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은 언덕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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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배수아의 새 책이 나왔다.
문체도 내용도 많이 쉬워진 느낌.

 

혼자 하는 맥주를 끊은 후,
좀처럼 먹지 않던 저녁 식사를 하고, 한동안 읽은 책을 정리하는 이 시간.
다시 내일, 다시 아침, 다시 월요일이 오겠지만 난 이 시간 덕에 희망을 산다.
역사, 사회, 우리말 등의 책 사이에서 이런 깊이를 마음으로 알게 해 주는
그런 배수아를 다 읽은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과거 지금 그리고 미래의 모든 그녀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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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전문 무대 배우인 경희 위주로 진행되는 내용.
읽는 내내 현재까지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남경희 실장이 떠올랐는데,
이런 우연스런 일치가 신기하기만 했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헤어져 만나지도 못했던 독일어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무작정 걸어서 여행을 떠났다는 경희,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받아들이는 우리라는 존재들.
그들에게 낭송 중 자신의 발가락이 부러졌던 경험을 말하는데, 그것은 감정이 육체를 제압하는
훌륭한 표현이 될 듯해서 여기 옮긴다.

 

19쪽~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저절로 뚝 하고
부러질 정도로 그렇게 물리적으로 격한 감정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심지어 가장 앞줄에
앉은 관객들에게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답니다. 뚝! 나는 아픔보다도, 커다란 소리로 인해
낭송이 방해받은 것에 몹시 당황했습니다. 아픔은 정확히 이 초 뒤에야 찾아왔지만 격한
당황스러움은 소리와 매우 동시적이었으니까요. 신발, 아 그것을 잊고 있었군요.
굽이 높거나 앞코가 과장되게 뾰족하거나 그런 신발은 아니었어요. 늘 신는 평범한 펌프스
구두였는데요. 동료 낭송 배우나 극단의 관계자들은 내가 늘 늙은 수녀처럼 굽이 낮고 발등이
넓적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므로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어요. 너무나 겪하고, 너무나 과잉되고, 너무나 무겁고,
너무나 들뜨고, 너무나 카오틱 하고, 너무나 거슬리고, 너무나 현기증이 나는, 너무나 많은,
너무나 결핍된, 소용돌이치는, 깃털을 잡아 뜯는, 모든 일과 사물에 대해 소리 내어 우는,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극단적인 종류의 감정 속으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죠. 감정이나 정신의 현기증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추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구체적인 형체와 냄새가 있어요.
심지어 어떤 장소는 그것으로 가득 차 있기까지 하죠. 예를 들자면, 부엌의 두번째 의자에
앉을 때 나는 항상 특정한 감정을 느끼곤 한답니다. 그건 그 감정이 거기 살고 있어서 그런 거죠.
우리는 어느 순간 우연히도 그의 나라로 걸어서 들어간 거예요. 그때 뚝 하는 소리가 나고,
이 초 후에, 아찔한 아픔 때문에 이마에 식은땀이 고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을 때,
하지만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서너 걸음 떨어진 의자로 가서 간신히 그 위에 걸터 앉을
수 있었을 때, 나는 알았어요. 오, 나는 나로부터 너무 과도하게 가버렸어.
내 육신은 횃불처럼 타오르는 삶의 신호등이지. 그것이 불이 켜진 거야. 가시오.
이제 나는 계속해서 갈 수밖에 없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답니다.

 

24쪽에서 발가락 깁스를 풀다가 깁스 절단용 톱에 발가락이 절반쯤 톱날에 잘려 나간 경험이
있는 경희가 말하는 병원.

 

이빨이 저절로 악물릴 정도로 지독한 아픔 가운데서, 문득 지금 분명 병원의 침상에 누워 있을
어떤 사람 생각이 났습니다. 병원은 의술이라는 이름의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자행하는 장소라고
그는 예전에 말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죽음을 단지 의료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왜냐하면, 비록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은 사실이지만, 병원이란 곳은 원래
도시의 사형수들을 위한 처리 시설에서 출발했으니까.
그의 말에 의하면 도시는 원래 도시의 탈출자나 도시의 침입자에게 도둑과 배반자라는 누명을
씌워 목을 매다는 기능에서 출발한 군사시설이었어요. 그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형에 필요한 도끼와 밧줄, 오물을 걷어내는 나무통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시장과 상거래가 이루어진 거랍니다. 도시는 으스대는 사람들을 위한 고향이에요.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아마추어 해부학자들이 사형수의 몸을 병원으로 실어 갔지요.
인간의 몸 안에는 알려지지 않은 모종의 자동기계가 들어 있으니, 한번 멈추게 된 그것을
다시 작동시킬 방법이 없을지 궁금해하는 취미 공학자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녀의 글이 다시 몸으로 치닫고 있나, 작품 전체를 빙 둘러싸는 것은 온통 몸과 관련한 것들뿐.

 

79쪽, 사람의 귀를 정말이지 쪽! 빨아서 치유하는 치유사가 말하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의 몸.

