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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배경은 근미래입니다.

돼지에게 부검기록을 본 사실과 전직 군의관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사후 재분포 현상 때문에 시신의 심장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의 약물농도는 별 의미가 없으며, 사인은 불법 낙태로 인한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하지만 그는 대체적으로 시큰둥했다.

“나는 당신이 이제까지 이렇게 뭔가에 집착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당신은 말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제발 무슨 일이든 일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게나.”

그는 박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담당검시관을 만나 봐야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몇 번의 고성이 서로 오간 후에 둘 다 잠잠해졌다.

돼지는 담당 검시관과의 면담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만약 만나고 나서도 부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이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지 말라는 단서를 붙였다.

“동기들이 준 돈도 이제 다 떨어질 때가 되었을 텐데 생계활동은 안 할 작정인가?”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일했던 다방에 들렀다. 경찰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다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부분이 노인들이었지만 분위기는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병원 입원실의 분위기 같았다.  

조용조용 일상생활이나 지인들에 대한 안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가 잠시 멈추게 되면 낮게 흘러나오는 한숨들... 그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 아는 얼굴이 없었다. 나와 아내를 축복해주던 노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새 고인이 되었을까?

 

다방에서 나와 100미터 쯤 걸어갔을 때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웬 할머니인가 하고 보았더니 다방 사장이었다.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쓰다듬었다.

“나왔네.”

“네,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나보고 아내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으니 가져가란다.
난 나중에 다시 와서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그냥 왔다. 
 

검시관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날, 나는 질문항목을 미리 작성하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을 되풀이하여 질문하는 장면을 상상하였으며, 내 질문에 대한 검시관의 대답에 맞받아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중엔 질문항목을 작성한 메모가 필요 없게 되었다.

검시관과의 만남은 매우 혼잡한 환경에서 이뤄졌으며 지극히 사무적인 대화들이 오고갔다. 질문과 답변 모두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그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답변을 하기 일쑤였고, 나는 종종 말의 끝맺음을 생략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만나 커피자판기 앞에서 잠시, 그리고 새똥으로 얼룩진 벤치에서 잠시 이야기를 했다. 

 

먼저 불법 낙태로 인한 후유증이 아내의 사인이었을 가능성에 대한 내 물음에 그가 답했다.        

“자궁과 자궁 표면의 상태를 살펴보았지만 감염의 흔적도, 고름도 없었다. 만약 감염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기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자궁 표면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상태를 기대할 순 없다.  

불법 낙태에 뒤따르는 감염으로 인한 죽음에 보통 흔히 수반되는 복막염의 흔적도 없었다. 만약 심각한 감염이 일어났다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비위생적인 불법 낙태나 자궁의 상처 따위로 감염이 일어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내가 물었다.  

“감염 이외의 다른 사인의 가능성은?”

 

“우리나라에서 불법 낙태로 죽어가는 여성 대부분의 사인은 패혈증이나 패혈성 쇼크로 인한 것이다. 그 밖에도 DIC(Di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opathy, 파종성 혈관내 응고장애), 과다 출혈 등 모두 죽은 후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자궁 안에 태아나 태반의 일부가 남아서 감염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강력한 화학 물질의 흔적도 없었다. 즉, 불법 낙태시술은 사인과 무관하다.”

“공기색전의 가능성은?”

“거의 100여 년 전에 서구에서 히긴슨식 주사기라는 것이 사용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고무펌프로 관장을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물건이다.  

그것으로 자궁 안에 비눗물이나 강력한 소독약을 불어넣곤 했다. 물론 낙태의 목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행위이다. 많은 여성들이 공기색전과 비누 중독 따위로 죽어갔다. 지금은 그런 것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옛날이야기이다.

지금 불법 낙태로 공기색전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는 보지 못했다.

자궁 내에서 발견된 튜브의 조각으로 볼 때 흡입 낙태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 용도로 쓰이는 튜브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다른 낙태기법도 함께 쓰였을 수도 있다.  

