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부터는 반가격 한다는 책이 있으면 웬만하단 생각이 드는 경우 사버린다. 그것 참, 슬픈 현실이다.

불안을 읽으니 내가 왜 불안이란 단어를 옆에 끼고 살지 않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불안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지껄여대는 뒷얘기는 무시하고,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생각하고, 삶에 '기대'라는 무의미한 짓은 되도록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까보다는 당장 내가 없더라도 힘든 일을 당한 주변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고 아쉬워 하고, 나도 모르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가끔씩 들려오는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막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85쪽부터는 당시에 발생한 온갖 이론들을 죄다 갖다 대며 계급세상에서 능력세상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 등의 이론을 사용했다.

불안의 원인을 사회, 역사적으로 살펴보다가 150쪽부터는 불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 첫 번째는 지적인 염세주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적 염세주의의 모범을 보여준 예라고 한다. 지적 염세주의자가 되려면 자기 가치판단을 정확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작가가 추구하는 표가 때로는 친절하지 않음이 이번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184쪽에서의 표는 해당 작품을 읽지 않은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예'라는 것은 다수가 알 만한 것이어야 하는데, 보통은 가끔 그것을 잊은 채 매진하는 듯해 씁쓸하기만 하다. 

작가는 철학,예술,정치,기독교에 이르는 원인과 함께 그에 대한 해법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술은 불안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고, 저이는 불안의 원인이 계속 바뀌어 왔고 바뀔 수밖에 없다며 역사를 사용해 예를 들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부분에서의 해법은 너무 허무하다. '니들은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불안해 하지 말고 죽음을 생각하며 편안함을 느껴라' 식의 글을 열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이 훨씬 편하고 좋다.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83쪽, 4줄 : 이빨 ->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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