 

"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는, 독일어 단어의 성과 반대로, 태양이 남성, 그리고 하늘이 여성으로
묘사된답니다. 움직이는 것은 태양이고 정지한 것은 하늘이며, 하늘의 몸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도 태양이니까요. 아침의 장밋빛 햇살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존재의 상징이 되는 거죠.
밤은 우리를 꿈으로 몰아가고, 그래서 생명의 기운을 소진시킵니다. 밤새도록 작은 새와
어린 여자아이, 기묘한 난쟁이와 여인의 머리를 한 나비 등으로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는 정령이
사람을 미혹시키고 덧없는 사랑의 불길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어요. 이집트 신화에서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그것은 태양의 신 '레'가 밤 동안 지하 세계의 강물 위를 조각배를 타고 고요히
여행하는 동안 보게 되는,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지러운 사물의 그림자이자 환영들인 거죠.
저녁이 되면 하늘의 여신 '누트'는 태양을 삼킵니다. 삼킨다는 건 육신의 내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므로 태양은, 낮과 마찬가지로 밤에도 누트의 몸속을 관통하며 여행하는 셈이죠.
누트는 부드러운 만곡을 그리며 대지의 위로 길고 우아한 몸을 구부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사지는 모두 대지에 닿아 있죠. 그것이 동서남북을 가리킵니다.
이집트의 고대 벽화에는 그렇게 지상을 향해 몸을 굽힌 여신 누트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어떤 그림에는 구부린 누트의 하복부 틈새를 향해 불붙은 화살처럼 돌진하는 힘찬 태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지요. 밤 동안 지하 명부의 강물을 배 저어 간 태양은 다음 날 아침이면, 자신이
밤새도록 휘저어 갔던 누트의 축축하고 따듯한 아랫배를 떠나, 지상과 하늘의 틈바구니인 그녀의
음부에서 스윽 하고 빠져나오는 겁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그스름하고 사랑스러운
만족감의 광채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저녁이 되면 젖꼭지가 그리운 어린 짐승처럼 자신이 나왔던
그 음부를 찾아서 다시금 파고드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루하루 떠오르는 태양은 자연이
그려내는 우주적인 관계의 형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엄마라고 믿고 찾아 갔던 경희에게 '저는 한 번도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답니다'
로 모든 걸 대신한 마지막 부분 때문에,
다음에 옮기는 치유사의 말에는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저자도 모를 일이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거나.

 

"모체와 교접하는 형국인 태양은 스스로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자식인 셈이죠.
서로에게 조상이자 미래가 되어주는 관계. 우리는 끝없이 되풀이하여 샘솟는 분수에서 태어난
것이고, 영원한 생명의 순환 고리에 매달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순간, 내 영혼이 번개에 맞은 듯 떨립니다.
개인은 작고 이름 없지만, 누구나 영원의 사막에 발자국을 남기며 끝없이 걷고 있으니까.
난 아침이 좋답니다. 태양이 투명한 하늘과 지평선의 경계를 비집고 솟구쳐 오르는 광경은
언제 봐도 감격스럽지요. 아침이 되어 그 빛 속에 홀로 서면 지난밤 나를 고통하고 고뇌하게
만들었던 온갖 형상적 사물들이 허무하게 바스라지니까요. 우리를 괴롭히던 거짓으로 아름다운
육신들이 영혼 없이 소멸하는 시간이죠. 마력을 잃은 유혹의 몸들은 헛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껍데기뿐인 그들의 소멸은 당연한 숙명이에요. 그들의 본질은 메아리 없는 죽음,
그 이상의 것은 아니죠.

 

93쪽, 역시 몸. 경희의 귀에 흡착 키스를 해주겠다는 치유사.

 

하나의 태양이 몸이 되었다. 몸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하늘을 향해 길게 너울거리는
섬광의 형태로 나타났다. 발 없는 흰 횃불이었다. 몸은 불의 형체를 지녔다.
몸은 일생 동안 피투성이이며 몸은 신기하다. 몸은 몸이 내버린 것들로 뒤범벅된다.
태양이 제 몸을 태우며 타오른다. 몸은 나에게 속해 있다. 혹은 내가 몸에 속해 있는 것이다.
몸은 열려 있다. 사물과 정신이 몸을 투과하여 흘러간다. 몸은 안긴다.
몸은 따스하므로, 몸은 춥다. 몸은 아픔을 안다. 몸은 배가 부르며, 몸은 운다.
몸에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피 혹은 오줌이라고 부른다.
몸은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당한다. 몸은 몸을 사랑한다. 몸은 기꺼이 잠든다.
잠든 몸은 영혼의 여행자이다. 몸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몸은 색이 춤추는 것을 본다.
묘사할 수 없는 반짝임이 세계를 이룬다. 나는 이것을 장님의 반짝임이라고 부른다.
눈동자에 와서 맺히는 영롱한 어룽거림들. 그러나 결코 묘사도 기억도 할 수 없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무형체의 빛들.

 

118쪽, 반치가 말하는 경희. 그런 존재와 함께 하고 싶다는 갈망이 늘 내게는 있다.

 

나는 네가 이 도시를 네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와 쉽사리 겹쳐서 생각할 수 있는 그 방식이
놀랍고도 두려워. 네가 즐겨 말하는 '동시에' 란 어휘가 두려워.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무해한 게 아냐. 반복되는 어휘는 어휘 이상의 힘을 갖지.
나는 이렇듯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수없이 많은 별의 어휘를 쏟아놓고 다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사라져버릴 것이 분명한 네가 놀라워. 놀랍고도 두려워.
이 도시에 도착해서 저 도시를 떠날 수 있는 너를 감탄해.
너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낭독하는 사람, 그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여. 너는 구분할 수 없는 우주만큼이나 현기증이 나.
너는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사흘 밤 낮 동안 계속해서 낭독되던 옛날이야기 같아.
네 입은 늘 뭔가를 낭송하듯이 말하는데, 너는 늘 너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말해지는 것은 너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
변형되고 파생되고 비유되고 한없이 희박해져서 성분이 투명해진 너.
 

271쪽부터 나오는 옥타비오 파스의 에세이집에 인용된 피그미족 매장 노래를 재인용했다는 부분.

녹음장비가 제대로 작동되고 시간이 예전처럼 많았다면 소리내 읽어 녹음해 보고 싶은 내용이다.

 

다음은 발견한 오탈자

 

45쪽 8줄: 들려준다면 -> 들러준다면
101쪽 밑에서7줄: 연결되고 했지 -> 연결되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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