만약에 히긴슨식 주사기나 다른 수단으로 공기가 섞인 액체를 불어넣었고 그 결과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했다면 자궁 안이 깨끗이 비워질 수는 없다. 이런 위험한 방식들은 자궁 안의 내용물을 흡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에 자궁으로부터 태아를 비롯한 내용물이 배출되기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공기색전증이 일어나는 경우 죽음은 급격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기가 정맥으로 들어가서 사망하기까지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은 안 걸린다.“ 

 

“전혀 공기색전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인가?”

“지금 불법낙태를 하는 자들은 아마 히긴슨식 주사기라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신 아내의 경우처럼 대다수의 임신 초기의 불법 낙태는 흡입 낙태 방식이다.  

주사기로 수동식으로 하던지 기계로 전기식으로 하던지 간에 이것은 자궁의 내용물을 흡인하는 기계이지 자궁 안으로 공기를 불어넣는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공기색전증은 일어나기 힘들다.

과정을 간단히 말하자면, 가느다란 튜브를 자궁 경부를 통해 자궁 안에 집어넣고 진공 상태를 만들어 자궁 안의 내용물을 흡입하는 것이다. 의료지식이 전혀 없는 불법 낙태업자들이 이 방법으로 하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은 자궁에 상처를 낸다든가 자궁 안의 내용물을 완전히 비우지 않아서 감염과 출혈을 일으키거나, 또는 자궁에 구멍을 내는 등의 결과로 일어나는 합병증들이다.“

 

“그래도 심장 안의 거품에 대해서 검사를 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의견은 이미 부검기록에 다 쓰여 있다. 난 당신에게 이미 굉장한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바빠서 일일이 설명하긴 힘들다.”

 

“자궁에 상처는 없었는가?”

“세세하게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나? 부검기록에 어떻게 나와 있는가? 부검기록에 그런 언급이 없다면 상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망 이틀 전의 낙태로 인한 죄책감이 우울증을 악화시켜 자살했다는 근거는?”

“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부검기록에도 그런 말은 없을 것이다. 단지 ‘매우 최근에 받은 낙태의 흔적‘이라고 표현했을 뿐 ’이틀‘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을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죄책감이나 우울증 같은 것들은 알다시피 내 분야가 아니다. 내게서 나온 말들이 아니다.“

 

‘매우 최근’에 낙태를 받았다는 근거는?”

“자궁의 크기가 아직 임신 이전의 크기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고, 자궁경부도 아직 만년필 굵기 정도로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을 했다.
어떻게 ‘이틀 전’이라고 구체적으로 시점을 알아 낼 수 있겠는가? 그건 내가 추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수사과정에서 알아 낸 것 아닐까?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정확한 낙태시점은?”

“사망시간으로부터 일주일 이내일 것이다.”

 

“자궁과 자궁경부의 상태를 봐서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자궁경부의 상태를 봐서...... 맞다.”

 

“일주일 이내의 어느 시점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그렇다면 사망 직전에 시술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것 같진 않지만, 부검결과만으로는 사망 직전에 낙태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진 못한다.”

 

“더 확실히 할 순 없는가?”

“그럴 수 없다. 어차피 사인이 낙태의 합병증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낙태의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

 

“불법낙태를 받았다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합법적인 낙태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대로 임신이 진행되면 산모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의 흔적이 부검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사망 전 두 달 간의 낙태 허가 신청서 명단에서 사망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 사후 재분포 현상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검시관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내가 다시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알고는 있다.”

“그러면서 혈액 샘플을 심장에서 채취하였나?”

“사후 재분포가 이 건에서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검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정황상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경우엔 부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짜 치밀한 부검이 필요한 대형 사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되고 만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당신은 내 시간을 많이 빼앗았고 내게 미안해해야 한다.

몸에서 담배냄새가 많이 나는데 담배는 끊는 것이 좋다. “

 

담배는 끊는 것이 좋다는 그의 말은 생각해볼수록 날 화나게 만들었다. 그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대화는 의사와 환자 간의 만남 같은 것으로 성격이 변질되는 것 같았다.

