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서울대 앞 민들레영토 옆에는 딸 여섯을 책임지고 있는 (게다가 막내는 쌍둥이)

부부가 운영하는 중고서점이 있다.

우연히 갔다가 발견한 이 책, 그동안 절판돼서 구하지 못했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랩소디 인 블루 이후 세 번째로 나온 작품인 듯싶은데

쓰기에의 여러가지 시도들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도 보인다.

 

○ 갤러리 환타에서의 마지막 여름

사실적이다, 아니 사실적이라 하기엔 구체적인 묘사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아! 그래, 서사적이란 표현이 맞겠다.

초반에 갤러리 환타나 주변 전경의 묘사가 나오더니 금세 나와 군인을 결혼시키고

나이 먹게 하더니 아이 둘을 죽이고, 실직을 이유로 아내를 칼로 찌르게 했다.

구성, 쓰기 방식 모두 독특하다.

 

○ 검은 저녁 하얀 버스

배수아의 특기.

성을 무시하거나 약간의 편견을 이용해 남자라 착각할 장치를 마련한 뒤 어느 순간 뒤집어 엎기.

사촌이 여자였다니.

이 작품에서 인물은, 사촌이거나 사촌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거나,

바느질하는 여자, 군복을 입은 남자 아이. 이런 식이다.

글의 느낌이 이바나나 동물원 킨트와 비슷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을 걷고 함께 다니는 이와 얘기 나누는..

 

○ 마을의 우체국 남자와 그의 슬픈 개

어제 오늘 집중을 못하고 읽어 처음부터 다시 본 작품.

이런, 다리 저는 마을 우체국 남자는 화자가 어릴 때 소아마비가 있던 그 남자였고,

그녀의 동생이었다.

다시 한 번 읽지 않았다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갈 뻔했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로 고정된 채 어머니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녀.

 

○ 내 그리운 빛나

이번 단편들 속엔 사촌이 많이 나오고, 여자의 나이는 대부분 스물아홉이다.

왜일까?

시력을 잃어가고 있던 빛나가 사실은 죽은 것이란 반전?

 

○ 포도 상자 속의 뮤리

또 스물아홉. 열두 살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은 잘 우는 여자.

다리를 저는 아기 염소 뮤리.

그녀는 '내가 뮤리야' 하고 말한다.
114쪽 여자의 말을 옮겨 적어야겠다.

 

'여자들을 위한 잡지에 글을 쓰고 있으면,

여자들은 절대로 남자들을 변화시킬 수 없고

남자의 양말색에 관한 기호조차도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으리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진다

모든 트러블이란 것은 이기심 때문이지 그 남자는 애초에 애정도 없고,

사디스틱한 성향 때문에 당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당신이 싫기 때문이다.

이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당신은 그 남자가 그런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마지막에는 연극으로 울부짖는다.

당신은 은연중에 자기의 인생이 연극조로 되어가는 것을,

당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즐기고 있다.

그 남자가 사디스트가 아니라 당신이 마조히스트인 것이다.

아기를 낳고 버림받았다, 고 호소하면 누구나 동정해주고

성적으로 약한 당신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건 당신에게 도덕적인 우위를 인정해줄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말을 타고 중국의 황야를 달리는 젊은 날의 강청의 것처럼 거침없는 생은,

영원히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

 

어쩐지 이 책에는 2와 2분의 1에 썼으면 좋을 법했던 글들이 많다.

어쩌면 세상에 남녀의 이별이 너무 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프린세스 안나

다른 여자는 되는데 여동생과 결혼하는 게 왜 안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이모와 결혼하는 아빠를 가진 안나.

안나의 언니를 위해 형부를 오토바이로 쳐 죽이는 노아의 의미는 무엇일까?

 

○ 바람 인형

동화 느낌이 강한 작품. 연한 손을 가진 여자애에게 버림받은 인형.

공중곡예의 생을 잃고도 기억 못하는 남자의 죽음.

죽은 남자를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랑에 빠진 인형.

인형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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