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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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 있는 저 사진은 로맹의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창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조금 자연스럽게 쳐든 그의 모습. 사진처럼 생에 있어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신조인 듯했던 작가는 어째서 권총자살을 했을까?

거짓말을 싫어하는 작가의, 어머니를 위한 예쁘고 귀여운 거짓말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렇게 재밌는 거짓말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가 말하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표현이 끝내준다.

그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것인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키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죽는 날까지 찬밥을 먹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어떤 여자가 당신을 안아서 가슴에 품어준다 해도 조사에 불과할뿐, 우리는 버림 받은 개처럼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무덤으로 돌아와 짖어대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사랑스런 팔들이 당신의 목을 누르고, 아무리 달콤한 입술이 사랑의 말을 속삭여도, 당신은 계속 달려야만 한다. 당신은 너무 빨리 샘을 지나쳤고, 그리고 바닥나도록 다 마셔버렸다. 다시 갈증에 사로잡힐 때, 사방으로 몸을 던져보아야 샘물은 없고, 신기루뿐이다. 여명의 첫 빛 속에서 당신은 사랑에 대해 매우 압축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세세한 자료들을 잔뜩 머릿속에 넣고 있다. 그리하여 어디를 가도 비교라는 독을 품고 다니면서, 전에 한 번 받았던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78쪽부터 81쪽까지.
모든 행동의 원인을 어린시절과 성적인 것에서 찾겠다고 나선 정신분석 학자들에 대한 일침이 매우 따끔하다. 재미있고 지적이고 훌륭한데 어딘가 장정일의 냄새가 난다. 로맹이 먼저니까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되겠지.

그 기발 미묘한 사람들은 전에 내게 이런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여자를 밝힌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사실상 속으로는 동성연애를 가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만일 남성과의 은밀한 육체적 접촉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이것이 내 경우라고 고백할 것인가?-그것은 그 사람이 아주 조금이나마 그 방면을 애호하기 때문이며, 이런 강철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자면, 시체를 만지는 것이 몹시 불쾌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잠재의식 속에 시간(시체와 성교하는 일) 욕구증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근사한 뻣뻣함만 지니고 있으면 남자에게건 여자에게건 누구에게나 저항치 못할 만큼 매혹된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정신분석은 오늘날, 우리의 사상이 모두 그렇듯이 변태적 전체주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지닌 도착증의 굴레 속에 우리를 가두려 애쓴다. 그것은 자유롭게 놓아두었던 분야까지도 미신적 신앙으로 점령하였고, 저만의 분석 원리를 날조해내는 수수께끼 같은 의미의 은어로 교묘하게 자기를 감추고서, 강제적으로 보호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미국의 공갈협박꾼들과 비슷하게, 정신적 위협과 협박의 방법으로 손님을 모은다. 그러므로 그토록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그 돌팔이들과 미치광이들이 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을 몇몇 과장된 병리학적 용어로 설명하는 수고를 나는 진지하게 허락하고자 한다. 자유, 우애 그리고 인간의 가장 숭고한 열망들이 그들 손안에 들어간 바에야, 단순한 아들의 사랑이 그들의 병적인 뇌 안에서 다른 것들처럼 변형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나아가, 한층 더 나는 그들의 진단과 잘 타협할 수도 있으니, 나는 한 번도 근친상간을 무덤과 영벌의 무서운 빛 아래서 바라본 일이 없는 것이다. 그 끔찍한 빛이라는 것은, 그릇된 도덕이 성적 왕성함의 한 형태-나로서는 인간 타락의 거대한 사다리에서 극히 보잘것없는 자리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에 고의적으로 퍼부으려 열을 내는 그런 빛인 것이다. 근친상간의 온갖 광란을 다 합쳐도, 히로시마의 광란, 총살 집행대의 광란, 경찰의 고문과 테러의 광란보다는 무한 배나 수긍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 학자님들의 노력이 낳은 백혈병이나 다른 가능한 유전병보다는 천 배나 더 귀여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도 나로 하여금 성적 행위 속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보도록 만들지는 못하리라. 내게는 핵 실험을 계속 하자고 문명 세계에 권하는 어떤 저명한 물리학자의 음울한 표정이 어머니와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과 비교도 못할 만큼 훨씬 추악해 보인다. 20세기의 지적 과학적 이념적 탈선과 비할 때, 모든 성적인 탈선은 내 마음속에 가장 부드러운 용서를 불러일으킨다.
대중에게 넓적다리를 벌리기 위해 돈을 받는 소녀는 자비로운 누이 또는 선한 빵의 정직한 분배자처럼 여겨진다. 그녀의 겸손한 매매를, 유전자를 해치거나 핵공포를 유포하려는 구상에 자기의 두뇌를 파는 학자들의 매춘에 비교하여 보면 말이다. 종족에 대한 이 배반자들이 몸을 내맡기고 있는 영혼과 정신과 이념의 부패에 비하면,
성에 관한 우리의 노심초사란, 그것이 매춘이건 아니건, 근친상간이건 아니건, 우리 해부 조직이 배치되어 있는 세 개의 비천한 괄약근들 위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이 지닌 천사 같은 순진성을 띤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인생 이야기.

