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공포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유를 파헤쳐 보고 싶어도 알기 힘들고 표현하고 표현해도 알 수 없는 그 섹스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많이들 쓰고 말하고 화면으로 만들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뭔가를 만들어낸다.
나 역시 관심도 많고 언제나 신비하기만 한 섹스라는 소재로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무엇을 한 편 창조해내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언제나 '내가 어떻게 감히'라는 생각과 함께 펜을 내려놓고 만다. 이 책을 쓴 그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던 듯 싶은 냄새가 펄펄 나고 있다.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자신이 새끼 물고기들이라 부르는 가장 나이 어린 애들에게 자신이 수영하는 동안 줄곧 허벅지 사이로 노닐면서 자신을 혀로 핥거나 입으로 물어서 흥분시키도록 훈련했고, 아직 젖을 안 뗀 젖먹이들에게는 젖 대신 자기 성기를 빨도록 해서 정액을 사정하기도 했단다.

그리스에서는 질과 괄약근이 서로 차이가 없는 '구멍'으로 보았고, 남색은 사회적 통과의례적인 비역을 통해 성인의 정액은 어린애에게 남성성을 전달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로마는 규정에 따른 공포가 성관계를 지배했다.
가령 귀족 남성의 수동적 사랑(괄약근을 대주는 행위)은 기혼 여성의 감상적 사랑이나 간통만큼 중대한 범죄행위라거나, 남성의 능동적 동성애(남성의 괄약근에 성기를 넣는 행위)나 기혼여성이 애인에게 손으로 해주는 마스터베이션은 무죄라는 식의.

작가는 이렇게 로마와 그리스의 경우를 말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와 로마의 성문화는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열변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 너무 재밌는 묘비명을 소개해서 여기 옮겨두려 한다.
<마르티알리스의 묘비명>
내가 원하는 여자는 헤픈 여자, 내게 몸을 허락하기에 앞서 내 젊은 노예에게 먼저 몸을 맡기고, 혼자서 동시에 세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여성이다. 큰 소리로 시끄럽게 말하는 여자라면 부르디갈라의 바보의 좆이나 먹으러 가라.
이와 같은 묘비명을 남긴 그는 사는 동안 내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하하, 그 묘비명 한 번 멋지다.

로마 시대의 노예는 매우 비참했다. 주인이 그에게 비간을 하거나
오럴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던 만큼.
당시 기혼자나 과부는 강간을 당하면 사형에 처해졌고, 강간한 자는 그 자리에서 잡히면 형벌 정도에 그쳤다. 미혼자의 강간은 상관 없는 것이 강간을 불륜에 의해 피가 더렵혀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1장이 역사적 사실과 함께 전개되고 2장에서는 로마의 회화를 말하며 파라시오스 얘기를 하고 있다. 그는 당시 엄청나게 유명했던 화가로 포르노그라피의 창시자다. 작가는 조각술에서 미의 이상은 윤리에 있었다고 말하면서 아타락시아(정신의 평정)와 무감각을 구분하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너무 큰 이해심과 무관심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2장에서 로마 회화의 역사와 화가를 소개하고 그의 생각이나 표현방법을 들어가며 교묘하게 풍경화로 마무리를 지으려다 Suavitas(달콤함), 그것은 죽음의 순간이다 라는 말과 함께 성적 은둔을 꺼내 테두리(파라시오스가 창안했다는), 곧 아우라까지 가고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 아담의 '의복' 리비도로 짠 마술옷감,후광이라는 주제이다 라면서...

