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야, 겁내지 마!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30
황선미 지음, 조민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은서는 무엇이 겁났던 걸까요?

제목을 보며 무척이나 궁금했었어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종종 걸음하는 듯 보이는 단발머리 어린 소녀.

그림을 보니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이 어렴풋이 났더랬습니다.

엄마와 손을 잡고 가슴에는 이름표와 손수건을 옷핀에 꽂은 채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처음에 정말 씩씩했었죠.

그런데 엄마는 학교에 첫 날에만 함께 가주고 그 다음날 부터 혼자 가라는 거예요.

정말 눈 앞이 캄캄해졌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과 학교의 거리는 아마 200미터가 채 안되는 거리였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꼬마에게는 2킬로미터도 넘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거리예요.

 

과수원 일로 바쁘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은서 엄마와 저희 엄마는 상황이 참 비슷했답니다.

저도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었고 엄마는 맞벌이 하느라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셨거든요. 은서가 학교 가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어요.

언제나 친절하고 동네에서 제일 예쁜 새댁 아줌마네 집을 지나면 나타나는

은행나무 집의 사납고 커다란 개, 황씨 할아버지네 누렁소,

콩 할머니네 깡패 꼬다기(암탉), 그리고 기와집에 사는 바보 아저씨까지.

 

사실 알고 보면 커다란 개는 줄에 묶여 있어서 마당 밖으로 나올 수 없고

황씨 할아버지네 누렁소 역시 밭두렁에 묶여 있었는데 새끼를 가진 상태여서

예민했을 뿐이며, 깡패 꼬다기 암탉은 병아리들이 걱정되어 은서를 경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바보 아저씨는 아주 작은 창문으로 종이새를 날린 것 뿐이었죠.

결코 은서에게 일부러 와서 괴롭힘을 주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래도 은서가 이해돼요. 왜 그렇게 겁을 먹고 학교까지 못가게 되었는지..

 

저 역시 학교를 가려면 마당을 통과해야 하는데 주인집 강아지가 저만 보면

그렇게 앙칼지게 쫓아와 짖어대곤 했거든요.

지금 봤으면 어른 남자 두 주먹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강아지였을텐데

그 땐 정말 그 것보다 몇 배 되는 것처럼 커 보였었고 너무 무서워

마당이 없는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은서를 괴롭히는 것 같았던 누렁소도, 꼬다기 암탉도 결국 은서가 무섭고

자신들이 지켜야 할 새끼들 때문에 앙칼지게 굴었던 것처럼

그 강아지도 엄마개와 억지로 떨어져 혼자 지내야 했기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괜시리 제게 와서 그렇게 짖어댔었나봐요. 정작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전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요? 그 강아지와 친하게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적도 없고 말예요.

 

은서 역시 누렁소, 꼬다기, 바보 아저씨와 절대 친해질 생각이 없었을테죠.

그래서 친구 상민이에게 200원이나 주고 로봇가면과 우산대 지팡이를 삽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누렁소와 꼬다기, 개를 혼내주려는 심산으로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누렁소도 안보이고 개도 너무 조용했어요.

깡패 꼬다기 암탉과 마주쳤을 때 평소처럼 겁먹었지만 암탉은 관심도 없었습니다.

정말 김이 샜지만 은서는 집에서 로봇가면을 쓰고 빨간 벙어리 장갑까지 찾아 낀 채

무적의 우산대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섰어요.

그러다가 은행나무 집 두엄을 파헤치던 꼬다기 암탉과 마주쳤는데

괜시리 혼내주고 싶었잖겠어요? 으름장까지 놓으며 쫓아갔더니

암탉은 푸드덕푸드덕 난리가 났어요. 신이 난 은서는 쩔쩔 매는 암탉을 신이 나서 쫓아다녀요.

그러다가 "다시는 날 쪼지마. 알겠지!"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다기는

사나운 개가 있는 은행나무 집 마당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은서는 이제껏 들어볼 수 없었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암탉의 비명과 개의 으르렁거림..

 

이런 경험을 어린 아이들은 종종 경험하고 사는가봐요.

저도 친해지고 싶지 않았던 그 앙칼진 강아지를 언젠가 한 번 때려주었거든요.

너무 얄미워서 말이죠. 그런데 한동안 아파서 절뚝거리고 다녔었어요.

그 후로 저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강아지.. 좀 많이 미안해지더라고요.

사실 그렇게까지 때려줄 생각은 없었거든요.

 

졸지에 엄마닭을 잃은 병아리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은서는 며칠 동안 몸살을 앓다가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보리쌀을 들고 나가 병아리들에게 주게 됩니다.

다 클 때까지 잘 돌봐주겠노라며. 그리고 늘 무서워했던 바보 아저씨에 대한 오해가 풀리자

늘 작은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갇혀 살았던 아저씨를 위해 창문에

들꽃을 한아름 놓고 나와요.

저도 때려줬던 강아지에게 미안해서 간식이었던 소시지를 몰래 가져다 줬었어요.

그 후로부터 강아지는 저를 보면 앙칼지게 짖는 대신 꼬리를 흔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은서도 그 시절의 저도 아픔과 이해를 통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른이 된 시점에서 세상에 별로 무서울 것 없게 되었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뭔가를 무서워 할 때 "그게 뭐가 무서워?"라는

퉁박은 줄 수가 없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죠.

"무섭지? 그래 엄마도 이해해. 엄마도 어렸을 땐 무서웠어. 그렇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 봐.

그것이 너를 절대 해치지 않아. ○○이는 씩씩하게 잘 이겨낼거라 믿어."라고요.

아주 어렸을 땐 잘 모르더니 네 살배기가 된 아이는 이제 겁이 나는 대상이 많아지나봐요.

불을 끈 화장실도 무서워하고 다른 방에 있던 엄마가 없어진 줄 알고 울고 불고 하는 거며..

밖에 나가서 큰 개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오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 은서만했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요.

게다가 이제 오는 5월이면 어린이집에 가게 될텐데 엄마와 잠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아이에게는 십리길도 더 되는 듯 할 테니까요.

아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또 세상과 친해질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줘야겠습니다.

"○○야, 겁내지 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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