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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대장 할머니 ㅣ 지지 시리즈 2
시마다 요시치 지음, 홍성민 옮김 / 예원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할머니, 왜 요즘엔 밥만 줘? 반찬이 하나도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는 하하하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일은 밥도 없어.”
나와 할머니는 마주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page 7
제목만큼이나 재미난 일러스트.
책표지만 봤는데도 벌써 웃음이 나는 건 웬일일까?
저자 시마다 요시치의 본명은 도쿠나가 아키히로이며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아키히로의 자신의 성장기이며 실화인 웃음 대장 할머니.
표지 안에 담긴 실제 아키히로의 할머니의 미소에서 왜 웃음 대장이라고 불리셨는지
가슴 깊이 알 수 있었다. 구김 없고 서글서글한 밝은 미소.
아키히로의 아버지는 20대에 히로시마 원폭투하 사건으로 인해 돌아가시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교육의 문제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 손에 맡겨지게 된다.
청소일 때문에 새벽에 출근하시는 할머니 대신 아키히로가 아침밥을 손수 지어먹게 되는
모습에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보았다. 식당일 때문에 늘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 동생들과 나누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땐 그게 당연했다.
정말 너무나 가난했던 삶. 그런데 아키히로의 할머니는 그 가난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에 불평 한마디 없었다. 강에 나뭇가지를 드리워놓고 시장이 있는
상류에서 종종 떠내려 오는 채소 등으로 반찬거리를 해결하면서 배달까지 해주는
슈퍼마켓이라고 감사하는 마음, 허리에 끈을 두르고 자석을 매달아 붙은 고철을
모아 돈을 마련하는 알뜰함.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가나 염려했던 아키히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알뜰함, 그리고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지독한 구두쇠였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
당신도 그렇게 어려우면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는 큰돈도 선뜻 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손자 아키히로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부 주장이 되자
가장 값비싼 야구화를 선물하는 따뜻한 정이 살아있었다.
가난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두운 가난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밝은 가난.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혼자서 쿡쿡 웃기도 하고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리라. 사람이 지독하게 가난하다보면 하늘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생기고, 위축이 되며 자신감도 상실해서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웃음 대장 할머니처럼 밝은 마음과 넘치는 유머감각을 지닌다면 세상살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키히로(시마다 요시치)라는 일본의 코미디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유명하다고 하니, 그가 유명해진 것은 할머니의 이런 밝음과 지혜를
배우면서 자라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운동회 때마다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도시락을 바꿔 달라는 선생님들과, 아키히로를 위해 책 대신 각종 식재료를 가방에
담아온 농장 집 친구, 일부러 두부를 으깨 반값에 주던 두부장수 아저씨.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친절이 지금의 아키히로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마음이 짠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으면서 사는 지혜를 또 하나 배웠다.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웃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