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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
아민 그레더 지음,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시커먼 장벽만큼이나 높다란 책의 길이.
무언가 단절된 듯한, 아니 책장을 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에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책표지에 우뚝 솟은 장벽이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인 듯하여
위축된 채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어요.
어린이의 그림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언어 표현에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섬의 일상은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온 뗏목과 그 위의 벌거벗은
한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로 가득하게 됩니다.
바다의 위험을 잘 알기에 이방인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려는 사람들을
설득해 섬에 남게 하자는 어부의 말에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힘없는 이방인 남자는
섬 한 구석에 있는 염소우리에 갇히고 말아요.
섬에 남게 한 이상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소수의 만류에
돼지들에게 주려던 남은 음식을 나누어 주게 되지만
전혀 위협의 요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필요해
마을로 내려온 남자를 광적으로 경계하고 가지각색 추측이 난무하게 됩니다.
마치 자신들을 해하려 하는 위험요소로 여기기까지 하죠.
그러다 견딜 수 없는 섬사람들은 결국 이방인을 처음 타고 왔던
뗏목에 태워 바다로 돌려보내고, 처음 낯선 남자를 도와주려고 했던
어부의 배까지 불태워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도 넘어올 수 없도록 높다란 장벽을 쌓아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기 위해 가마우지의 생명까지 앗으면서요.
마음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표면적으로 책을 보면서 남의 얘기 같았어요.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조금 다를 뿐인데,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배척하고 담을 쌓을 필요가 있나 싶었죠.
그런데 단지 이것이 남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나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그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 줬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드나요? 가만히 현실을 돌아봅니다.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 마음의 기저에
낯선 것에 대한 배척심이 조금이라도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지 소수의 진실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번 공영방송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심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낯선 사람이 길을 잃고 도움을 청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돕는가 하는 거였어요.
대조군으로 백인과 아시아인이 등장했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행인이 백인에게는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손짓발짓을 동원해
길을 알려주거나 아예 친히 동행까지 해주었지만 아시아인에게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단 두 사람만이 애써 길을 알려주더군요.
너무나도 씁쓸한 광경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그림책의 시커먼 장벽이 우리 사이에서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랗게 쌓여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남의 얘기라고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죠. 무작위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은 대다수
난 그렇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배척심.
이건 우리들만의 문제도 아니죠.
이 장벽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쌓여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스스로 쌓은 장벽, 우리를 스스로 고립시키기 위한 섬.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책 속의 이방인이 섬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외모나
다른 조건을 지녔더라면 그렇게 다시 바다로 나가게
떠밀려나게 됐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참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할 수는 있습니다. 조금씩, 하나씩.
장벽을 낮추고 낮추어 그 울타리를 무너뜨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촌 가족이라는 그 이름을 기쁘게 부를 수 있을 거예요.
함께 하기로 해요.
우리 마음속에 쌓은 장벽 깨뜨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