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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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홍은택, 창비 2005)

 해외를 돌아다닐 때 가장 반가운 곳은 어디일까? 가보고 싶었던 박물관? 한국 민박집? 저렴한 중국식당? 아니다. 주머니 사정 빤한 배낭여행자로 돌아다닌 짧은 경험에만 의거해 이야기한다면 가장 반가운 곳은 다름아닌 맥도날드다. 저렴한 가격에, 가장 싼 메뉴를 시켜도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눌러앉아 있을 수 있고, 여행 중 생돈 내고 써야 하는 화장실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한국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은 덤이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 익숙한 내가 아닌 낯선 나를 찾아 떠나온 여행길에서조차 익숙함을 찾게 만드는 장소가 바로 맥도널드다. 세계화 시대, 한국 외의 다른 땅에서 볼 수 있는 체인점이 어디 맥도날드뿐이랴만, 그래도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발견할 때만큼 익숙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찾아간 낯선 도시의 휴일 아침, 유일하게 열었던 맥도날드가 없었다면 내 여행은 훨씬 비참했을 테니까. ‘아리랑’ 등의 낯선 이름을 달고 있는 한국 식당보다 ‘골든 아치’로 유혹하는 맥도날드가 더 끌린다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의심받으려나?

 더 이상 늦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자전거를 짊어지고 미국으로 떠나온 저자에 따르면 미국 일주 여행은 극단적으로 말해 이쪽 맥도날드에서 저쪽 맥도날드까지 왕복하는 것이다. 좀더 극단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이제 지구상에서 그렇지 않은 나라를 찾기란 굉장히 어려워졌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맥도날드는 짧은 축복일지 몰라도 저소득층이고 소수인종인 사람들에게 맥도날드는 빠져날 수 없는 깊은 수렁과 같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만 하면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신화는 맥잡(MACJOB)에 의해 깨지고 있다. 패스트하고 스피디한 써비스 시스템은 저임금 시간제 노동의 시대를 열었고,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탈출하긴 불가능하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이들과 이들의 자녀들에게 값싸고 편하게 칼로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맥도날드는 친구나 마찬가지다. 노동계급과 서민을 대변하지 못한 민주당에 실망한 근로빈곤계층과 버거킹 맘1)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블루(민주당 후보가 이긴 지역을 표시) 대신 레드 아메리카(공화당 후보가 이긴 지역)로 만든다. 맥도날드의 본질과는 맞아떨어지는 색깔일지 몰라도 삶과는 동떨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연봉 1200만 원 이하의 가정이 늘어나는 만큼 월소득 500만 원 이상의 가정도 함께 늘어나는 양극화 시대의 한국. 통계로 환산될 때의 시차나 오차를 감안한다면 필시, 지금 한국인의 평균적인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을 터. 자본의 방임을 전제로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되는 ‘미국식 시스템’이 우리가 부르짖는 세계화임을 감안할 때, 이 시스템은 날이 갈수록 정교한 그물망으로 우리의 삶을 죄어올 것이 분명하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블루냐 레드냐를 따지는 이분법이 이런 진단의 모든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저자처럼, ‘블루’의 관점에서 2007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1) 버거킹이나 맥도날드처럼 저임금 시간제 직장에 다니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독신여성을 뜻하는 말.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처음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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