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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하다 ㅣ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한이불에서 살 맞대고 몇십년을 함께 산다고 해서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을 때쯤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매체나 이미지, 그리고 캐릭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배우나 작가는 말해 무엇할까. 기자라는 제 3자에 의해 걸러진 그들을 만나는 ‘인터뷰’ 역시 그러하다. 인터뷰 하나 읽고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한 착각도 없을 터이다.
오랜만에 그 착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인터뷰라는 특성의 한계는 여전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책, 『그녀에게 말하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은 저자가 몸담고 있는 씨네 21의 고정코너 이름(김혜리 기자가 만난 사람)과 유사하다. 그 잡지에서 가장 먼저 챙겨 읽거나, 가장 나중에 읽게 되는 코너다.
전문 인터뷰어(intervieer)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책을 간간이 읽어 왔지만, 직접 구입한 것은 처음이다. 쉬우려면 얼마든지 쉽지만, 어려우려면 또 그만큼 어려운 것이 인터뷰다. 인터뷰가 그저 질문 몇 개 던지고 답변을 받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치기와 질문지를 받아 지면을 메꾸는 기자들의 행태가 겹쳐져 인터뷰란 방식은 내게 그렇게 미운오리새끼가 되어 있었다. 정해진 답변을 늘어놓는 성의없는 인터뷰만큼 재미없고 따분한 것도 없다. 지루한 질문지에 그저그런 답변을 적어주는 일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은 총 21명과 만난 인터뷰의 기록이다. 이창동이나 송강호 등의 영화인을 비롯해 구본창, 정구호, 황두진 등 예술이란 이름으로 커버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쟁이’들이자 고수들이다.
‘내가 읽은 최고의 인터뷰집’이라고 감히 말하는 뒷면의 주례사 비평이 아니라 해도 나 역시 일단은 그 리스트에 이 책을 올려둘 참이다. 1주에 한번씩 책을 내야하는 주간지 기자의 짧은 호흡에서 이렇게도 진중하고 긴 글이 나올 수 있다니 놀랍다. 인터뷰이(interviewee)와 관련된 모든 글과 영상을 찾아서 읽고 보고 생각하고 나와서 던지는 질문들이란.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문자와 답변자 모두의 내공이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처럼 조이지만 칼이 멈추면, 상대방이 쓰러져버린다고나 할까. 날카롭거나 신경질적이지 않게, 저돌적이지 않게 은근하고 조용하게, 둔하게. 인터뷰이만큼 인터뷰어가 함께 드러난다.
지승호 같은 전문 인터뷰어의 글도 좋지만, 김혜리의 글은 좀더 다른 느낌이다. 지승호의 글이 날것 그대로, 지인과 시시콜콜 수다를 떠는 듯한 인터뷰이를 드러낸다면, 김혜리의 글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함께 슬몃 다가오는 느낌이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지만 서로에 대한 호감과 진심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남녀가 사귀는 것보다 더 좋다는 직전의 기분좋고 설레이는 밀고 당기기의 기분.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신기한 경험, 나도 그녀에게 인터뷰당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절로 생긴다. 인터뷰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앞에 두고 만나는 사람에게서 진심을 이끌어내는 힘든 작업이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인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그녀의 두 번째 인터뷰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