부검의와 이야기해본 결과, 역시 사망하기 이틀 전에 불법 낙태시술을 받았다고 판단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난 사망시간과 매우 근접한 시간에 낙태 시술이 있었다고 판단할 만한 증언을 확보해두고 있다.

 

돼지에게 전화를 걸어 검시관과의 대화가 내 입장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건이 재수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돼지가 짖었다.  

“부검의의 말은 전혀 다르던데. 의혹이 해소된 것이 아니었나? 이렇게 집요한 이유가 뭐지?  

당신 와이프가 죽기 전에 보험이라도 들어 놓았나? 근데 보험사에서 자살이라 보험금을 안 준다고 했나? 그런 일이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다. 재수사란 게 당신이 애써서 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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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입니다.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그녀는 업소에도 나가지 않고 앓아누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다.

걱정되어서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간 내 앞에 그녀가 누워 있었다.
내게는 ‘고인에 대해 욕되게 해서 미안하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라고 말했다.  

 

같은 구조인데도 그녀의 방은 내 방보다 더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 방에는 없는 거울이 부엌에 걸려 있었다. 출소 후 처음으로 거울을 봤다. 낯선 이가 거울 속에 있었다.

 

속옷을 이틀에 한 번씩은 갈아입을 작정으로 길거리에서 속옷을 몇 벌 샀다.
벌써 길거리에서는 빨간 홍옥을 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싶어졌다. 팬티와 러닝셔츠는 땀에 흠뻑 젖고 다시 마르고 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 팬티와 러닝셔츠를 몸에서 떼어내고 오랜만에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몸에 조금씩 부었다.
몸에 붙어 있던 속옷의 섬유질들이 때를 미는 대로 국수 가락처럼 말려 떨어져 나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샤워를 마친 후 새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감옥에서 나와서 오히려 살이 많이 빠져서 배변 주머니가 인공항문에 잘 맞지 않아 다시 조절을 해야 했다.

물 담은 세숫대야를 수십 번 들었더니 허기가 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사탕을 몇 개 더 뜯어 먹었다.
최대한 배변 주머니를 아끼기 위해서 하루 한 끼만 먹기를 계속했더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는지 이제 가을철인데도 방 안에 있으면 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

 

오후가 되어 다시 예숙이의 방에 들어가서 보았더니, 그녀의 사색이 되었던 낯빛에 약간 생명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술을 무척 많이 마셨나 봐. 적당히 하지.”

“진상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줘서......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렇지.”

나의 충고는 바보스러웠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내 눈치 보지 말고 대답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남자와 함께 집에 온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굴은 못 봤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단다.

“왜냐하면 무전기 같은 것에서 쉴 새 없이 소리가 흘러나왔고, 가끔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으니까.”   

 

 

이번엔 그녀가 내게 물었다.

“인공항문 때문에 많이 우울한가요?”

다소 복잡한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지옥에서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 다음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또 생각이 다르다.  

앞으로 배설하든지 뒤로 배설하든지 본질은 변하지 않아. 단지 위치만 바뀔 뿐이지.  

만약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인생에서 달라지는 것이 몇 가지나 있을까? 좀 더 편해지겠지만 의외로 달라지는 것이 많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원래 세상이 띄고 있는 회색빛 색조를 제대로 감상하게 되는 것이지. 결국 더 우울해지고 말겠지.”  

“아저씨가 감옥에 갈 만한 짓을 했다고는 상상이 안 되는데......”

“성기능을 회복시켜 주겠다며 사기 치던 놈을 바보같이 믿다가 전기구이가 될 뻔했지. 그것도 세 차례에 걸쳐. 나중에 원리를 알고 보니 전기 충격기를 개조한 것이었어.
병원에 물어보니 ‘전기 자극을 어디다 준다는 말인가? 신경이고 전립샘이고 다 없어져서 그런 방법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고.
없는 신경에 어떻게 자극을 주느냐는 것이지.
그래서 권총을 들고 가서 위협사격을 한 뒤, 죽지 않을 만큼 그 사기꾼을 패줬지. 문제는 그 ‘죽지 않을 만큼’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녀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질 듯했다.

