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풍경화첩 - 지금, 여기, 서울의 진경을 그린다
임형남, 노은주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서울풍경화첩이라.
서울은 그저 복잡하고, 숨이 막히며, 어지럽게 뱅뱅 돌아가는 지역이라는
선입견 속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어쩐지 모를 끌림이 있었다.
마치 옛 지도를 발견한 것 같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기도 하였고.
더군다나 건축가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함께 그려낸 서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모르는 서울, 익숙하지만 낯선 동네의 이름들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서울풍경화첩은 건축가 부부 임형남, 노은주씨가 함께 오랜 세월동안 서울의
곳곳을 담아낸 기록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어려서 봤던 모습을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는 그곳 서울.
책장을 넘기며 서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보니 내가 가보지 못했던
동네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긴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저 다녔던 곳이라고는 학교, 집, 교회, 도서관,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것도 모두 동네 언저리이니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알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서울. 가보지 못했던 곳들.
그리고 너무도 변해버려 아쉬워하는 그들의 탄식에 살짝 한숨이 드는 이유는 뭘까. 

어렸을 때 잠시 시골 외갓집에도 가 있었고, 1년 정도는 수도권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근 30년의 세월이다.
서울은 익숙했지만 애환이 많기도 했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복잡해지는
구조처럼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침마다 지하철,
아니 지옥철을 타고 숨 막히는 출퇴근길에서 고생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드는 생각. 그저 서울을 떠나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온 지 5년.
떠나왔다고는 해도 광역버스를 타면 40분이면 닿을 근교에 살고 있지만.
처음 서울이라는 경계를 벗어날 때는 사실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동네에서 어떻게 살까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볼 일이 있어 가끔 서울에 들르게 되는데 여전히 혼탁한 공기와
정신없이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이제는 적응이 힘들다.
마치 수족관을 벗어난 열대어처럼 헐떡이다가 지금 사는 동네에 내려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다. 역시 서울은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끔, 아주 가끔은 나도 모르게 서울을 그릴 때가 있다.
다만 예전에 겪은 숨 막혔던 부산함을 아닌 아주 조금이라도 한적한 땅에
옛 멋이 흐르는 한옥을 지어놓고 마당에 하늘 한 조각, 바람 한 줄기를 불러 모아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 사실 서울이 아니라 근교에라도 지금 그리는 내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꿈이지만. 30년 동안의 익숙함 때문일까.
그 진저리를 내며 떠나온 곳을 그리고 있다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고 싶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고향이 서울이니 조금 난감하긴 하다.
그래도 아마 다시는 서울 땅에 발붙이고 살 일은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인지.하지만 한 번씩은 서울을 찾게 되겠지.  

점점 현대적으로 변하는 것들보다
옛것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있는 그 터들을 찾는 것이겠지만.
임, 노부부가 그랬듯이 나도 예전에 봤던 그곳들이 변해버린 것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것을 느낄까? 어렸을 때 드넓은 공터에 빼곡하게 아파트가 들어서고
1호선 전철이 한가롭게 지나던 역사에 지하철이 겹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짐에 놀랐던 것처럼. 옛 모습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선비가 뒷짐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이 그렇게 서울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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