3장의 제목은 대놓고 파스키누스, 즉 음경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데 외설(음담패설)은 로마 사회의 특성이고, 그것은 보편적 질투에 맞서 거대한 파스키누스를 흔들어대는 의식을 지닌 축제였다고 한다. 저자는 프랑스 역사는 조롱으로 시작되었고, 조롱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근본을 이룬다고 말하고, 드디어 책의 제목을 등장시킨다. 섹스는 공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남성에 한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육체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남성성은 동물적 쾌락 속에서 침몰한다. 그 이유는 남성의 가장 내밀한 자아가 결코 머릿속이나 얼굴 모습에 있지 않고, 육체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남자의 손이 가는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내용을 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섹스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조금도 야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자신들의 육체를 박아 넣고, 자신들의 침을 뒤섞는다. 그들의 입은 이빨로 짓누른 상대방의 입술 위에서 공기를 들이마실 뿐이다. 부질없는 짓이다. 상대방의 육체는 조금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육체 속에 자신의 육체를 송두리째 끼워넣지도 못한다. 타인의 육체 안으로 완전히 옮겨가지도 못한다.
그들은 바로 그 점을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것으로 이따금 믿을 듯하며, 그래서 그들을 이어주는 주변의 끈을 욕심껏 다시 조인다. 마침내 신경이 욕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긴장이 고조에 달할 때, 즉 욕망이 분출할 때 짧은 휴지(休止)가 생긴다.
짧은 순간 열정이 잠시 진정된다. 그러고 나면 똑같은 광기, 똑같은 광란이 다시 찾아온다. 또다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 길을 잃고 눈이 먼 그들은 보이지 않는 상처에 시달리며 서로를 탕진한다. 

'음경'이란 제목으로 시작한 3장은 결국 '의지와 무관하게 우뚝 서는 것, 언제나 장속 밖으로, 보이는 것 밖으로, 솟아나오는 것, 그것은 신이다.' 로 마무리 되고, 남성 이야기를 신나게 마친 작가는 괴물 자매 셋 (스테노, 에우리알레, 메두사)의 이야기로 4장을 시작한다.
예상했던 대로 이번에는 여자 측에서 썼고 욕망이 깃든 그녀들의 시선에는 힙노스와 타나토스보다 더욱 녹아내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한다. 직접 볼 수 없는 시선을 공포와 연관시킨다. 

5장 로마의 에로티시즘 역시 대부분 시선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6장 페트로니우스와 아우소니우스가 쓴 문학작품이 실제의 글로써 소개된다. 페트로니우스의 단편에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글쎄 나는 모르겠다.

7장 도무스와 빌라. 집,벽화,성교,여자의 욕망, 아내와의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빌라 얘기를 시작으로 침실로 넘어가더니 기독교가 나타나서는 7장을 마무리지었다.

8장 메데이아는 웬일로 계속 그녀의 이야기만 있다. 아버지와 동생을 죽이고 온갖 희생을 치러 얻은 남편 이아손의 아들 둘을 죽이기 직전의 모습이 그림으로 전해져 오는 그 메데이아. 그녀를 소재로 한 여러가지 경우를 들고 있는데, 그녀의 심리를 여러 측면에서 다루려는 흔적이 크다. 성교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가 있는데 히포크라테스는 최초의 성교에서 암컷을 품는 수컷에게 나타나는 어린애의 모습을 본다. 소(小)세네카는 '인간은 태어났다. 인간은 죽음을 위해 태어났다. 출생은 성교의 결말이다. 태어나는 것은 소멸해 가는 쾌락이다'라 말한다.

9장 파시파에와 아폴레이우스. 어째 사냥과 동물 얘기가 신나게 나온다 싶더니 로마에서 즐겼다는 수간(동물과의 성교) 얘기가 나온다. 로마 하면 네로가 먼저 떠오르는 나, 여기서도 티베리우스, 수에토니우스, 카시우스, 아울렐리우스 빅토르 등이 글로써 전하는 네로의 음란함과 밝힘증을 나열하고 있다. 

