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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기 -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가장 현명한 선택
미리암 메켈 지음, 김혜경 옮김 / 로그인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삶을 자기 손으로 관장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런 순응절차를 가끔은 의식적으로 깨부숴야 한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익사하거나 멀티태스킹 속에 엉켜버릴 위험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자문을 던지기 위한 거리와 정지의 순간이 필요하다. 여기는 살기에 어떠한가?
우리 자신에게나 우리 삶에 중요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시간과 휴식은 얼마나 필요한가? 이러한 의문에 관심과 시간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것을 위해서도
그것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까.
<104 page>
느리게 가기.
느리게 라는 말에 달리기를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 밖으로 한가로운 오후의 풍경이 보이는 것 같은 표지가 눈길을 끌어 꼭 읽어보고 싶었어요.
독일의 대표 여성 지성 중 한 명인 미리암 메켈.
손에 항상 블랙베리폰을 들고 다닐 만큼 바쁜 그녀의 일상에 무언가 제동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이 책이 탄생한 이유는.
쏟아지는 정보를 습득하고, 하루에 몇 백통씩 오는 메일을 중요성에 따라 메일함으로 구분하며,
문자와 통화가 끊이지 않는 삶은 비단 메켈만이 누리는 것은 아니에요.
요즘 세대를 사는 현대인이라면 메켈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마련하게 된 호출기로 시작해서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서는 휴대폰이 생겼어요.
그 무렵 당시 최고사양의 컴퓨터도 새로 마련하면서 온라인 상에 저를 스스로 던져 넣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일을 체크하고 중요도에 따라 메일함을 따로 만들었으며
휴대폰을 깜박 잊고 출근길에 올랐다가도 다시 돌아와 휴대폰을 챙겨 나갔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그리 급한 용무가 있었기에 그랬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 땐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거나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했었어요.
소위 통신 중독이라는 것에 저도 예외라는 적용을 받지 않았던거죠.
그 후 미니홈피,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그 증상은 더욱 심해졌었답니다.
포스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에 신경이 쓰여
댓글 달림 알림서비스를 신청하고 메시지가 뜨면 얼른 들어가 확인을 하는거예요.
그러니 하루 종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일이 있어서 컴퓨터 앞을 떠나야 할 때도 차마 끌 수가 없어 절전모드로만 변경시키기도 했고요.
바람이 시원했었던 어느 날 저녁 문득 바쁜 업무를 끝내고 귀가하던 중 명동 거리를 지나친 적이 있어요.
아마 거의 십년 전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 때였으니까요.
그렇게 바쁜 일상을 살다가 문득 이게 뭔가, 내 인생을 이렇게 통신상에 구속시켜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있지만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 말예요.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치 산책을 하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었습니다.
명동거리 아시죠? 1년 365일 매우 분주한 분위기인 것을요.
그런 곳에서 저혼자 동떨어진 사람마냥 산책하듯 걸었으니 신기했나봐요.
지금은 얼굴도 가물거리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데 어떤 대학생이 말을 걸어왔었어요.
처음엔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신은 어떤 대학교 무슨 학과
누구라고 밝히고는 제게 그러는 겁니다.
"이 바쁜 명동에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꼭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라고요.
그 옆에서 남자친구라는 사람은 안절부절 하며 변명하듯 그러더군요.
"이 친구가 조금 엉뚱해서 꼭 한 번씩 이래요. 그러다가 민망한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라고요.
저는 그저 웃었답니다. 별 생각은 안했고 그저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때문에 그리 조바심을 내는지 잠시 돌아보고 있었다고 말해줬고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며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고 했는데 제가 그 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잃어버리고는 지금까지 다시는 볼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사람이에요.
느리게 가기라는 책을 읽으며 그 대학생 친구가 문득 생각났어요.
지금쯤은 뭘하며 살고 있을까요?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지, 결혼을 했을지,
아니면 멀리 다른 나라에서 무언가를 하며 살고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책에서 메켈은 스스로 통신의 올무에 묶어 버린 자신을 되돌아 보며
같은 입장에 있는 지물탄트(Simultant:Simultan동시성의+ant사람: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현대인을 풍자한 신조어)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몰두해서 생각할 줄 아는 용기, 보내기를 잠시 중단할 줄 아는 용기, 단순화시킬 줄 아는 용기,
진정한 부유에 몰입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죠. 더불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메일을 확인하는 사람에게 통신을 위한 전제를 제시합니다.
1.명확한 목표 - 나는 왜 통신을 하고자 하는가?
2.집중과 초점 - 누구와 그리고 무엇에 관해서인가?
3.지속적인 자기반성의 중단 - 나는 지금 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4.시간의식으로부터 벗어남 - 잠시 후 혹은 몇 시간 후에 할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5.직접적인 피드백 - 두 사람간의 자연스런 담소로서의 대화
6.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간의 균형 - 예를 들어, 10분안에 10개의 메일을 쓰지 않는 것.
7.상황과 행동에 대한 의식적이고 직접적인 통제
- 예를 들어, 읽고자 하는 목표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당장 책을 내려 놓는 것.
8.본질적인 동기부여 - 나는 이 사람과 연락하고 싶다.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바로
1단계 우선순위를 정해라
2단계 꺼라
3단계 통신의 주체성을 가져라 입니다.
이게 가능하느냐고요? 자신이 없다고요?
맞아요. 저도 처음엔 자신이 없었습니다. 항상 손에서 눈에서 떼어놓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렇지만 명동거리사건(?)을 이후로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를 냈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궁금하고 불안해서요.
그런데 신기한건요.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대신에 자유롭다, 편안하다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쏟아지는 정보를 습득하고 정리하느라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던 제가 지금은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읽게 되고, 주위 사람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전화로요? 아니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웃고 대화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지요.
컴퓨터 전원을 과감하게 내릴 줄 아는 용기도 있지요. :)
메켈이 질문을 하더군요.
SMS로 보내는 장미에서도 향기가 느껴지느냐고요. 결코 그럴 수 없죠.
요즘처럼 이모티콘 앨범이라는 것도 생겨서 같은 메시지를 상대에게 대량으로 발송할 수 있는데
과연 그것에 얼만큼 진심과 정성이 들어있을까요?
명절이나 새해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으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수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친구와 이메일 대신 수기 편지를 주고 받으며
지금까지 그 편지를 간직하는 그 기쁨을 누리는 저는 이모티콘 문자 대신
작은 쪽지라도 직접 편지를 써서 주는 사람에게 더욱 많은 정성을 쏟는답니다.
향기로운 장미 한 송이와 이모티콘 장미는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저도 온라인상에서 여전히 활동은 하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분명한 건 예전처럼 조바심을 내며 온라인에 묶여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삶에 온라인이 작게 자리잡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떠세요? 이제 컴퓨터 전원을 내릴 줄 아는 용기, 휴대폰을 잠시 꺼둘 줄 아는 용기.
여러분도 내보시지 않겠습니까?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 질거라는 것, 확신합니다.
3초마다 한 걸음을 걷듯이, 우리 천천히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