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사생활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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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클래식과 더불어 살아왔다. 내가 클래식을 스스로 접한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의 곳곳에서 클래식은 어떠한 영상의 배경으로, 만화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소품으로 함께 했던 것이다. 클래식을 잘 몰랐지만 때때로 귀에 들려오는
선율이 그렇게 고풍스럽고 우아하며, 발랄하고 유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통함을 맛보게도 해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진행자로서 클래식과 함께, 아니 그녀 자체가 클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클래식과 친숙해 보이는 유정아. 그녀가 클래식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저서인 클래식에세이-마주침에서 음악 자체가 아닌,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한
음악가에 초점을 맞추었듯이, 이번 두 번째 에세이에서도 작곡가와 연주가인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해 풀어가고 있다. 

처음 클래식을 알게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클래식에 대한 한결같은 생각은
‘클래식은 고상하다’라는 것이다. (클래식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허나 귀에 들리는 선율이 고상할지언정 그 곡을 작곡할 당시 작곡가의 심기까지
고상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책을 읽어가며 깨닫는다. 

책장에는 오래전부터 모 대학에서 출간된 대학음악이론이라는 책이 꽂혀 있다.
음악이 전공은 아니지만 순전히 관심에 의해 손에 넣었던 책이다.
사실 마른 바게트를 씹는 것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내용 때문에 꼼꼼하게 읽진 않았지만.
음악이론서답게 시대별 음악가가 나오는데, 각 음악가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음악을 작곡했는지에 대해 간략한 수준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뭐랄까. 좀 더 천재적이고, 좀 더 감성적이며, 좀 더 열정적인
‘보통 사람’을 만나는 느낌? 이게 무슨 모순 같은 소리냐고?
나도 예전에 그랬듯이 클래식과 친숙한 편이 아닌 사람들에겐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들은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클래식을 좋아하고 많이 듣고 있는 나 역시 아직은 클래식이 많이
어렵고, 때론 그 성역(?)과 같이 여겨지는 곳을 침노하고픈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작곡가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 번뇌,
고통가운데서 클래식 음악을 탄생시킨 것이다. 여전히 대단해 보이지만 비유하자면
이건 마치, 죽을 만큼 힘든 훈련 끝에 값진 금메달을 손에 넣은 선수들이
“저도 보통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면
너무한 비약일까?  

음악을 작곡하는 능력을 신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것처럼 들을수록 놀랍기만 한
그 선율과 화음을 악보에 담아낼 때 작곡가들의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고
그들의 삶은 음악처럼 경건하기만 할 것 같은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
사후 또는 작금에 이르러서야 인정받는 곡들이 당시엔 별 볼 일 없는 곡으로
치부되기도 하며, 다툼과 경쟁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모습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들이 음악계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음악에 대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테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이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그 요구사항 하나만 바라고 구한다. 그처럼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보통사람인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음악을 하기 위한 바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갈고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 줄 아는 원숙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니 잘못 해석했다며 혹 분노하는 분이 안 계시길.)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은 어렵다고 한다. 특정 부류를 위한 음악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느낀 점은 유정아가 특정 부류를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클래식을
만나게 해주었다. 클래식을 애써 외면하던 이들도 좀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들(예술가든 연예인이든)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그렇지만
당대의 작곡가들, 문학가, 화가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 것을 보면 참 흥미롭다.
책 속에서 역시 가장 주목을 한 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
나의 필명에 들어있는 그다. 그의 오라토리오 마태수난곡 전곡을 연주하고(성가대)
아침을 깨우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나의 인생을 참으로 풍요롭게 해줬다.
여전히 바흐는 어렵지만 그 어떤 작곡가보다 가장 나의 마음에 전율을 흐르게 한 이유는
자신이 작곡해 자비로 출판, 배급한 “이 음악들은 음악 애호가들이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연주해야 하는 곡들.”이라고 말한 그의 음악에 대한 심오하고 고귀한
정신 때문이다. 이 결론을 유정아씨의 책을 통해 확실히 내리게 되었다. 

처음 클래식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을 봤을 땐 뭔가 내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그랬대.”하는 가십거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책장을 덮고 나니 그런 사생활이 아니라 음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야했던,
인생길로부터 들려지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끝없는 멜로디로써. 

책과 함께 동봉된 CD에 담긴 음악과 클래식 앞에서 아직도 조금은 주뼛거리는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유정아의 목소리를 통해 보통사람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작곡가, 그들의 삶이 투영되는 한여름 밤.
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바람위에 나지막하게 허밍으로 선율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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