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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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가 생겼다, '마야 안젤루'라는.
표지에서 어마어마하게 소개하는 사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을 만큼의 내 무식에 원통해 하며 머리를 짓찧는다.

책을 받는 순간 '어 되게 얇네, 이걸 읽고 과연 제대로 된 리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난 멀었다.
이 책은 읽는 족족 내 이야기가 태어나는 좋은 책이었으니까.

♠하나♠ 고향
나는 ㅇㅇ에서 태어났고, ㅇㅇ에서 자랐으며...라는 사실.
그렇다. 그것은 실제로 사실에 불과했고 나란 아이의 실상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내면의 순진무구 고향'이라는 정체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는 그 고향이 없다면 상처에 풍덩 빠진 우리는 무엇에 기댈 것인가!  

♠둘♠ 베푼다는 것은...
이 글이 뻔한 자선사업으로 끝날 것이란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녀는 미소로 베푼다고 했다. 나 역시 친절한 말과 미소로 생을 사는 편인데, 사실 나는 베풀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나를 위한, 내가 먼저 미소짓고 친절하게 굴면 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는 인간
관계에서의 상처 때문이었다. 내 미소와 친절이 베풂이 될 수 있다니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미소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참 인상깊다.
저런 지혜로운 어머니가 그녀와 같은 딸을 존재케 했음에 틀림없다는 내 결론, 물론 근거는 없다.

♠셋♠ 계시를 받은 날
고등학생인 그녀가 성관계 한 번에 덜컥 아이를 가졌는데까지만 있고, 아버지 없는 아이를 기른 과정은 빠져 있다. 그저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아들을 얻은 행복한 어머니인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은 그녀 인생 최고의 날인 것이다. 

♠넷♠ 아이를 낳는 것에 관하여
아! 아기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뒷모습 그림.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
졸업을 앞두고 임신한 우리 나라 고등학생의 풍경과 매우 다른 분위기. 글쎄, 뭐가 옳은지는 따지기 힘들겠지만 생명은 무조건 축복받을 문제란 것! 그녀는 그녀의 가족이 자랑스러울 만하다.

♠다섯♠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우연히 마크를 만난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녀를 강금,폭행한 마크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 부분에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는 느낌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때 생긴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여섯♠ 솔직한 대답
그녀의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는 다른 국적의 사람임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걸 보니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사람 사는 게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잘 지내냐고 묻는,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사용하게 되는 거짓 인사들! 하지만 딱히 다른 말을 찾아내기도 어려운 애매한 건네기 인사.
그녀는 진실을 말하자고 하는데 보자마자 " 너 역시 어쩔 수 없는 유행 따라가기쟁이구나, 그 옷은 최근 부아걸이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그 촌스러운 복고풍 의상이잖아."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생각해 볼 거리가 없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일곱♠ 천박한 문화
외모나 좋지 않은 성향을 개그소재로 삼는 문화를 천박하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요즘 우리나라에서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막말개그를 마뜩치 않게 생각하던 차였다. 충고라는 것은 아주
친근한 사이에서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경우에만 행해져야 상대방이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여덟♠ 폭력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종종 전문가들이 강간을 용인할 수 있고, 심지어 납득할 수 있는 사건으로 간주하기도 하나보다. 그런 말을 내뱉은 것들은 비역 전문 강간범에게 심한 폭력 속에서 제대로 한 번 당하게 한 뒤 혀를 잘라 드려야 한다.  세상에는 '이론' 속에 가둘 수 없는 행동과 사건도 있음을 그것으로써 똑똑히 알 수 있도록.
강간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가 돼서는 안 된다.

♠아홉♠ 어머니의 지혜
보통의 처세책은 '남 얘기'로 치부하기에 바빴는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엄마 얘기를 하면 난 어느새 내 얘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엄마 나 독후감 대회 3등 했어요.'
'어디서 주최한 것인데?'
'인터넷 서점이요.'
'역시 우리 막내는 대단한 아이야.'

마야! 나 역시 우리 엄마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 엄마는 다섯 딸을 혼자 힘으로 바르게 키워 주실 만큼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세요, 이 험한 세상에서 말이에요.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그래요, 나도 술을 마시고 때때로 욕도 하는 나쁜 습관을 고쳐야겠어요!

♠열♠ 모로코가 준 선물
생각이 몸을 지배하는 무서운 경우를 다룬 내용.
바퀴벌레로 착각한 건포도 네 알과 무슨 일이 있어도 예의를 지켜야 하는 할머니의 엄격한 가르침.
그런데 그게 건포도가 아니라 진짜 식용 바퀴벌레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열하나 ♠ 오늘 나는 축복 받은 사람
나 역시 누구보다 '긍정'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이다.
내 아이와 남편이 생기면, 지켜야 할 대상이 생기면, '어딘가에 목을 매달 수만 있다면'이 가끔의 습관으로 나올 만큼의 나의 부정한 생각들도 사라질 것이란 막연한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래 계속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오늘을 즐기지 못한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열둘♠ 낯선 사람과 친구되는 법
그녀를 친했던 누군가로 착각한 어느 여자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던 그녀와, 착각한 그녀가 친구가 된 신기한 경험. 우연으로써 만난 그녀가 사실은 마야의 필연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생이란 놈은 우연을 가장해서 필연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녀,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글쓰기를 한다.

