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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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의 신간이 나온 줄 알고 신나서 클릭한 서점에는 그녀의 번역작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가 있었다.

역시 그녀 덕에 스위스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파저란트' 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데 어쩐지 당기는 작품은 아니라서 패스~

 

이치히가 '나치와 이발사'에서  잠시 동안  했던 SSR대원이 이 작품의 인물에게는 평생이었는데,

혁명이나 전쟁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비슷할 수밖에 없듯 이 두 작품의 느낌도 비슷했다.

신기하게도 요즘 어떤 기준으로 고르건 계속 혁명과 전쟁에 관한 작품이 자꾸 잡힌다.

내 생에도 혁명이 필요하다는 신의 계시인가~

 

<신은 없다. 우리는 전쟁 중에 태어났고 전쟁 중에 죽을 것이다>

라는 문구가 말해 주듯 이 작품 속에서는 몇백 년 째 전쟁 중.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고리 하나를 실제와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그 이후에 살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생겨나게 하는 기법이라는 대체역사기법을 사용했다는데

저자는 레닌이 상트페테르부르크행 기차를 타지 못해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위스에 남아 그곳에서 혁명이 실현됨을 가정한다.

'나 여기 있으리,~~'의 SSR은 파시즘 국가인 독일과 영국을 무찌르고

힌두스탄, 한국, 대오스트레일리아와 협정을 맺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순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작품과 이 작품이 겹치기 시작했는데,

김진명의 그것은 초반엔 역사소설스런 느낌이 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SF로 전향되는 느낌이 컸던

오래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반면 '나 여기 있으리,~~'의 그것은 조금도 현실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작품의 나와 몸을 나누고 브라친스키를 알게 해 주기도 했던 그녀가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그의 문체는 아주아주 자연스러웠으므로.

이는 아래 옮겨 적을 내용에서도 알 수 있는데,

브라친스키가 그의 가슴을 찌르는 부분이다.

 

브라친스키는 송곳으로 내 군복 위를 푹 찔렀다.

송곳이 피부에 와 닿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끝이 피부 속을 파고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가 방울방울 맺히는 정도였지만, 곧 군복 셔츠가 검붉게 젖고 말았다.

통증이 파도치며 밀려왔다.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심장이 다른 곳에 있다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브라친스키는 자신의 두 눈을

하나의 송곳으로 번갈아 찌른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글로 서서히 글을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몇 년도를 살고 있었는가? 시간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나는 목요일이나 16일과 같은 날짜를 세거나,

태양이 창공을 가로지르는 경로를 계산하기를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시간은 가고 오며, 날은 가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북이탈리아의 평야지대로 내려갔다. (중략)

나는 나무 꼭대기에서 살았고, 봄비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으며,

아주 오랫동안 내 형제들과 그리고 늙은 치유사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갈대 줄기와 함께 수많은 책에 적힌 내 이름을 먼지투성이 길가에 놓아 두었다.

나는 어휘와, 문장과 책 전체를 자연에 기록했다.

꿀단지 개미의 역사, 여우의 백과사전, 그리고 세상의 혈통에 관하여,

지하를 흐르는 강물, 저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진동하는,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떨림, 그리고 그 안에서 떠오르는 미래의 시간을.

나는 그것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문자로, 대지의 형태소로 하나하나 기록했다.

 

어느 순간부터 오탈자가 보여도 메모를 하지 않는다.

이러다가 오탈자를 찾는 힘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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