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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우장춘 ㅣ 살아 있는 역사 인물 1
김근배 지음, 조승연 그림 / 다섯수레 / 2009년 8월
평점 :
우장춘 박사 아시죠?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과학자요.
그런데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교토제국대학 교수였던 기하라 히토시였습니다.
우장춘 박사는 재배에 실패한 씨 없는 수박을 다시 재배해서
성공시킨 것이었고요. 이 때문에 우장춘 박사의 공로는
씨 없는 수박에 가려지고 말았어요.
우장춘 박사를 조국애가 투철한 한국인이라고 대부분 알고 계실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학창시절에 위인전에서도 그렇게 읽었고요.
그런데 우장춘 박사는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었어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편에 섰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은 한국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만난 사카이 나카와 결혼을 했고
우장춘 박사가 태어난 것이었죠. 때문에 일본에서조차도 대우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 급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너무 어렵게 성장했다고 해요.
또한 우장춘 박사는 천재로 알려져 있는데 학창시절의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고
수학은 뛰어나게 잘 했대요. 공학을 전공할 생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엉뚱한 전공을 하게 돼요.
그것이 바로 우장춘 박사가 있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한국인이 우수한 학력을 갖추는 것을 막았던 일본에서 농업을 전공한다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에서요.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당시 일본에서는 대학원을 나오지 못해도
연구와 논문 등 혁혁한 공로가 인정되면 박사학위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전공은 바뀌었지만 우장춘 박사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를 했으며
겹꽃 피튜니어를 개발하고, 유채를 통해 종의 합성을 완벽하게 증명해 냈으나
소유권이 사카타 종묘회사로 돌아가고 일본에서의 끝없는 차별 등으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그 결심은 뜨거운 조국애라기보다는
당시 한국의 척박한 농촌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선도하겠다는
과학 휴머니즘에 근거했다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했던 이유로 한국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국가의 지원과 함께 연구에 동참했던 연구원들의 힘으로
우장춘 박사는 우리가 지금 흔하게 먹고 있는 배추, 감자, 감귤 등의
농작물을 선보이게 됩니다. 철저하게 그 공로는 연구원들에게 돌리고요.
한국에서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과학자가 흔치 않은데 반해
우장춘 박사는 지금까지도 그 공로를 인정받고 많은 이들이 기념하고 있어요.
배추 등 김치를 먹을 때마다, 봄을 알리는 유채가 흐드러지게 필 때마다,
겨울을 맛나게 보낼 수 있는 감귤을 볼 때마다, 한 입 물면 기분이 좋아지는
감자 고구마를 볼 때마다 이제 우장춘 박사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기에
지금의 한국 식탁이 풍요로워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