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찍 경찰서로 갔다. 담당형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 아내의 시신은 밀린 월세 때문에 따지러 온 집주인에 의해 아침 일찍 방에서 발견되었다.
반듯하게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있었으며 투피스 차림에 팬티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투피스는 핏자국이 없이 깨끗했으며 몸에도 육안으로 봤을 때 출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단다. 투피스는 대단히 화려한 것이어서 보통 특별한 날에나 입을 만한 종류로 보였다고 했다.
그 옷은 나도 입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우리가 결혼하던 날이었다. 맞다. 특별한 날에나 입는 옷이다.
안 입고 아끼던, 옷장 속에서 제일 화려한 옷을 입고 죽었다는 사실 역시 경찰의 자살했다는 결론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담당형사 - 그는 내가 수감되기 이전, 경찰이었을 때도 근무할 때 자주 보던 얼굴로 꽁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 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냉장고 속은 텅텅 비어 있었고 쓰레기통은 꽉 차 있었다. 최근에 음식을 해먹은 흔적이 없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유일한 물건은 1.5L 탄산음료 2개였는데 하나는 반 쯤 마셨고 밑바닥엔 갈색 침전물이 두껍게 몇 센티미터 정도로 쌓여 있었다.
흔들어 보니 이리저리 흩어지는 작고 허연 파편들, 고춧가루로 보이는 것들, 주황색 입자들이 보였다. 허연 파편들은 얼핏 보면 아주 작은 새우들이 헤엄쳐 다니는 것도 같았지만 사실은 밀가루였다. 전체적으로 라면 찌꺼기로 보였다. 컵을 쓰지 않고 1.5L를 입에 대고 마시다보면 이런 라면 찌꺼기들이 입 안에서 페트병으로 옮겨가서 병 속에 침전되기 마련이다.
방안 한 구석에 빈 컵라면 용기가 30여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동네 사람 누군가가 얼마 전에 구청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신청하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 그녀가 있었던 것을 보았다고 했다. 대화까지 나누었다고 했고 대화내용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화내용은, 여기서 뭘 하느냐, 여름에 수영장에 다니려고 한다, 좋은 생각이다 등등 이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등록 신청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가 중간에 돌아간 것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평소 앓던 양극성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보인다.
여기까지이다.
평소 나에게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아내. 구청 스포츠센터도 역시 수영이 목적이었다.
그에게 말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양극성 우울증의 증상 (증상이랄 것도 없이 치료를 받고 있었으니)을 여기저기서 발견했다지만 치료로 많이 호전되었고 외래진료도 예방적 치료의 성격이 강했으며 주변상황 (나의 출소, 또한 나의 출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나 구민센터에 여름철 교육수강을 신청하러 갔던 것 등으로 볼 때 자살했을 리가 없다.
뭔가 신청하러 갔다는 것은 희망에 찬 행동이다. 그리고 그녀는 예전에 자해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유서가 없다.
꽁치가 반발했다. ‘껌 종이나 냅킨에 급하게 유서를 휘갈겨 써놓은 경우도 봤고 유서가 없는 자살의 경우도 봤다.’ 고.
내가 말했다.
“얼마 전에 구청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하러 줄을 서 있었다고 하던데 자살할 리가 있나? 나는 안다. 그녀의 기분 상태는 나만이 알 수 있다.”
꽁치의 의견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줄을 서 있다가 그냥 돌아간 걸 보면 마음의 결심을 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한 번에 먹었다던 약 봉투들이 쓰레기통 안에서 위에 뭉쳐 있었는지 아니면 여러 군데 흩어져 있었는지 내가 물었다.
그는 쓰레기통을 통째로 털어 쏟아 놓고 내용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쓰레기통에 얼마동안의 쓰레기가 담겨 있었는지 아느냐고 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약 봉투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이것은 가지고 있던 모두를 먹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누군가가 강제로 먹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물었다.
“강제로, 즉, 힘을 써서 억지로 먹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먹질을 해서 남의 이빨을 부러뜨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잖습니까?”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에 음료수 등에 타서 먹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그러기엔 약물의 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검출된 약물들의 량만큼 음료수에 타면 아마 걸쭉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때문에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들의, 가지고 있던 모든 량을 먹었다고 보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며 이외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