10장 황소와 다이버. 성과 관련된 존재의 기원을 아주 모호하게 표현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과거의 그 누군가가 성교를 했기 때문이고, 그것들은 눈으로 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순간은 조작되기 마련이다.
또한 다이빙하는 모습을 통해 죽음으로 향하는 의미의 생을 얘기한다. 로하임의 말에 따르면, '모든 꿈은 자기 내면으로 빠져들어가 어머니의 질 속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출생 직후에 거의 지속되는 잠은 자궁 내의 삶을 '연장하는'것이다. 현실은 '잠에서 깨어남'과 마찬가지로 배고픔과 추위, 고통스러운 욕망의 순간일 뿐이다.
노화로 인해 육체는 점차 잠에서 멀어지고, 죽음(꿈이 없는 잠) 속에서 음문과도 분리된다' 고 했다.

11장 로마의 우수에서는, 쾌락과 죽음을 동일시하고, 우수와 우울을 같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리하자면, 로마인이 느끼던 삶의 권태(1세기)-> 그리스도교인들의 나태(3세기)->우수(5세기)-> 우울(19세기)-> 우울증(20세기) 로, 성의 역사가 공포와 저주로 변질된 데는 로마의 역할이 컸다고! 이와 함께 자신이 이런 글을 몇 년씩이나 바쳐서 쓰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욕망은 공포이다. 무슨 이유로 나는 몇 년을 바쳐가며 이 책을 썼던 것일까? 청교도적인 것은 바로 쾌락이라는 미스터리를 파헤쳐보고 싶어서였다. 쾌락은 쾌락이 보려고 하는 무엇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오르가슴은 욕망이 이제 막 드러내기 시작했을 뿐인 무엇에서 시선을 거두게 한다.' 고.

12장 첫 장면부터 글을 쓰기 전에 몰두해 있는 소녀를 묘사한다.
'글을 쓰는 자는 비역질을 하고 글을 읽는 자는 비역질을 당한다.' 고 말한 로마 황제 셍티미우스의 얘기와 함께 독서와 쾌락에 대해 말하고 있다.

13장 나르키소스 전설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며 시작한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사랑했고, 그로 인해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리스 신화에도 로마 신화에도 없으며 로마 벽화에 그려진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반영 위로 몸을 굽히고 있지 않다고 한다. 나르키소스를 죽인 것은 분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 시선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문학적 시선이다.
이런 역사 관련 책들을 보면 언제나 느끼는 건데, 대부분의 제목들은 별로 제목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의 제목은 내용을 제대로 포함하지 못하는 경우가 반 이상이다. 

14장 술피키우스와 폼페이의 유적에서는 수많은 몰락 과정을 편지나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지켜보며 살아남은 자들의 안도가 나온다.
바쿠스 축제 직전의 순간을 재현한 신비의 빌라를 묘사하고 그 의미 등을 짚어보는 14장, 그와 함께 거대한 음경을 끌고 다니며 누구나 가장 음란한 언어를 사용하는 리베르 축제, 디오니소스 축제에 상연되던 이야기 '비극' 에서 고르기아스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는데 언어를 현실 세계 가운데서 자율적 실재를 구축하는 능력으로 고찰했던 최초의 인물이자, 최초의 작가인데, 세상에는 아무런 실재가 없고,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것이며, 설사 인식하더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고 결론지었단다. 다음은 바쿠스 축제의 내용 중에 하나인데 조금 충격적이다.

'남녀 간에는 분열이 있을 뿐이다. 시민 사회는 잔혹성과 식육제 위에 덮인 얇은 베일에 불과하다. 문명화된 관습과 예술은 잘라낸 발톱일 뿐이어서 그것은 끊임없이 자란다. '날고기를 먹기' 즉 어미가 제 아들을 날로 먹고 아들은 피를 통해 자신을 몰아냈던 여자의 몸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토대가 되는 유혈이 낭자한 황홀경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든 어미는 자식이 음문을 빠져 나오면 그를 죽음에 맡긴다. 바쿠스의 무녀들을 가리키는 mainades라는 그리스 단어는 '미친 여자들'을 의미한다. 그녀들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머리를 휘저으며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