인생은 젊다. 늙어가면서 그것은 삶과 시간을 만들고, 작별도 만든다. 그것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고 더 이상 내게 줄 것이 없다. 나는 가끔 내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찾는다. 가끔 나는 스무 살에 죽은 친구의 얼굴을 다시 발견한다. 흔히 그것은 똑같은 몸짓, 똑같은 웃음, 똑같은 눈들이다.
무엇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면 거의-거의!-이렇게 믿게 되곤 한다. 이십 년 전의 나의 무엇인가가 내게 그대로 남아 있다고, 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나는 약간 원기를 회복하고, 내 검을 쥐고서 힘 있는 걸음으로 정원으로 나아가 하늘을 바라보고 칼을 쳐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 가끔, 나는 내 언덕에 올라 세 개, 네 개의 공으로 곡예를 한다. 내가 아직도 손을 잃지 않았음을, 그들이 아직도 나와 시합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들에게? 그들? 아무도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내가 순진할 수 있음을 나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패배했다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졌을 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현명함도 체념도 없다. 나는 빅서의 모래 위에 해를 받으며 엎드려 있고, 내 온몸에서 내 뒤에 올 모든 이들의 젊음과 용기를 느낀다. 나는 신뢰를 느끼며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물개들과 또 이 계절이면 물을 뿜으며 백 마리씩 떼를 지어 지나가는 고래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대양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모두 함께 이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다시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서.

이렇게 말하는 작가는 엄청난 죽음들을 목격하고 자신은 기적처럼
그 모든 죽음에서 벗어나곤 했다. 과연 나란 인간은 어느 만큼의 죽음을 모면해 왔을까?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1쪽, 8줄 : 되라-> 돼라
28쪽, 끝 : 시작할라치면 -> 일부러 사투리를 사용한 것이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려고 하면으로 바꿔야 한다.
63쪽, 8줄 : 가르키며 -> 가리키며
93쪽, 13줄 : 깨우쳤고 -> 뉘우친 게 아니고 뭔가를 배웠다는 것이니까 깨쳤고.
108쪽, 13줄 : 번 밖에 -> 번밖에
144쪽, 7줄 : 고질적이 -> 고질적인
149쪽, 밑에서 7줄 : 들여마시다 -> 일부러 북한어를 쓴 게 아니라면 들이마시다.
247쪽, 밑에서 7줄 : 거리에서하품하며 -> 거리에서 하품하며
255쪽, 8줄 : 설레임 -> 설렘
260쪽, 밑에서 9줄 : 원시저인 -> 원시적인
294쪽, 밑에서 5줄 : 바램 -> 바람
316쪽, 1줄 : 있더라고 -> 있더라도
338쪽, 10줄 : 놓친 -> 놓칠
349쪽, 밑에서 12줄 : 그를 -> 그에게
350쪽, 7줄 : 위에 -> 위의 또는 위에 있는
388쪽, 끝 : 문장이 끝났는데 온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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