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단상 - 잉여라 쓰고 '나'라고 읽는 인생들에게
문단열 지음 / 살림Biz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열단상. 제목이 독특하다.

보고 혹시 문단열씨가 쓴 책이 아닌가 싶었는데 맞다.

영어 프로그램 잉글리쉬 카페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분이 에세이를 썼다니,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던 그 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느꼈던

인생의 참맛을 담담하게 썼다고 하니 꼭 읽어보고 싶었다.

표지에 실린 사진. 언뜻 보면 개구쟁이 같아 보이지만 로빈 윌리암스를 닮은 인자한 눈빛과

표정이 요즘 들어 지친 내 마음에게 손을 흔들며 ‘이리 와서 내가 느낀 인생 이야기 한 번 들어보렴.’하는 것만 같았다.

인생풍파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았다는 듯한 눈빛이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순탄치 않았고 지금도 여러 가지 일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그런데 서른을 훌쩍 넘어 이제 불혹이라는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내 입에서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아쉬움이 많은 인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우리 집도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불평이 종종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하루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날씨가 맑으면 화창함에 감사하고, 비가 오면 식물들이 목마르지 않겠기에 감사하고,

바람이 불면 시원해서, 추우면 공기가 깨끗해진 느낌이 좋고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기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물론 100% 완벽한 건 아니고 때때로 에이! 라는 소리가 나올 때도

있긴 하지만 마음이 부쩍 성장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현상을 문단열 작가는 어른이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숫자에 미치고,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며, 잉여라 쓰고 나라고 읽는 우리네 인생들에게

쓴 소리를 쓰지 않게 잔잔한 감동으로 풀어내면서.

책을 읽어 내려가며 그래, 맞아 하며 많은 공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만 소개하겠다.

 

아이 그리고 어른

 

사랑받기 골몰하면 아이

사랑 주기 안달하면 어른

 

보여주기 생각하면 아이

보아주기 기뻐하면 어른

 

올라가기 열성이면 아이

떠밀려서 올라서면 어른

 

이것저것 섭섭하면 아이

모든 것에 감사하면 어른.

 

너무 당연하게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묻고 싶은 것은 그 질문을 하시는 분들 자신이 진정한 어른이 맞느냐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나이 되도록 아이인 채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많이 깨졌다. 깨지고 갈리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닳아지면서

이제는 누군가를 받쳐줄 수 있는 어른이 조금씩 되어가고 있다.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내 얘기하기보다 들어주기 좋아하고,

잘난 체 하기보다 남을 더 세워주며, 섭섭한 마음은 접어두고 감사가 먼저 나오니

이제야 나도 어른이 되었나보다 싶은 게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겠지만.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고 있는 상태에서 쓴 책이 아니라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었기에

그만큼 더 깊이 인생이라는 이름을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처절했을 텐데 담백함마저 느껴지는 글두렁 사이를 걷다보니

깔끔한 녹차 한 잔 마신 기분이랄까? 인생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기분이랄까?

 

나도 문단열 작가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냈기에 더욱 공감이 됐다.

집에 여러 가지 에세이와 자기계발서가 있지만 근래 들어 성경 다음으로

가장 위로가 된 책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난 오늘 조금 더 큰 어른이 되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