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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은, 사소함.
세계가 놀라서 뒤집어지는 발견이 아니라 그야말로 소소하고 작은 일상에서의 발견.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의미, 어쩌면 인생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남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껍질로부터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되는 나무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길을 지나면서 구석에서 피어난 꽃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어렸을 땐 어려서 저렇겠거니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너 참 연구대상이다.”
이랬던 내가 요즘에는 육아와 결혼 생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너무 바쁘고
조금은 지쳐, 주위에 있는 것들에 눈길조차 줄 틈이 없어졌다.
아니면 눈이 부옇게 되고 마음에 군살이 박혀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빛바랜 공간에서 사물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열두 색 사인펜. “나 기억하니?”
유난히 깔끔한 성격을 가진 아버지는 스프링 노트에 관심 있는 것을 신문에서 오려
스크랩 하신 후 사인펜으로 그 테두리를 센스 있게 장식하셨다.
처음 구입할 당시 꽂혀 있던 순서 그대로 사인펜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꼼꼼함이 왜 그리도 서글프게 느껴지던지.
또 젊은 날 어린 나와 엄마를 두고 중동에 일을 하러 가셨는데
그 때부터 갖고 계셨던 낡은 선글라스. 20년을 훌쩍 넘긴 그 안경은
신기하게도 별 흠집도 없이 오랜 세월 아버지의 콧잔등에서 뽐을 냈다.
그리고 코트 하나가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촌언니가 결혼할 때
마땅한 외투가 없었던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코트 하나를 사드렸는데
큰딸이 사준 거라며 어찌나 으스대시며 자랑하시던지. 아주 고급도 아니었던
그 코트는 아버지가 갖고 있던 모든 물건 중에서 가장 새것처럼 보였다.
“우리 큰딸이 사준 거야.” 친했던 분들께 자랑하시면서 혹시라도 때가 탈까,
흠이라도 생길까 구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치 방금 라벨을 뗀 것 같은 그 코트를 붙잡고 난 결국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그냥 막 입으시지. 닳고 닳도록 입고 입으시지. 그러시지 그랬어요.
그 빛바랜 공간을 박차고 나왔다. 이면지를 반듯하게 오려 서랍 가득 쌓아둔 메모지며,
함부로 구겨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구석에 모아둔 꽁초까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자의 가슴 속 깊이 아리게 만드는 사무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참 별것도 아닌데. 정말 사소한 것들인데.
당분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것들을 보기 힘들 것 같다.
훗날 이 사소함이 조금은 덜 아프게 느껴질 때,
슬픔 어린 눈빛으로나마 다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지.
두 저자가 카메라에 담은 사소한 일상의 발견,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과 글을 통해
때론 무료하게 느껴지고 때론 무의미했던 것들이 내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소함은 기억의 고리로 이어져 의미 있는 삶이 된다.
책 뒤편에는 저자들이 담은 일상의 사진과 더불어 독자가 각자의 추억을 상기하도록
메모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사진에 담긴 것들을 보며 난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차근차근 기억의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가 본다. 그리고 쓸쓸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