♠열셋♠ 빛나는 무대에 서서
'셀리아 크루스' 덕에 그녀는 음악 없이 시를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청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나는 과연 무대에서 어떤 예술가로 보였을까?
어중이 떠중이 가벼운 단역 배우?
셀리아 크루스가 궁금해서 찾아 음악을 들어보았다.  분명 날로 들으면 더욱 큰 감동을 줄 것만 같은, '마음'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열넷♠ 시작은 작은 빛에 불과했으나
모든 인간에게 와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준 이민의 나라가 행하는 인종차별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의 백인 우월주의는 정말이지 끝도 없다.
더 말해 무엇할까! 피내 루 해머와 미시시피 자유민주당, 그들이 역사의 어깨를 딛고 서서 미국인 들의 등에 업혀 있던 악마를 끌어내렸다고 말하는 그녀.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악마를 등에 업고 살고 있나?
아...너무 많구나.

♠열다섯♠ 교양에 관하여
아! 그래, 그녀의 말이 맞다.
교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겸손한 태도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는 교양을 잘못 알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양을 떠올려 볼 일이다.

♠열여섯♠ 불멸의 은막
아무래도 입을 열면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과 여러분의 전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진심이 불쑥 튀어나올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진심'이란 단어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쓴 것일까? 문장이 조금 이상하다.  

이에 대한 답을 출판사 측에서 받았는데 그녀의 진심,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가진 그들이 진심으로 부러워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어쩌면 내가 마야 언니를 너무 비뚤어진 시각으로만 봤기 때문에 '진심'이란 단어를 반어법이나 빈정거림이 아닐까 생각했던 듯싶다. 부끄럽다.

각설하고, 그녀는 색 때문에 겪은 부당함을 진정으로 극복했을까? 그래, 마지막 말처럼 그저 기운을 낼 뿐이겠지.

♠열일곱♠ 나를 사랑한다는 것
너무 후련한 일화다. 물론 드라마 제작 거절 뒤에 참은 다음과 같은 말은,  

" 장담하건대 나 같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싶진 않을 걸요.
나는 위협을 당한다 싶으면 이기겠다는 각오로 싸우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그쪽보다 서른 살이나 많고 다혈질로 유명하다는 건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요. 싸움이 끝나고 내가 그쪽을 무찔렀다 싶으면, 내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고통과 기쁨과 두려움과 영광을 상대도 못 가리고 까불어댄 여자 하나 이기는데 썼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질 테고,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겠죠.
반대로 그쪽이 나를 이기면 좌절감에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지기 시작할 거고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여자인지 알 수 있게 해줌은 물론이다.
 

♠열여덟♠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아직 많은 사람을 보낼 만큼 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책을 다시 들추어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자신이 모든 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되뇌게 되겠지.
내가 그녀처럼 일흔이 넘게 된다면.

♠열아홉♠ 위로의 말
그야말로 위로의 말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스물♠ 내 삶의 닻을 내릴 곳
설명하는 곳이 대한민국의 어느 곳이었다면 '와 정말 좋겠는데?
한 번 꼭 가봐야지.' 할 텐데 참으로 아쉽구나. 

♠스물하나♠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그녀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래! 천박한 문화를 묵인하면 무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의 미래가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용감하게 직면할 수 있는 현명한 머리와 용기가 있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 이 공간에 대해 책임을 지자.
지금 당장.

♠스물둘♠ 다시 남부의 뿌리를 찾아서
워낙 넓은 땅덩어리라 미국을 우리에게 대입하면 안 되겠지만 어쩐지
이 부분을 읽으니 전라도에 대한 오랜 편견이 떠오른다.

남부라고 하면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에서부터 잔인하고 격렬한 증오에 이르기까지 이미지가 다양하지만, 어느 누구도 남부를 가리켜 옹졸하거나 무관심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꾸만,
'남부'라고 쓰고 '전라도'라 읽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스물셋~스물여섯♠
다양한 시로 채워져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 장정일도 시인인데, 신기하게 난 그의 시보다 희곡이나 소설을 더 좋아한다. 그녀도 시를 많이 쓴다고 하는데 시는 너무 빨리 읽히고 여운이 없다.
아마도 내게 문제가 있나보다.

♠스물일곱♠ 진실 안에서 배우는 교훈
하느님을 믿지 않던 한 때의 일화로 시작해서 '언젠가 나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때 부족하다는 판정이 내려지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끝내고 있다.

그래, 이런 것들을 시작한 누군가가 없다 여기기에 인간사는 너무 신기하고 놀라운 것 투성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정말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스물여덟♠ 믿음을 유지하는 것에 관하여
'스물일곱'에서 내가 적은 것을 그녀의 입을 빌어 '스물여덟'에서 다시 얘기하자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분명하게 만드는 건 믿음이다. 나는 그저 그리스도교도가 되기 의해 오늘도, 내일도 노력할 따름이다.'가 되겠는데 믿지 않으면 설명할 도리가 없는 그것들을 그들은 그냥 믿기 위해 사는 것이겠지.
언젠가 나도 그 대열에 끼겠고, 그게 어떤 종교가 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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