“그럼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우울한가요?”

“모르겠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성욕을 느끼는 것과 못 느끼는 것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우울하다. 그것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 내가 다시 성욕을 느낀다고 해도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이진 않을 듯하구나.”

“그럼 왜 돌팔이를 찾아갔었어요?”

“내가 돌팔이를 찾아갔던 것은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였어. 나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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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고통스러웠을까요?”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태 후에, 또는 낙태 중에 죽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순식간에 죽었다면, 그래서 이미 죽은 후에 흡입시술이 이루어졌다면 고통은 없었을 테지.”

“만약 낙태 후에 죽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박사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 흡입 낙태는 전신마취는 안 하고 자궁 경부 주변에 차단마취(paracervical block)를 하지만 불법일 경우는 아예 마취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그럴 경우 진통제 정도로 끝나고 말지.  

고통의 정도는 유감이지만 뼈가 부러지는 정도의 통증과 비슷할 걸세.”

“마취 없이 시술을 한다는 게 가능합니까?”

“옛날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동남아에서는 흔하게 행해지던 일이네.”

방귀소리와 함께 배변주머니가 약간 부풀어 올랐다. 군의관에게 인공항문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다.

“마취를 하고 수술했을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없네. 왜냐하면 병원이 아니면 국소마취제를 구할 수도 없고 음성적으로라도 국소마취제를 구했다손 치더라도 자궁 경부 주변 차단마취를 시술하다 잘못해서 혈관이라도 찌르면,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주사하여 국소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면 큰일이 나지.  

차단마취를 시술하기 위해선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깊이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위치도 정해져 있지. 마취제가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야.  

불법 시술업자들은 임산부가 국소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거나 독성증상이 나타나도 어떻게 손을 쓸 시설도 못 갖추고 있을 걸세. 그렇다고 불법 낙태업자들이 구급차를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

 

비통한 기분이 되었다.  

 

박사가 간 후 홀로 남아서 맥주를 몇 병 더 마셨다. 혼자 마신 맥주들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맥주에 취했다. 맥줏집을 나와 계단을 걸어 내려오자마자 어지러워졌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고 머리도 아팠다. 구토가 나오려 했다. 점점 눈앞이 희미해졌다.  

나는 천천히 주저앉아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내가 누워 있다는 것 외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 느낌도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곧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지나갔다. 식은땀으로 번들거리는 배변주머니가 한쪽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서서히 일어서서 걸었다. 처음엔 비틀거렸으나 한 모퉁이를 돌자 정상적인 표정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들렀다가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는, 예숙이가 일하는 룸살롱에 갔다. 양주는 사양하고 병맥주 몇 병을 시켰다. 안주는 역시 손님들이 먹다 남긴 마른안주 부스러기였다.

그녀가 말했다.  

“처음엔 젠틀해서 좋아했는데 이젠 아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  

이른 시간부터 취기가 느껴지는 말투였고, 태도가 다소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를 교과서 취급하고 있었다.

그녀가 덧붙였다. 자기는 이제까지 나한테 대단한 특혜를 주고 있으며, 그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영문을 몰라 하자 그녀는 여기 오는 모든 손님들은 양주를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는 양주의 안주로 쓰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여길 올 때마다 달랑 병맥주 5병씩만 시켰기 때문에, 또 자기가 그것을 허용해주었기 때문에 자기 입장도 무척 난처하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오늘은 돈이 없어서 안 되지만 다음부터는 올 때 양주를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중요한 건 양주가 아니라 내가 베풀어준 호의란 말이에요. 사람이 호의를 베풀 땐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지 술에 취한 내 머리로는 파악이 되질 않았다. 단지 아내가 죽을 때 겪었을지도 모르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 만이 생각났다. 나는 예숙이의 눈치를 보다가 계산을 하고 적당히 빠져나왔다.

