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싶은 것은 과연 부검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점이나 모순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있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이 결과만으로 사인이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고 말할 수 없네.
왜냐하면 사후 재분포 현상(postmortem redistribution) 때문이지.”
“사후...현상이요?”
“사후 재분포 현상.”
그가 이야기한 사후 재분포 현상이란 이러한 내용이었다.
사후 재분포 현상이란, 죽은 후 몸 안에서 약물의 혈중농도의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인이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는 것은 즉, 죽을 당시에 트로포프라민의 혈중농도가 치사량 이상이었는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사망한 후에 부검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의 혈중농도로부터 알아내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사후 재분포 현상이 일어나는 약물에서, 사망 이후 부검에서 채취한 혈액의 혈중농도로 사망 당시의 약물의 혈중농도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방금 말했듯이 죽은 후에 약물의 혈중농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혈액은 순환을 멈춘다. 이 상태에서 많은 약물들의 경우에 사후 재분포(postmortem redistribution)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폐와 간, 심장근육 같이 약물을 풍부하게 머금고 있던 장기들로부터 약물성분이 주변 혈관 ( 즉, 폐동맥, 폐정맥, 심장내의 혈액 등 ) 으로 확산된다.
또한 위장이나 소장에 아직 약물이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면, 이곳에서도 주변 혈관으로의 이동이 일어난다.
따라서 시간이 경과할수록, 사망 당시보다 중심부 혈관 내 약물의 혈중농도가 올라간다. 죽은 지 몇 시간 후부터 이런 현상은 이미 시작되며, 심한 경우, 약물의 종류에 따라, 또한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십수 배의 증가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죽기 전에 치료량 수준의 약물을 복용했지만 죽은 후에 치사량을 넘기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약물들 중의 하나가 바로 트로포프라민이다.
게다가 사후 재분포는 시신의 부위마다 그 정도가 다 다르게 일어난다. 예를 들면, 심장과 대퇴부 정맥과 쇄골하정맥 세 군데에서 채취한 혈액들에서 약물의 혈중농도는 서로 제각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부검에서는 심장에서 채취한 혈액만으로 혈중농도를 뽑아 놓고선 트로포프라민 중독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다.
사후 재분포 현상이 일어나는 약물들의 경우에 심장혈로 어떤 종류의 약물 성분이 나오는지 검사하는 데엔 문제가 없겠지만 심장혈로만 약물의 혈중 농도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 양쪽 대퇴부 정맥과 쇄골하 정맥, 간 등 여러 군데에서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검토했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 혈중농도로 나온 수치는 죽을 당시의 혈중농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트로포프라민은 치료량과 치사량 사이의 간격이 다른 약물보다 굉장히 좁다. 이 사건에서 치료량을 복용했는지 치사량을 넘어서는 양을 복용했는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사인을 알 수 있을까요?”
“사인불명이란 결론이 옳을 것이네.”
“불법시술에 따른 합병증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그는 공기색전증(air embolism)이 의심되나 이틀 전에 받은 시술로 인해 공기색전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낙태의 합병증으로 인한 공기색전증은 순식간에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틀이 아니라 죽기 직전에 시술을 받았다면?”
그렇다면 공기색전증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그는 대답했다. 공기가 자궁을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낙태시술시 진공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날 수도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 경우처럼 흡입 낙태(vacuum aspiration abortion)를 시도한다면, 그리고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흡입 낙태기구를 쓴다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
“흡입 낙태라뇨?”
“흡입 낙태란, 전기펌프나 수동식 펌프로 흡인력을 발생시켜 자궁 안의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임신 초기에 사용되는 낙태법이지. 전기식의 경우, 전기펌프의 흡입구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으며 이 튜브의 끝은 자궁 안으로 들어가 있게 되며 이어서 내용물이 흡입된다네.
전신마취가 필요 없으며 15분 이내에 낙태시술 자체는 완료되지.”
나는 공기색전증에 대해 더 물었다. 그가 설명했다.
“임신한 자궁에는 혈액이 흐르는 작고 불규칙적인 통로들이 많이 생기는데 이곳을 통해 공기가 들어갈 수 있지.
히긴슨식 주사기(Higginson's syringe)라는 물건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관장을 하는 기구이네. 사실 주사기라기보다는 손으로 쥐어짜서 공기를 불어넣는 단순한 고무 펌프이지. 아주 먼 옛날에 몇몇 국가에서 이것이 불법낙태를 위해 사용되던 때가 있었네.
임신을 하게 되면 자궁 안에는 태아와 태아를 감싸는 여러 조직들이 생겨나게 된다네. 그리고 말했듯이 자궁내막에는 혈액이 흐르는 작은 통로(uterine sinus, 자궁굴)들이 많이 생기게 되지.
