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강 옳은 일 하기
구제금융 분노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하나의 목숨으로 다섯을 살리는 게 과연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

2강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에서의 정의는 대부분 수치로 나타나고 또한 수치로 보여야 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서 더 많이 나타나게 되니 공리주의에는 정의가 대입될 수 없는 것. 소수를 희생함이 반드시 동반되니까.
저자는 밀과 벤덤을 통해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에 대해 말한다. 벤덤은 쾌락은 그저 쾌락이란 이름으로 묶으면 된다 여겼고, 밀은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나눠 저급하다 여겨지는 존재로 추락하고 싶지 않다 여겨지는 인간의 마음은 존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3강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소유물에 대한 정의. 과연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정의로운 것인가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마감하거나 마감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그리고 세금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 재분배 하는 것을 국가의 강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결론은 국가의 강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4강 대리인 고용하기
이번 강의는 전쟁에 필요한 군인을 어떻게 모집할 것인가에 대한 것.
징병, 돈을 주고 대신 갈 사람을 사는 경우, 지원 이렇게 세 가지를 두고 얘기한다.
이에 대한 반박은 군입대를 사회적 의무로 가져가는 것 말고는 없는 듯싶다.
두 번째 대리모 이야기는 옛날 우리 나라의 씨받이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대리출산과 우리 나라의 씨받이가 다른 점은 의학의 발달 때문인데, 똑 같이 돈 많은 집이라 하나는 거대한 집의 재산을 불리거나 지킬 남자가 필요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를 가질 상태가 되지 않고 대리모와 병원에 지불할 능력이 되므로 씨를 다른 여성에게 간접적으로 뿌려 아이를 낳아 데려오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의학의 발전이 없던 시기인데, 그 때에는 내 남편과 씨받이의 그녀가 잉태를 위한 섹스를 하는 꼴을 넘겨야 하는 아내의 고통과, 어느새 속정이 들어 좋아하게 된 아이 아버지와 아이를 모두 그대로 둔 채 일정의 금액을 받고 꺼져줘야 하는 씨받이녀 여자의 입장.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리'라는 것들에 대한 정의일 텐데 솔직히 그런 것들이 옳고 옳지 않고를 따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고, 이 모든 반박과 내용이 죄다 헛소리처럼만 보인다는 것이다.

5강 중요한 것은 동기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 의무, 도덕.
쾌락, 욕구 등의 모든 목적이 사라져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모인 것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자율, 의무, 도덕이 목적이 돼야 하는 모든 것. 한 마디로 무조건적 존중~!

6강 평등 옹호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했던 개인주의자 칸트를 보완하겠다고 2세기 뒤에 나타난 존 롤스.
합의 없이 계약이나 의무가 이행되는 경우를 저자의 경험에 비춰 얘기하는데 뜬금없이 구매 의사도 묻지 않고 빨대를 꽂아 버리는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물론 야쿠르트의 경우 호혜원칙이 들어맞지 않겠지만, 그게 야쿠르트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ㅋㅋ

다시 존 롤스로 돌아가 보자. 그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는데 그것은 상대방의 조건에 대해 백지 상태라는 가정하에 이뤄지는 것이라는데 신기하게도 거기엔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차등원칙이 있다. 차등원칙을 적용한 평등. 글쎄..역시존 롤스에 대한 반박이 이루어지는데 굳이 얘기할 필요 없는 것들이다. 뭐, 뻔하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라고나 할까.

7강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쟁
소수집단들이 우대정책을 실시하는 원인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집단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핑계를 만들어 우대정책을 실시하는 게 옳은가 하는 문제를 말하다가 결국 교육은 이익과 관련이 없어야 하고, 교육과 연구를 통해 공동선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논란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정의와 권리의 기본을 찾고 싶은 욕구가 일어 칸트와 롤스 같은 철학자들의 주장이 나오는데 이 시도에 대한 성공은 다음 장에서 다룬단다.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가지고 앞에 나왔던 것들을 쉽게 풀어가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에 대한 얘기를 자꾸 하는데, 이를 테면 노예가 될 본성, 위험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본성 등이 그것이다.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본성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그저 그걸 버티는 끈질김과 독함이 필요할뿐.

장애인 프로골퍼 케이시 마틴의 카트 사용에 대한 논쟁을 예로 들며 판결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생생히 보여줬다고 말한다. 결국 케이시 마틴은 승소했다, 스포츠의 목적을 따지는 판사의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보여줬다고 말하는 듯했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은 사회 제도나 조직의 목적, 그것이 나누어 주는 재화 그리고 영광과 포상을 안겨 주는 미덕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을 만들 때 이런 문제에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좋은 삶의 본질을 논하지 않고는 공정성을 말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고도 했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의무에 대해 말하는 9강의 초반에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닌 과거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연대의무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한데, 그것에는 우리가 떠안아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고, 이 책임은 상대를 이성적 존재가 아닌 역사를 공유하는 존재로 인식한다고, 그러나 자발적 의무와 달리 합의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노예나 위안부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연대의무를 져버리겠다고 무식하게 떠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마이클 샌델, 그가 좋아하는 정의는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닌,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도 아닌,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위의 두 경우의 정의가 왜 싫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걸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 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으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정의로운 사회에 한발 한발 다가가게 되는 것이겠지.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331쪽 8줄, 형에 관한 를 -> 형에 관한 (거처)를, 또는 다른 단어가 들어가도 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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