그날 밤새 방귀가 나왔다. 자주 배변주머니에서 가스를 빼내려고 일어나야만 했다. 가스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기분 때문에 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기색전이라... 공기와는 상관없지만 색전(embolism)이라는 말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장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야전병원에서였다. 내가 수술을 마치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옆엔 두 다리가 부러진 병사가 누워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했다.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는 장갑차 위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달리던 장갑차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양쪽 허벅지가 부러졌다고 했다. 부러진 두 다리에 피가 쏠릴 때면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도 했다.  

멀쩡하던 그가 다음날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더니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그날 저녁때 군의관이 오더니 그가 지방색전(fat embolism syndrom)으로 죽었다고 했다. 양 허벅지 뼈가 부러지면서 뼛속의 골수성분이나 지방성분이 흘러나와 정맥을 타고 폐로 들어가서, 아주 드문 일이지만 폐를 통과한 다음, 동맥으로 흘러들어가 중요한 혈관들을 막았다고 했다.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운이 없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빗소리와 함께 서서히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웬 여자가 술에 취해 내 방문을 두들겼다.

“그 여자도 할 짓 다 하던 걸요!”라고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나를 비난했다. 예숙이였다. 그 여자란 내 아내를 말하는 것이리라.

왜 자기를 소 닭 보듯 하냐고도 했다.

그녀가 계속 떠들어댔기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비에 흠뻑 젖은 그녀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그냥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왜 냉담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려주면 조용히 하겠느냐고 이야기하고 셔츠를 들어 올려 가스가 약간 찬 배변 주머니를 공개했다.

“2028년 겨울, 평양시가전에서 얻은 부상이다. 내가 널 소 닭 보듯 하는 이유는 널 여자로 보지 않아서도 아니고 죽은 아내에 대해 죄 짓는 것 같아서도 아니다.  

전에 훈장을 탄 이야기를 했었지? 이건 훈장의 대가다. 항문은 막혀 있고 항상 이 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하지. 게다가 난 성욕을 느끼지도 못하고 남성로서의 기능도 잃었어. 왜냐하면 총알이 아랫배로 들어가서 궁둥이로 나왔기 때문이지.
나보고 점잖은 손님이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내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 테고. 나의 점잖음은 내 부상의 후유증에서 나오는 것이야. 그러니 진짜로 점잖은 것은 아니지.”

 

류씨네 방의 문이 열렸다가 조용히 닫혔다.
갑자기 내 모습이,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만두자.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갔다.

밤새 그녀가 토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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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싶은 것은 과연 부검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점이나 모순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있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이 결과만으로 사인이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고 말할 수 없네.  

왜냐하면 사후 재분포 현상(postmortem redistribution) 때문이지.”

 

“사후...현상이요?”

“사후 재분포 현상.”

그가 이야기한 사후 재분포 현상이란 이러한 내용이었다.

 

사후 재분포 현상이란, 죽은 후 몸 안에서 약물의 혈중농도의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인이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는 것은 즉, 죽을 당시에 트로포프라민의 혈중농도가 치사량 이상이었는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사망한 후에 부검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의 혈중농도로부터 알아내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사후 재분포 현상이 일어나는 약물에서, 사망 이후 부검에서 채취한 혈액의 혈중농도로 사망 당시의 약물의 혈중농도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방금 말했듯이 죽은 후에 약물의 혈중농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혈액은 순환을 멈춘다. 이 상태에서 많은 약물들의 경우에 사후 재분포(postmortem redistribution)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폐와 간, 심장근육 같이 약물을 풍부하게 머금고 있던 장기들로부터 약물성분이 주변 혈관 ( 즉, 폐동맥, 폐정맥, 심장내의 혈액 등 ) 으로 확산된다.  

또한 위장이나 소장에 아직 약물이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면, 이곳에서도 주변 혈관으로의 이동이 일어난다.  

 따라서 시간이 경과할수록, 사망 당시보다 중심부 혈관 내 약물의 혈중농도가 올라간다. 죽은 지 몇 시간 후부터 이런 현상은 이미 시작되며, 심한 경우, 약물의 종류에 따라, 또한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십수 배의 증가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죽기 전에 치료량 수준의 약물을 복용했지만 죽은 후에 치사량을 넘기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약물들 중의 하나가 바로 트로포프라민이다.