그 옛날의 히긴슨식 주사기를 사용했던 불법낙태는, 낙태를 일으키기 위해 태아막과 자궁벽 사이를 떼어 놓을 목적으로, 자궁 안으로 비눗물을 불어넣는 것이었다네. 비눗물은 높은 압력으로 들어가게 되지.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비눗물엔 종종 실수로 인해 공기가 거품의 형태로 섞여 들어가게 된다네. 공기가 섞인 비눗물을 불어넣게 되면 태반(placenta)이 떨어져 나가거나 손상되거나, 태아막이 자궁벽으로부터 분리되게 되며 이 과정에서 혈액이 흐르는 작은 통로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이곳으로 공기가 들어간 후, 환자의 정맥 혈관을 타고 들어간다네.
이 공기들은 심장 우측에 모이며 폐로 들어가는 혈액의 흐름을 막아버리지. 그리하여 산소 공급은 중단되고 심장은 정지하게 된다네. 물론 공기가 아니더라도 비누 성분만으로도 혈관으로 들어가면 치명적이지만.
낙태 목적이든 아니든, 또한 히긴슨식 주사기 사용이 원인이든, 다른 것이 원인이든, 이런 경로로 공기색전증이 일어나면 보통 몇 초에서 몇 분밖에 버티지 못한다네. 그러니 만약 우심에 공기 거품이 모여 있다면 당연히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을 의심해봐야겠지. “
검시보고서의 나머지 내용은 대략 ‘폐에서 패혈성 색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심장 안에 차 있는 공기포말(거품)은 부패에 따른,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문제의 문구를 짚어냈다.
“심장 안에 차 있는 가스의 원인은 둘 중 하나다. 만약 시신이 부패함에 따라 박테리아가 가스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면 공기색전증일 것이네. 하지만 이 기록에선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형성된 가스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나와 있지 않아.”
그는 덧붙여 말했다.
“물론 부패의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가스를 생성해서 그것이 공기색전증과 혼동될 수는 있지만 최근 임신의 흔적, 그리고 낙태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불법 낙태의 후유증으로 공기색전증이 발생했고 이것이 사인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반드시 검토했어야 하는데,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을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배제해 버린 것은 잘못이네.
일단, 심장 안에서 피거품의 존재를 확인했으면 거품 안에 있는 기체가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인지 아니면 자궁으로부터 들어간 실내 공기와 같은 성분인지 구별하는 특별한 실험을 했어야만 하네.
아니, 이런 검사 이전에 단순하게 심장의 우심방, 우심실에만 거품이 보이는지, 아니면 좌심에도 같은 거품이 보이는지 관찰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문제이지. 공기색전이라면 우심에만 거품이 차 있을 것이고, 박테리아가 생성한 가스라면 심장 전체에 걸쳐 거품이 차 있을 것이네. 왜냐하면 박테리아가 우측 심장에서만 가스를 만들어낼 리가 없기 때문이지. 박테리아가 우심과 좌심을 차별하진 않으니까 말이야.
부검기록을 보면 우심실과 우심방은 팽창되어 있으며 미세한 선홍색 거품으로 차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 반면, 좌심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없었네. 즉, 좌심에 거품이 차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
아마도 경찰에게서 들은 주변정황(우울증 환자라는)에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이 생겨 버린 것 같다. 그래도 거품 속 가스에 대한 테스트는 했어야 했어.
내가 볼 때 노출된 혈액의 통로들(uterine sinuses)을 통해 정맥을 타고 공기가 혈액에 섞여 들어가서 공기색전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네.
문제는 흡입 낙태(suction aspiration)는 공기를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자궁 안의 내용물을 빨아내는 것이라는 게 문제인데...... 아까 말했듯이 전기식 흡입 낙태기구엔 구멍이 두 개 있지.
하나는 빨아들이는 입구이고 다른 하나는 빨아들인 내용물을 배출하는 출구가 되겠지.
빨아들이는 입구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고 그 튜브는 임산부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 내용물을 빨아들이게 되며, 흡입된 내용물은 출구를 통해 배출되어 용기 안에 들어가게 되어 있네.
입구와 출구가 서로 모양이 같고 혼동할 가능성이 있을 때, 만약에 불법시술자가 혼동을 일으켜 튜브가 입구 대신 공기를 배출하는 출구에 연결될 경우, 순식간에 실내공기를 빨아들여 자궁 안으로 불어넣는 결과가 나오게 되겠지.
그리고 압력으로 튜브가 밀려나오면, 그제서야 정신이 든 시술업자는 아마도 부랴부랴 낙태기구를 끈 다음 다시 정상적으로 튜브를 입구에 연결하고선 흡입시술을 완료하겠지. 희생자는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고, 낙태가 완료될 만한 시점에 죽을 수도 있겠지.
늦어도 거의 10분 안에는 죽지.
순식간에 죽는 경우에, 시술업자가 여자가 죽어버린 걸 모르고 이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똑똑해서 죽은 것을 알고서도 계속 흡입시술을 진행하거나, 내 생각엔, 이런 식으로 낙태시술과 공기색전증이 같은 장소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이제 해야 할 일은 과거에 흡입낙태시에 공기색전증이 일어난 사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이유로 공기색전증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거야. 사례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수집할수록 자네 요구대로 재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