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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체통이나 자판기와 같은 아빠!
흥미와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존재.
과거 구석방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그녀의 조증과 울증의 정체도 밝혀지는가 했지만,
전혀 밝혀주지 않는 불친절한 작가님, 하지만 그런 작가님이 고마운 이상한 독자인 나.
그런 아버지에게 자란 딸은 결국 살인을 자신의 냄새(본성) 때문에 하고
그 결과물을 거름이라 부르는 남편과 함께 살게 되는 아내가 되었다.
그게 누구의 죄라고 감히 밝힐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한창림의 과거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그냥 갇혀 있는 동물들의 자유를 위해 쇠창살에 걸려 있는 문의 버튼을 제꼈을 뿐이었던 그는
어찌저찌 삼촌(피가 섞이지 않은)에게 소속돼 살인을 일삼고 죽어갈 거름 들을 묶은 채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찍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게 누구의 죄라고 감히 밝힐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그녀는 뷰티풀 피플 언니의 고통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대신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선 무력하다.
그런 그녀의 남편은 뷰티풀 피플의 언니의 고통보다 자신의 수컷 기질에 떠밀려 그녀를
괴롭히는 남편의 귀를 생짜로 잡아 뜯어 버리고 피를 뚝뚝 흘리며 달아나는 그는 훗날
그를 잡는 계기를 경찰인 오장근에게 그전 사건보다 더욱 크게 만들어 준다.
정말 잘 쓴 글인데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십 년도 더 전에 백민석의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정일 아저씨의 '백민석 형처럼 글 쓰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와 그 어디쯤의 말을
들었을 때 백민석이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을게다.
난 불편한 영화는 즐기는 편이지만, 불편한 책은 즐기기 어렵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 글들을 상상하는 것이 내게는 고통이기에.
만드릴 원숭이의 냄새가 한창림이 풍기는 수컷 냄새와 같다는 식의 표현을 했는데,
그냥 대충 알 것도 같았다.
동물원을 좋아하고 미각도 발달된 나는 동물원의 그런 냄새 또한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에.
오탈자가 많이 보였는데 11년도 더 된 것이라 그냥 넘어간다.
오래 지난 책에 대해선 오탈자를 올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