게다가 사후 재분포는 시신의 부위마다 그 정도가 다 다르게 일어난다. 예를 들면, 심장과 대퇴부 정맥과 쇄골하정맥 세 군데에서 채취한 혈액들에서 약물의 혈중농도는 서로 제각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부검에서는 심장에서 채취한 혈액만으로 혈중농도를 뽑아 놓고선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다.

 

사후 재분포 현상이 일어나는 약물들의 경우에 심장혈로 어떤 종류의 약물 성분이 나오는지 검사하는 데엔 문제가 없겠지만 심장혈로만 약물의 혈중 농도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 양쪽 대퇴부 정맥과 쇄골하 정맥, 간 등 여러 군데에서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검토했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 혈중농도로 나온 수치는 죽을 당시의 혈중농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트로포프라민은 치료량과 치사량 사이의 간격이 다른 약물보다 굉장히 좁다. 이 사건에서 치료량을 복용했는지 치사량을 넘어서는 양을 복용했는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사인을 알 수 있을까요?”

“사인불명이란 결론이 옳을 것이네.”

“불법시술에 따른 합병증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그는 공기색전증(air embolism)이 의심되나 이틀 전에 받은 시술로 인해 공기색전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낙태의 합병증으로 인한 공기색전증은 순식간에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틀이 아니라 죽기 직전에 시술을 받았다면?”

그렇다면 공기색전증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그는 대답했다. 공기가 자궁을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낙태시술시 진공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날 수도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 경우처럼 흡입 낙태(vacuum aspiration abortion)를 시도한다면, 그리고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흡입 낙태기구를 쓴다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

“흡입 낙태라뇨?”

“흡입 낙태란, 전기펌프나 수동식 펌프로 흡인력을 발생시켜 자궁 안의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임신 초기에 사용되는 낙태법이지. 전기식의 경우, 전기펌프의 흡입구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으며 이 튜브의 끝은 자궁 안으로 들어가 있게 되며 이어서 내용물이 흡입된다네.  

전신마취가 필요 없으며 15분 이내에 낙태시술 자체는 완료되지.”

 

나는 공기색전증에 대해 더 물었다. 그가 설명했다.

“임신한 자궁에는 혈액이 흐르는 작고 불규칙적인 통로들이 많이 생기는데 이곳을 통해 공기가 들어갈 수 있지.

히긴슨식 주사기(Higginson's syringe)라는 물건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관장을 하는 기구이네. 사실 주사기라기보다는 손으로 쥐어짜서 공기를 불어넣는 단순한 고무 펌프이지. 아주 먼 옛날에 몇몇 국가에서 이것이 불법낙태를 위해 사용되던 때가 있었네.

임신을 하게 되면 자궁 안에는 태아와 태아를 감싸는 여러 조직들이 생겨나게 된다네. 그리고 말했듯이 자궁내막에는 혈액이 흐르는 작은 통로(uterine sinus, 자궁굴)들이 많이 생기게 되지.  

그 옛날의 히긴슨식 주사기를 사용했던 불법낙태는, 낙태를 일으키기 위해 태아막과 자궁벽 사이를 떼어 놓을 목적으로, 자궁 안으로 비눗물을 불어넣는 것이었다네. 비눗물은 높은 압력으로 들어가게 되지.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비눗물엔 종종 실수로 인해 공기가 거품의 형태로 섞여 들어가게 된다네. 공기가 섞인 비눗물을 불어넣게 되면 태반(placenta)이 떨어져 나가거나 손상되거나, 태아막이 자궁벽으로부터 분리되게 되며 이 과정에서 혈액이 흐르는 작은 통로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이곳으로 공기가 들어간 후, 환자의 정맥 혈관을 타고 들어간다네.  

이 공기들은 심장 우측에 모이며 폐로 들어가는 혈액의 흐름을 막아버리지. 그리하여 산소 공급은 중단되고 심장은 정지하게 된다네. 물론 공기가 아니더라도 비누 성분만으로도 혈관으로 들어가면 치명적이지만.

