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우울증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는지, 본인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또한 그로 인해 결국 자기파멸에 이르렀는지 담당형사가 판단을 했으며 - 그가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 그런 판단에는 보통 여러 가지 항목들을 고려하기 마련이라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 항목들이라는 것이 대개 비슷한 내용들이다. 즉,  

 

주변인들 중에서 누군가 어느 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는가?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취미나 평소에 좋아하던 스포츠에 관심을 잃고 있었는가?

 

어떤 생각에 몰두한 듯이 보인 적이 있었는가? 
 

시간, 장소 등을 혼동하거나 시간, 장소의 식별력을 잃고 있었는가?

 

희망이 없음이나, 절망감을 표출하거나 한탄한 적이 있었는가? 
 

최근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의 종말이나, 붕괴가 있었는가?

 

죽음을 위한 준비나, 사후정리의 흔적이 보이는가? 
 

은 날이 누군가의 기일이나 기념일이었는가?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는가? 또는 직장을 잃었는가?

 

죽기 전에 일상생활을 벗어난 행동은 없었는가?

 

평소에 불만을 나타내던, 아니면 관심을 보이던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대한 불평이 없어지거나 무관심해진 모습이었나?  

  

이런 것들이다.

 

내 생각엔 이 우울함을 표시하는 전제조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수두룩하다. 전쟁 이전이나 서유럽이라면 이 표준들이 가치가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이러한 표준들로 자살가능성이라든가 어느 정도로 우울했는지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전쟁이 끝난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한 시기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사항들이 많다.  

이를테면, 경제적인 곤란함이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의 종말이나 붕괴, 그리고 희망이 없고 절망감을 표출하는 행동들은 오늘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인 것이다. 거의 모두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전쟁 전에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잃었다.

 

경찰동료였던 돼지와 약속이 되어 있어서 여관 문을 나섰다.
경찰서 앞마당 벤치에서 돼지를 만났다. 
 

그는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인정하긴 싫겠지만 자살했다는 거 속으론 알고 있잖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  제수씨가 자살한 게 당신 탓은 아니잖아.” 
 

돼지는 거의 항상 나를 당신이라 불렀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자살했다면 그건 내 탓이다. 내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역시 자살했을 리 없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했다.

“출소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자살했을 리가 없다. 내가 출소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당신이 출소하면 천국이 온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당신이 투옥되기 전에 천국같이 살았었는가? 즐거웠었나?”
돼지가 반문했다. 
 

나는 말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색조를 달리 하며 타오르는 담배 끝을 쳐다보았다.

 

“혈액샘플 검사까지 했는데...아니면 몰라도.”
돼지가 못을 박았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내 손에 건넸다.
그리고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리 112회 동기들이 자네 출소 소식을 듣고 조금씩 보탠 것이네. 당분간 생활비가 없을 테니 요긴하게 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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