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세트 - 전13권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홍연미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감정의 격통 속에 독서 자체가 힘들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케이블 방송에서 여러 번 방영을 해준 덕분에 영화를 5번도 넘게 봤다.
영화를 보면서 “올라프 진짜 악랄하다!”를 수없이 외쳤다.
표정과 연기력이 뛰어난 짐 캐리는 정말 그 자신이 올라프인 것처럼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올 여름 책에서 만난 진짜 올라프!
아! 정말이지. 영화 속 올라프는 차라리 신사였고 애교였다.
13권의 책 속의 올라프는 악당 중의 악당이고 사악함, 단어 그 자체였다.
발목에는 물론 그가 가는 곳마다 발견한 눈동자에서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책의 3권까지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영화와 대조해가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4권부터가 문제였다. 권수가 넘어갈수록 올라프의 악랄함도 극을 향해 달렸다.
마치 뱃속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울렁이는 것 같았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찰진 개펄에 두 발이 박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이었으며,
눅눅하고 벽에 곰팡이가 잔뜩 난 방에서 잔뜩 구부린 채 자고 일어난 기분!
그 감정의 격통으로 인해 13권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보들레어 아이들의 목숨을 건 대결, 그 서막이 오르다
이 책의 내용은 화재로 부모님의 여의고 유족이 된 보들레어家 세 남매의 이야기다.
유능한 발명가이며 맏이인 바이올렛, 탁월한 두뇌회전의 소유자이며 연구자인
둘째 클로스, 칼싸움에서도 이기는 괄목할만한 치아를 가진 막내 서니.
의문의 화재 때문에 졸지에 고아가 돼버린 이 삼남매는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나선
올라프 백작이 양육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들에게 남겨진 유산을 노리며
자신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치는 것은 물론
때론 생명의 위협까지 당한다. 아이들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같이
고공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아니, 그 이상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된다.
맏이 바이올렛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유언에 따라
올라프는 어린 바이올렛과 결혼까지 하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을 위시하여,
갈수록 추악하고 잔인한 방법을 동원한다.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항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올라프는 단순히 보들레어 아이들의 재산만을 노리고 추악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다.
보들레어 뿐만 아니라 쿼그마이어 등 유족이 된 다른 아이들의 재산까지 노렸다.
왜 아이들이 모두 유족이 되었는가? 모두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모두 사고였다. 아니 사고를 가장한 살인 때문이었다.
책속의 올라프는 진정한 악인이었지만 더 무서운 건 올라프와 같은, 때로는 더 심하게
악한 이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때문에 보들레어 아이들, 그리고
함께 싸우는 좋은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행을 저질러야했다.
열쇠를 훔쳐내거나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방화까지 하게 되는 것.
주인공들은 물론 독자인 나도 혼란에 빠졌다.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야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똑같이 악행으로 되갚아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건 옳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올라프와 그 일당의 만행을 마주할 때마다 괴리감에 빠진다. 

징글징글하고 과도하게 친절한 작가, 레모니 스니켓(다니엘 핸들러)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한 레모니 스니켓. 다니엘 핸들러가 그의 본명이다.
13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로 보들레어 아이들의 대결을 완간한 그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레모니는 독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작가인 나로서도 이렇게 불행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행복한 아이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
이 경고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보들레어 아이들의 끝없는 고통을
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유감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거북한 속을 달랠 길이 없었다.
꼭 이랬어야 하나? 보들레어 아이들을 그 위험에서 건질 수 있는 힘이
작가에겐 진정 없었단 말인가? 저따위 책임감 없는 경고문대신 좀 더 힘 있고
아이들을 도와줄 인물하나 찾아내지 못하다니. 자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이들이 구렁텅이로 빠져 드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작가.
옆에 있었으면 멱살을 잡던지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어떠한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어쩜 그리 친절하게 다시 풀어 설명하는지.
읽는 내내 아이들의 후견인 중 한 명이었던 조세핀 숙모는 혹시 작가의 친척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조세핀 숙모는 문법을 너무나도 중시하여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견디지 못하고 꼭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작가가 문법을 중시한 건 아니지만 자꾸 연상되며 멀미 증세가 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작가의 경고를 무시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감정의 격통을 겪으며 보들레어 아이들과 더불어 벌인 악과의 사투로써.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창작이고 허구일 뿐이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무관심이다
작가가 경고했듯이 이건 그냥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악심(惡心),
끝없는 살인, 상해, 거짓, 짓밟음이 난무하는 위험한 동화. 바로 위험한 대결이다.
보들레어 아이들이 정말 운이 너무 나빠서 이런 일을 겪은 걸까?
아니다. 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돈만을 추구하는 더러운 탐욕,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심, 남의 얘기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무관심이다.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3권 분량의 위험천만한 대결 후 올라프가 최후를 맞는다.
드디어 보들레어 아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이제 대결은 끝이 났는가? Never!!
올라프가 최후를 맞은 곳에서 한동안의 세월을 보낸 보들레어 아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향한다. 책장은 덮였지만 보들레어 아이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결이다.
혹시 이 시리즈의 후속 작이 나온다면 보들레어 아이들 역시
또 위험한 대결을 펼칠 것이다.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강한 대처법으로.
앞서 말했듯이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은 물론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선과 악을 생각하게 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거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이 학대를 당하는 세상.
얼마 전에는 유족이 된 아이들의 재산을 노려 친족들 간에 추잡스러운 다툼을
한다는 뉴스기사가 떠올랐다. 레모니가 전한 이 불행한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우리도 싸워야 한다. 선(善)이라는 이름으로 악(惡)을 상대로 대결을 펼쳐야한다.
내가 작가의 경고를 무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책 속에서도, 책 밖에서도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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