낙태 목적이든 아니든, 또한 히긴슨식 주사기 사용이 원인이든, 다른 것이 원인이든, 이런 경로로 공기색전증이 일어나면 보통 몇 초에서 몇 분밖에 버티지 못한다네. 그러니 만약 우심에 공기 거품이 모여 있다면 당연히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을 의심해봐야겠지. “

검시보고서의 나머지 내용은 대략 ‘폐에서 패혈성 색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심장 안에 차 있는 공기포말(거품)은 부패에 따른,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문제의 문구를 짚어냈다.

“심장 안에 차 있는 가스의 원인은 둘 중 하나다. 만약 시신이 부패함에 따라 박테리아가 가스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면 공기색전증일 것이네. 하지만 이 기록에선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형성된 가스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나와 있지 않아.”  

 

그는 덧붙여 말했다.

“물론 부패의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가스를 생성해서 그것이 공기색전증과 혼동될 수는 있지만 최근 임신의 흔적, 그리고 낙태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불법 낙태의 후유증으로 공기색전증이 발생했고 이것이 사인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반드시 검토했어야 하는데,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을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배제해 버린 것은 잘못이네.

일단, 심장 안에서 피거품의 존재를 확인했으면 거품 안에 있는 기체가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인지 아니면 자궁으로부터 들어간 실내 공기와 같은 성분인지 구별하는 특별한 실험을 했어야만 하네. 

아니, 이런 검사 이전에 단순하게 심장의 우심방, 우심실에만 거품이 보이는지, 아니면 좌심에도 같은 거품이 보이는지 관찰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문제이지. 공기색전이라면 우심에만 거품이 차 있을 것이고,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라면 심장 전체에 걸쳐 거품이 차 있을 것이네. 왜냐하면 박테리아가 우측 심장에서만 가스를 만들어낼 리가 없기 때문이지. 박테리아가 우심과 좌심을 차별하진 않으니까 말이야.

부검기록을 보면 우심실과 우심방은 팽창되어 있으며 미세한 선홍색 거품으로 차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 반면, 좌심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없었네. 즉, 좌심에 거품이 차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

아마도 경찰에게서 들은 주변정황(우울증 환자라는)에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이 생겨 버린 것 같다. 그래도 거품 속 가스에 대한 테스트는 했어야 했어.

내가 볼 때 노출된 혈액의 통로들(uterine sinuses)을 통해 정맥을 타고 공기가 혈액에 섞여 들어가서 공기색전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네.

문제는 흡입 낙태(suction aspiration)는 공기를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자궁 안의 내용물을 빨아내는 것이라는 게 문제인데...... 아까 말했듯이 전기식 흡입 낙태기구엔 구멍이 두 개 있지.  

하나는 빨아들이는 입구이고 다른 하나는 빨아들인 내용물을 배출하는 출구가 되겠지.  

빨아들이는 입구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고 그 튜브는 임산부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 내용물을 빨아들이게 되며, 흡입된 내용물은 출구를 통해 배출되어 용기 안에 들어가게 되어 있네.  

입구와 출구가 서로 모양이 같고 혼동할 가능성이 있을 때, 만약에 불법시술자가 혼동을 일으켜 튜브가 입구 대신 공기를 배출하는 출구에 연결될 경우, 순식간에 실내공기를 빨아들여 자궁 안으로 불어넣는 결과가 나오게 되겠지.  

그리고 압력으로 튜브가 밀려나오면, 그제서야 정신이 든 시술업자는 아마도 부랴부랴 낙태기구를 끈 다음 다시 정상적으로 튜브를 입구에 연결하고선 흡입시술을 완료하겠지. 희생자는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고, 낙태가 완료될 만한 시점에 죽을 수도 있겠지.  

늦어도 거의 10분 안에는 죽지.  

