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핫드링크 노트
프티그랑퍼블리싱 엮음, 박규리 옮김 / 나비장책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학교 앞에서 3000원~3500원이면 밥 한 끼를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던 때였다. 언제부턴가 학교 앞에 커피 전문점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격은 1700원부터 3000원이 훌쩍 넘는 것도 있었다.

 ‘곧 없어질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이통사 할인 혜택을 등에 업은 패밀리레스토랑의 급성장과 발맞춰 스타벅스를 위시한 외국계 커피 전문점들은 소위 ‘쿨’한 감성들의 hot place로 떠올랐다. 혼자 와서 2시간 넘게 죽치고 앉아 있어도 흘낏흘낏 처다본다거나 이제 그만 나가라는 주인의 은근한 압박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에도 뭔가 있어보인다는 ‘간지’가 한몫했다. 게다가 노트북을 펴놓고 이어폰을 끼고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이의 옆모습은 그야말로 잡지 화보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너무 흔해졌고,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스타벅스를 살리겠다며 초대 CEO가 구원투수로 투입되고 있지만 처음 그 문화는 너무도 ‘쿨’한 동경의 세계, 그 이상이었다.

 같은 커피를 마셔도 다르게 느껴지고, 뉴욕이나 런던 한복판에 와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터. 사이즈부터 시럽을 넣을지, 500원을 더 내고 저지방 우유를 넣을지의 복잡한 주문방식도, 이름도 생소한 여러 가지 커피를 고르는 것도 ‘자기 취향이 그만큼 확실하고 또 그만큼 존중받는다’는 것으로 격상됐다. 까다롭게 주문하면 “아 그냥 대충 먹어,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라고 타박받던 문화는 Old-Fashion한 구닥다리로 취급할 수 있었으니.

 커피와 관련해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나의 핫드링크 노트’처럼 따뜻한 책은 처음이다.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이런저런 사회적인 맥락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따뜻하게 우려낸 차 한잔을 손에 감싸쥐고 여유를 즐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유년의 기억으로 대표되는 추억의 회로에 반짝 불이 들어온다. 

 물론 이 책의 감성과는 무관하게 커피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무성하다. 직장인 한 사람이 커피 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월평균 2만원에 가깝다는 통계도 나왔다. 2006년을 강타했던 ‘된장녀’ 논란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외신에서 “한국의 외로운 2ㆍ30대 젊은이들은 주로 카페(스타벅스ㆍ커피빈)에서 커피 한잔과 베이글 등을 먹으면서 공부나 일을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사회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별다방, 콩다방으로 대표되는 외국계 커피 전문점의 위세 속에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점의 영역 넓히기, 할리스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체인의 사업 확대. 이런 일련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소규모의 카페들까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확실히 한국의 차(커피) 문화 저변이 넓어지고 진일보한 것만은 사실이다. 에스프레소 기계 판매가 새로운 혼수품에 추가됐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는 것을 보니…

 이상할 정도의 열풍과는 달리 관련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 까페나 할까”란 제목의 책부터, ‘스타벅스를 마시는 여자, 스타벅스 주식을 사는 여자’란 책까지…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뺀 느끼한 책들의 홍수 속에서 ‘나의 핫드링크 노트’는 비현실적인 재료와 레시피를 앞에 두고도 기분좋은 세계여행을, 그리고 차를 마시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자연스레 역사와 기후, 그리고 문화를 ‘차’라는 기호식품을 통해 알게 되는 기분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다. 다만 요리책과 에세이의 그 어디도 아닌 중간쯤에 서 있는 듯한 책의 컨셉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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