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의 왼쪽 다리에 총을 쐈고 그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다리를 움켜잡았다.
“이런 고통이었을까? 아니면 이보단 더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움켜쥔 그 두 손에 망치질을 하듯 한 발씩 침착하게 쐈다.
“의학에 조예가 깊은 것 같은데 지혈을 잘 하라구, 황 회장. 다리는 모르겠지만 양 손은 앞으로 평생 쓰기가 불편할 것이니 미래에 대한 계획도 미리 생각해보고.”
사무실 책상과 바의 카운터, 그들의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 봐도 달랑 161억 원밖에 없었다.
사무실 책상 위 벽에 물오리와 연꽃이 새겨진 쌍발 엽총이 한 자루 걸려 있었다. 탄환이 두 발밖에 남지 않은 권총을 복대 안에 집어넣고, 그 엽총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엔 161억이 든 비닐백을 들었다. 복대 안의 권총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엽총 탄환은 어디 있나, 황 회장?”
그에게 물었다. 그가 악에 바친 소리로 내뱉었다.
“없어, 이 새끼야!”
“1층 열쇠는?”
그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권총을 다시 꺼내어 그에게 겨누었다.
“아직 총알 있다. 1충 열쇠는 어디 있나?”
그가 울부짖었다.
“서랍 안에 다 있잖아, 이 새끼야!”
나는 서랍을 뒤져 엽총 탄환 네 발과 1층 열쇠를 찾아 가지고 나왔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오니 길거리의 행인 몇 명이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권총과 비닐 백을 차 안에 던져 넣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1층 셔터 문으로 갔는데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열쇠를 주고는 셔터 문을 열어 달라고 말했다.
그녀가 셔터 문을 연 후 엽총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승합차 한 대와 외제차가 있었는데 승합차의 뒷문을 엽총으로 부순 후에 안을 들여다봤더니 금속상자 같은 모양의 물건이 있었다. 한 발을 그 물건에다 대고 쐈다. 다시 두 발을 재장전하여 승합차 본네트에 대고 두 발을 연달아 쐈다.
“이제 가자.”
내가 운전대를 잡으려 했으나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이어서 그녀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시내 외곽을 지나 중심가로 오자 난 그녀에게 차를 세우고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올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약국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걸어왔다. 얼굴에선 광채가 나고 금방 잡지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의 아가씨가 한편으로 근심에 찬 표정으로, 다른 한편으론 조심스런 기대감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눈이 부셨다. 피노키오가 인간이 된 후에 저런 표정으로 길거리를 걸었을까?
이제 그녀는 약간은 안심하는 눈으로 옆좌석에서 날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거죠?”
“물론이지.”
차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달리던 중이었다.
사찰 앞에서 한 무리의 둔전병(屯田兵)들에게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가 얻어맞고 있었다. 와이셔츠는 피범벅이 되었고 곧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서서히 지나쳐 가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말했다.
“다시 차를 돌려라.”
그녀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우리가 지나친다면 그 사람이 맞아 죽을 거야. 어서 차를 돌려.”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
차에서 내려 내가 외쳤다.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저 자를 폭행하는가?”
한 무리의 둔전병들이 퍼질러 앉아 있었다. 그 옆엔 피범벅이 된 자가 , 묶여 있지도 않은데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이 자는 도둑이다.”
그 중의 한 명이 말했다.
“도둑이라도 절차가 있다.”
“이 지역은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우리가 경찰을 대신하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내가 따지고 들었다.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문제라면 헌병대가 해결할 문제이지 왜 당신들이 신경을 쓰는가?”
무리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경찰이다. 이 자를 내가 데려가야겠다.” 그리고선 마카로프 권총을 꺼내어 겨눴다.
“당신이 경찰 맞나? 언제부터 경찰차가 이런 호화로운 차로 바뀌었나? 우리 병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 년놈들은 100미터도 가기 전에 벌집이 되고 만다.”
결국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자의 몸값을 줄 테니 이 자를 내게 넘겨라.”
그러자 그의 표정이 약간은 누그러졌다.
결국 그들에게 100억을 지불하고 도둑을 내 차에 태울 수 있었다.
진통제를 먹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왼쪽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도둑이 거의 힘없는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로 보이는 그는 전쟁 전에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을 굶었다고도 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어지럽고 구토가 나려 한다고 괴로워했다. 그는 앞머리가 많이 벗겨져서 머리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고 상처로부터의 출혈도 더 심해 보였다.
소변이 마려웠다.
“어디 쉬었다 갈 만한 곳이 있으면 쉬었다 가자.”
그녀에게 말했다.
도둑이 뭐라고 말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들어 보니 쉬지 말고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쫓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몸값을 지불했으니 그들이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지만 그는 막무가내였고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의 바짓가랑이가 서서히 젖어 들어갔다. 할 수 없이 쉬지 않고 그냥 가기로 했다.
“이제 안심이 되었소?”
그에게 말했고 그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길가를 걷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차를 세우고 근처에 병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가 떠나온 도시를 제외하면 이 근처엔 병원이 없고 30분쯤 가면 다른 도시가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복대를 벗고 다시 정상적인 배변주머니로 갈아 끼웠다.
이때서야 든 생각이지만 만약에 그 둔전병들이 우리를 공범으로 몰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도시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그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죽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미 폭력 전과가 있다.’
잠시 생각했다.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도둑이 죽어 버렸으니 중간에 내려놓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냥 병원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난 모든 죄를 몽땅 뒤집어 쓸 수도 있으니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한적한 곳에 도둑의 시신을 내려놓고 담배를 한 대 입에 물려 주었다.
“미안하네. 부디 평화로운 곳으로 가게나.”
그리고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61억 밖에 없다고 말을 하면 뭐라고 그럴까?
예숙이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죽은 도둑에게서 묻었을까? 양 손바닥엔 온통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손부터 씻고 나서 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얘기하고 상당히 틀리더군. 맞아 죽을 뻔했다.”
돼지가 말했다. “그 놈이 그렇게 대하던가?”
“그렇다네.”
“돈은 받았는가?”
“쥐꼬리만큼.”
내 대답을 들은 다음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렇게 돼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저녁 때 류씨가 귀가하자 나는 인사를 했다.
“단풍구경 잘 하고 왔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아직은 이를 줄 알았는데. 근데 몹시 피곤해 보이네요.”
“피곤하네요. 너무 피곤해서 지금 자면 내일 저녁때나 일어날 것 같아요.”
모든 게 다 귀찮았다. 배변주머니를 갈아 끼우는 것도 진저리가 났다. 배변주머니를 떼어내고 방 한가운데 잠시 누워 있었다. 인공항문 주변의 피부가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 사탕부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탕을 뽑아 입 안에 넣었다.
돼지가 아내에게 곰인형과 사탕 부케를 선물하는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 나이에 곰인형과 사탕이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진통제 두 알을 먹고 다시 이불을 쓰고 누웠다. 리튬냄새가 부엌 수챗구멍에서 방으로 몰려들었다. 죽은 아내가 옆에 누워 있었다.
“여보, 오늘은 참 힘든 하루였소.”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아직 저녁인데도 잠을 청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지, 여보?”
이미 꿈나라로 떠난 아내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