순식간에 죽는 경우에, 시술업자가 여자가 죽어버린 걸 모르고 이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똑똑해서 죽은 것을 알고서도 계속 흡입시술을 진행하거나, 내 생각엔, 이런 식으로 낙태시술과 공기색전증이 같은 장소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이제 해야 할 일은 과거에 흡입낙태시에 공기색전증이 일어난 사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이유로 공기색전증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거야. 사례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수집할수록 자네 요구대로 재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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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일은 유감이네.”
그가 먼저 고인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미지근한 병맥주와 냉동실에 보관했다 구워서 축축해져버린 노가리를 안주삼아 그의 의견을 들을 준비를 했다.

“술값은 걱정 말게. 내가 내면 되지. 근데 이젠 이런 일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시장에서 닭 잡는 것만 봐도 몇 시간씩 속이 울렁거려서 쳐다보지도 못한다. 휴우, 사람의 조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생닭과 비슷하더군.”

이야기를 들으며 노가리를 뜯었다. 내장이 있던 시커먼 자리에선 비린내가 났다. 이내 손가락에 검은 것이 묻어났다.

소장. 부검실에서 소장을 절개해서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 때는 냄새가 지독하다. 처음 냄새를 맡고선 질식사하는 줄 알았다.  

그 후론 소장을 절개하기 전에 그냥 나와 버리곤 했다. 어차피 소장을 절개할 때쯤이면 부검이 끝날 무렵이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장소를 맥줏집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맨 정신으로 볼 수가 없다. 군의관으로 참전한 후로는.  

예전에 법의학자로서 부검을 할 때는 기계적이고 사무적이었지만 전쟁 후로는 시체를 맨 정신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해졌지. 그때서야 시체가 원래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느껴진 거지.  

시체가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았다. 아마 당신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고 의미를 모를 테지만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네.”

 

그가 검시보고서의 핵심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자궁경부는 기구(dilator)를 사용한 확장의 흔적이 있으며, 볼펜 하나 정도의 굵기로 확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집게(tenaculum)의 자국이 있다.

 

자궁의 크기는 임신 9주의 크기와 일치한다. 매우 최근에 불법적인 낙태시술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궁 내 남아있는 임신산물 ( retained product of conception. 낙태시 부주의로 완전히 비워지지 않고 자궁 내에 남아 있어 합병증을 일으키게 하는, 임신과 함께 생기는 것들. 예를 들면 태아의 신체의 일부 )은 없으며 자궁 안은 깨끗이 비워져 있다. 자궁의 겉 표면은 육안으로 봤을 때 윤기가 흐르며 매끄러웠다. 감염이나 합병증의 흔적은 없다.

자궁과 나팔관, 난소의 어떤 부분에서도 고름이나 감염, 염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악취도 나지 않았다.

복막염의 흔적은 없다.

광범위한 출혈의 흔적은 없다. 자궁경부에 미세한 상처들.  

자궁이나 인접한 내장의 관통된 상처는 없었으며 자궁 내부에 비누 성분이나 다른 독성 성분은 없음. 자궁 안에 투명하고 딱딱한 플라스틱 조각이 돌아다님. 크기는 직경이 0.5cm정도 되었으며 흡입 낙태(vacuum aspiration)에 쓰이는 튜브(cannula)조각으로 확인되었다.“

 

이어서 그는 독극물 검사에 대해 결과를 요약했다.

심장혈(심장에서 채취한 혈액)의 혈액 샘플에서 검출된 약물들은 4종류이다. 1종류의 항불안제, 2종류의 항우울제, 1종류의 기분안정제 중 1종류의 항우울제, 즉 트로포프라민(가공의 항우울제)은 치사량을 훌쩍 초과, 치료농도의 무려 9배가량이 나왔다.  

사인은 이 트로포프라민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중독사로 되어 있다. 나머지 한 종류의 항우울제는 치료 농도보다 몇 배나 많은 량이 검출되기는 했으나 치사량과는 거리가 있다. 나머지 약물들은 적정한 치료에 필요한 치료량 이내이다.

 

위 내용물에 얼마만큼의 약물이 남아 있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그가 물었다.

“예전에도 과다 복용한 적이 있었는가? “

“내가 알기론 없었습니다. 자살 시도도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과연 부검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점이나 모순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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