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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디아스포라(Diaspora)란 말은 본래‘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라고 한다. 최근 이 용어는 모든 이산자들을 통칭해 일컫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이‘디아스포라’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각광받는‘노마드(유목민)’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다.‘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의 저자 자크 아탈리는 5억명 이상이 이민자, 망명객, 노숙자, 이주노동자이며 매년 10억명 이상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디아스포라들은 노마디즘의 향유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서경석이 20년간 런던 ㆍ 광주 ㆍ 카셀 ㆍ 브뤼셀 ㆍ 오스나브뤼크 ㆍ 잘츠부르크 ㆍ 파리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21세기의 노마드’가 아닌 외국인등록증을 항시 휴대해야 할 의무를 지닌‘체제 바깥의’디아스포라일 뿐이다.
그를 대중에게 알린 ‘나의 서양미술 순례기’에서 나타나듯 그동안 그는 독자적인 에세이스트라기보다는 서승 ㆍ 서준식의 동생이었다. 이 책에서야 비로소 그는 우리사회에서 낯설기만 한 개념인 ‘재일조선인 2세’로서의 정체성을 토로하며 그가 왜 이렇게 세계를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주류 사회로의 출세가 철저히 막혀있어 직업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는 소수자들에게 남겨진 공간은 예술이 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이나 마약 등의 통로로 빠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희망보다는 막막함이 더했으리라. 흑인들의 연예 ㆍ 운동스타 비율이 높은 것도, 이단이나 주변화된 소수자 중에 뛰어난 예술가가 많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물론 디아스포라에 대한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디아스포라’가 세계화시대 한 나라 민족의 국제경쟁력이라는 지적이 그 하나다.‘뉴스위크’지는 인도가 경쟁국들을 따돌리며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은‘디아스포라’의 힘 덕분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디아스포라’가 경쟁력이라고 떠드는 것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한 경제신문은 디아스포라를 초국가적 민족공동체의 개념으로 소개하면서 650만 명이나 되는 우리 해외교포들이 강력한 디아스포라 집단을 형성한다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술 더 떠 중국의 화교 네트워크처럼 한상들이 모국의 경제발전을 도와주길 기대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디아스포라를 오히려 바람직한 존재로 규정하기도 한다.“국민 국가의 폐해를 넘어서 민족이라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개념을 버려야 하는 지금,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디아스포라’를 둘러싼 복잡한 의미와 역사적 맥락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의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고향의 공동체를 쫓겨나 자살하는 것으로 마감되기에 더욱 그렇다. 디아스포라가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세계화 시대의‘워너비’라면 디아스포라들은 행복해야 정상일 텐데,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이 책의 대답은‘아니오’다.
‘아니오’란 대답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디아스포라와 자살의 연관성이다. 그는 재일조선인의 자살률이 일본인들의 그것보다 높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귀뜸한다. 국민이나 고향 같은, 개인을 이 세상에 잡아매둘 끈들이 튼튼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을 막을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근대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국민 개념은‘왜 한국인으로 태어났는가?’,‘왜 여자로 태어났는가?’와 같은 생의 우연성과 관련된 물음에 답할 수 없을 뿐더러 디아스포라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우리 망명자들’이란 글에서 디아스포라들은‘어떻게 저항하거나 싸울 수 있을지 생각하는 대신,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진다’고 지적했다. 서경석 역시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도‘인간이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제시한 승리의 상징이던 쁘리모 레비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자살했음에 주목한다.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행도 계획되지 않았을 것이고‘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란 책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디아스포아에게 자살(죽음)은 영원한 해방으로 가는 길인 것일까?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하는 존재로서의 피곤한 삶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닐까? 다수자가 규정해 놓은 소수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절망감 같은. 내게 디아스포라와 자살은 죄를 짓는다는 종교적 의미가 아닌‘어깨의 짐을 완전히 벗는’절망감의 끝에 선택하는 일종의 자기 방어행위, 혹은 자신을 씻어내는 정화행위로까지 비춰진다.
서경석의 해석에 따르면 이봉창은 독립투사라기보다는 재일조선인의 원형으로 해석되어야 맞다. 식민지 시대 피식민지를 조국으로 두고 일본인의 양자로 일본에서 살았던 그의 생애를 알게 되고나서야 그런 정의가 낯설지 않다. 이봉창은 거사 직전 김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코자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찍으십시다”라고 했단다. 죽으러 가기 직전에 싱글싱글 웃을 수 있다? 그도 인간일진대 어찌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죽어도 별로 아쉬울 것 없는’, 아니‘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 하나 없는’개인 이봉창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란 점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자살 폭탄 테러와의 연관성도 찾을 수 있다.‘워너비 디아스포라’는 예전에도 현재도 디아스포라 자신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모어와 모국어의 관계는 어떤가? 모어인 조선어를 지킨 채 죽어간 윤동주와 자신의 언어를 잃은 채 지배자의 언어를 모어로 삼고 자란 저자를 비교할 때 새로운 언어를 또 배울 수는 있지만 모어(맨 처음 습득되는 언어)를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모어의 부정은 절대적인 절망상황이다.
600만명이 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단지‘값싼 노동력’으로만 받아들이는 대다수의 사람들. 사실 단일민족이란 허구에 오랫동안 익숙해왔던 우리들로서는 쁘리모 레비의 이중적(이탈리아인/유대인) 정체성과 서경석이 재일조선인 2세로서 갖는 정체성 혼란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와 쁘리모 레비의 저작이 10년도 넘은 후에야 출판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디아스포라에 대한 무관심이 원인일 듯 싶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서 서로의 몸을 적시며 버티는 디아스포라들의 현실과 엑소더스처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겹쳐진다. 영어 공용화론을 비롯, 지자체들마다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영어마을, 조기교육 열풍 등 영어를 모어로 만들지 못해 난리인 세태. 이는 모어와 모국어를 구분하지 못하는(혹은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몰이해가 빚어낸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모국어는 한국어이되 모어는 영어이길 강요받고 있는‘심정적 디아스포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