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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
한나 W. 스미스 지음, 이영배 옮김 / 하늘산책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참으로 평안해 보인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세상의 어떤 풍파와 고난에도 아랑곳없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띤 그 평안은 어디서 왔을까.
필요했다. 그리고 얻고 싶었다. 그 평안을.
19세기의 잔느 귀용이라고 불렸던 저자 한나 휘톨 스미스.
1832년 출생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태어나기 한 세기도 훨씬 전에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경외하며 살아간 신앙의 선배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탄치 않았던 한나의 삶.
첫딸을 기관지염으로 잃고 남편의 사역 실패와 사고로 큰 시련에 빠진 그녀였지만
1869년 경건 캠프 모임에서 ‘성령세례’를 체험한 한나는 이후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하나님이 누구냐고. 수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니냐고.
하나님은 신들의 신이시며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있는 사실 그대로 적힌 그분의 말씀, 즉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보여 지는 것들이 아니라
기록된 것을 믿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순탄치만은 않은 삶이었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 무너진 적도 있었고,
마음이 완악해진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괴로움에 회개를 했지만 자꾸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내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생각의 중심에 조금씩
드는 생각은 ‘내가 이렇게 엇나가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까?’였다.
혹시 내가 너무 괘씸하게 여겨지심으로 나를 모른다 하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것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낙망하는 마음을 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아니라 그 반대인 악의 세력이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계략이라는 사실이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66:13)
두 어린아이의 엄마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잉잉거리면서
“엄마, 안아 주세요.”하며 달려와 품에 안긴다. 토닥토닥 해주면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면
이내 기분이 좋아져 다시 놀이에 집중을 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나는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얻고 그 이름으로 인하여
승리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정말 좋은 친구와 며칠 혹은 몇 시간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놀랍고도 신나지 않는가?! 여호와 이레 채우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 참된 평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위로함을 받자. 우리의 영혼이 방황하게 되는 이유인 의심을 내려놓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사람 된 모습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책의 표지에 나온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만 보면 언뜻 가톨릭 서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미사포를 쓴 것 같은 모습 때문인지.
내용은 참 담백하다. 화려한 맛의 쿠키가 아닌 담백한 크래커 같은 느낌이랄까?
눈으로 주르르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내 안의 것을 내려놓다보면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듯 평안함이 들 거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