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 - 현실을 담고 ‘사는 맛’을 돋워주는 19개의 집 건축 이야기
김미리.박세미.채민기 지음 / 더숲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아이가 주민이 데리고 가는 애완견을 보고 내게 말한다.

“엄마도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아직은 곤란해. 우리는 아파트에 살잖아.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어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집에 피해를 줄 수 있는데다 냄새도 많이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알레르기 비염이 있어서 강아지를 키우면 더 아파질 거야.

게다가 강아지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면 많이 힘들어 할 텐데 그래도 좋겠어?

엄마가 저번에 말했듯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때까지 기다리자. 알았지?”

“네.”

아이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한마디 더 한다.

“엄마! 그러면 우리 마당만 먼저 사면 안 돼요?”

“하하하!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당만 따로 팔지는 않는데 어쩌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 참 천진난만하기도 하다. 마당만 따로 사자니.

그런데 이 말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내 심정도 그렇다는 것.

 

난 어렸을 때 학교 들어갈 때까지 거의 외갓집에서 보냈다.

넓은 앞마당, 장독대에서 장 익는 향기가 물씬 풍겼던 뒷마당, 대문을 열면

드넓게 펼쳐지는 논과 밭, 그리고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찻길.

초등학교 때는 마당에 각종 동물을 열두 마리까지(낳은 새끼 포함) 키운 경험이 있어

아이의 말대로 마당을 따로 팔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인 게다.

동물도 키우고, 정원도 가꾸고. 얼마나 좋을까?

그럼 지금처럼 아파트에 살지 말고 주택에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주택 찾기가 정말이지 힘들다.

주택이라고 해도 상가에 올린 상가주택이 전부다. 신도시라 그런가.

 

큰아이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 주택서 살던 우리는 아파트에 살게 됐다.

원래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하는지라 난 어린아이들에게

뛰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 그런데 초극도로 민감했던 아랫집 할머니는 정말

심심하면 쫓아 올라와 시끄러워 죽겠다는 표현을 했다.

세 살 된 아이는 까치발로 다니는데 어찌된 일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이 아니라

우리 윗집에서 나는 소음이 밑에 층까지 전달돼서 발생한 일이었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욱하는 심정에 전원주택을 알아보던 차

공인중개사 분께서 들어가는 건 쉬운데 나오기 쉽지 않다며 만약 다시 도시로 나올

생각이라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진지한 조언에 포기했던 적도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아직도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 한옥이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숨차도록 뛰어놀 수 있겠고 바람 한 줄기, 구름 한 조각 마당에 들여

풍류를 즐길 수도 있겠으며 밤에는 별과 벗 삼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내 땅을 가지고

집을 지어 올려 산다는 건 어느 정도 재력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농가나 산촌에 집을 지을 것이 아닌 이상에는.

어느 정도 땅 넓이도 있어야겠고 건축비도 만만치 않을 테고.

또 맞춤복 같은 집이 아니라 책에 소개된 집처럼 나만의 개성을 살린 집이라면

설계비용은 얼마나 들지 살짝 염려 반, 궁금함 반.

그래서 나중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독립하게 되면 이룰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기성복 같은 대지의 넓이와 건축물만 존재했기에 먼 얘기였던 것이다.

얼마나 편견을 가졌던가. 가능한 커야 한다는 편견.

그런데 삼십 평도 되지 않는 땅에 집을 지어 올린, 그것도 넉넉한 공간을 연출한

어느 집을 보니 와! 하고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주인과 주인의 마음이 중요한 거였구나.

 

나와 내 가족의 꿈을 닮은, 그리고 그 꿈을 담은 집이라면 면적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설계됐던 집은 과감하게 무너뜨렸다.

건축주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고 건축물로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좋은 건축가를

만나는 일도 중요한 듯. 그건 아마도 집주인과 지어주는 사람과의 사이에

소통이 잘 돼서이지 않을까? 이 책에는 그런 집들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편견을 무너뜨린 집들. 아, 이런 집도 있구나. 이렇게 지어도 되겠구나.

현실적으로 먼 얘기였던 꿈의 실현이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당분간은 아파트에 살겠지만 대한민국의 작은 한 조각을 꿈꾸게 만들어준 책.

혹시 후편이 나온다면 좀 더 세세한 정보가 함께 실렸으면 좋겠다.

책 후미나 부록으로 건축가 혹은 사무실의 정보라던가 친환경적인 집을

지을 수 있는 정보 등 말이다. 대략적인 건축비용(대지는 어차피 지역에 따라

다를 테니 놔두더라도)및 설계비용도 살짝 공개해주면 더 고맙겠고.

예산을 세우고 훗날 집짓기 위해 저축하는데 도움이 되겠으니. 하하하 :D

내 아이들이, 혹은 내 손자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상상되는 즐거운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