있는 하인츠를 얻어 밝은 미래를 얻었고,

열다섯에 임신하고 만 파올라는 자동차와 술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나

그리 밝지 않는 미래를 얻는다.

그리고 에리히가 아닌 다른 남자를 음부에 받아들이는 창녀가 되고 이혼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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