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통원치료를 받았던 신경정신과의 담당 의사를 만나서 최근의 그녀의 심리상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번호는 그대로였다. 그는 전혀 아내의 죽음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경찰이 아내의 죽음 때문에 그를 찾아온 적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였다. 반쪽짜리 수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월 며칠에 아내가 자살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약속시간을 잡고 휴일에 병원건물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전에도 아내 때문에 한두 번 본 적이 있었고 그도 날 알아봤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나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최근에 아내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자살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했나요?”

“아뇨, 전혀. 만약 그랬다면 내가 놀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어떤 문제를 겪고 있었다면 나한테 먼저 절박한 전화를 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죠.”

그는 아내가 최근 몇 년간은 약에 잘 반응했으며, 나와 결혼했을 무렵부터 굉장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리고 최근까지 별 다른 고민이나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자살은 경찰이 내린 결론인데, 그 결론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경찰의 누구도 담당의사와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으며 담당의사의 의견은 사건의 판단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잠깐만요.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에 놀라긴 했지만, 그녀의 자살을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살을 했다면 대단히 충격적이고 미안하지만 솔직히 의사도 누가 자살을 할지, 하지 않을지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자살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던 환자가 그 다음날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내 경험상.  

전문가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자살을 할지 안 할지 예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떤 행동이나 겉모습을 보고 자살을 할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론 멍해보여도 머릿속에선 태풍이 몰아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어떤 사람이 주변 환경이나 그 사람을 둘러싸고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에 자살을 했는가? 하는 여부는 무척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과학의 영역 밖에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판단을 내린다 해도 그 판단에 별 권위도 없습니다.”

 

“내가 출소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 약속은 효력이 없습니다.”

 

“혹시 다음에 병원에 오기로 한 날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내가 묻자 그가 잠시 차트를 보더니 대답했다.

“예, 꼬박꼬박 먹었다면 석 달 전에 약이 떨어졌을 것이고 정상적이면, 혹은 바쁘지 않으면 그 때 왔어야 합니다.”

‘바쁘지 않으면’ 이라는 의사의 표현 때문에 질문이 이어졌다.

“이전에도 약이 떨어진 채 오지 않고 있다가 며칠 후에서야 병원에 온 적이 있었는지요?”

“자주 그랬습니다. 며칠 후, 심지어 몇 주 후에 온 적도 있었고요. 나에 대해 못마땅해 할 땐 그런 식이었습니다.”

 

여관방에 돌아와 누워서 생각했다.

의사와의 만남은 별 소득이 없었다.
거울을 보면, 내가 멍한 얼굴에 머릿속엔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았다.

배가 고파 힘이 빠졌다. 사탕 부케에서 사탕 몇 개를 뽑아 입 안에 넣고 씹어 먹었다. 기운이 좀 났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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