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고통스러웠을까요?”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태 후에, 또는 낙태 중에 죽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순식간에 죽었다면, 그래서 이미 죽은 후에 흡입시술이 이루어졌다면 고통은 없었을 테지.”

“만약 낙태 후에 죽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박사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 흡입 낙태는 전신마취는 안 하고 자궁 경부 주변에 차단마취(paracervical block)를 하지만 불법일 경우는 아예 마취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그럴 경우 진통제 정도로 끝나고 말지.  

고통의 정도는 유감이지만 뼈가 부러지는 정도의 통증과 비슷할 걸세.”

“마취 없이 시술을 한다는 게 가능합니까?”

“옛날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동남아에서는 흔하게 행해지던 일이네.”

방귀소리와 함께 배변주머니가 약간 부풀어 올랐다. 군의관에게 인공항문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다.

“마취를 하고 수술했을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없네. 왜냐하면 병원이 아니면 국소마취제를 구할 수도 없고 음성적으로라도 국소마취제를 구했다손 치더라도 자궁 경부 주변 차단마취를 시술하다 잘못해서 혈관이라도 찌르면,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주사하여 국소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면 큰일이 나지.  

차단마취를 시술하기 위해선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깊이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위치도 정해져 있지. 마취제가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야.  

불법 시술업자들은 임산부가 국소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거나 독성증상이 나타나도 어떻게 손을 쓸 시설도 못 갖추고 있을 걸세. 그렇다고 불법 낙태업자들이 구급차를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

 

비통한 기분이 되었다.  

 

박사가 간 후 홀로 남아서 맥주를 몇 병 더 마셨다. 혼자 마신 맥주들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맥주에 취했다. 맥줏집을 나와 계단을 걸어 내려오자마자 어지러워졌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고 머리도 아팠다. 구토가 나오려 했다. 점점 눈앞이 희미해졌다.  

나는 천천히 주저앉아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내가 누워 있다는 것 외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 느낌도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곧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지나갔다. 식은땀으로 번들거리는 배변주머니가 한쪽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서서히 일어서서 걸었다. 처음엔 비틀거렸으나 한 모퉁이를 돌자 정상적인 표정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들렀다가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는, 예숙이가 일하는 룸살롱에 갔다. 양주는 사양하고 병맥주 몇 병을 시켰다. 안주는 역시 손님들이 먹다 남긴 마른안주 부스러기였다.

그녀가 말했다.  

“처음엔 젠틀해서 좋아했는데 이젠 아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  

이른 시간부터 취기가 느껴지는 말투였고, 태도가 다소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를 교과서 취급하고 있었다.

그녀가 덧붙였다. 자기는 이제까지 나한테 대단한 특혜를 주고 있으며, 그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영문을 몰라 하자 그녀는 여기 오는 모든 손님들은 양주를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는 양주의 안주로 쓰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여길 올 때마다 달랑 병맥주 5병씩만 시켰기 때문에, 또 자기가 그것을 허용해주었기 때문에 자기 입장도 무척 난처하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오늘은 돈이 없어서 안 되지만 다음부터는 올 때 양주를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중요한 건 양주가 아니라 내가 베풀어준 호의란 말이에요. 사람이 호의를 베풀 땐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지 술에 취한 내 머리로는 파악이 되질 않았다. 단지 아내가 죽을 때 겪었을지도 모르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 만이 생각났다. 나는 예숙이의 눈치를 보다가 계산을 하고 적당히 빠져나왔다.

그날 밤새 방귀가 나왔다. 자주 배변주머니에서 가스를 빼내려고 일어나야만 했다. 가스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기분 때문에 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기색전이라... 공기와는 상관없지만 색전(embolism)이라는 말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장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야전병원에서였다. 내가 수술을 마치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옆엔 두 다리가 부러진 병사가 누워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했다.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는 장갑차 위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달리던 장갑차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양쪽 허벅지가 부러졌다고 했다. 부러진 두 다리에 피가 쏠릴 때면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도 했다.  

멀쩡하던 그가 다음날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더니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그날 저녁때 군의관이 오더니 그가 지방색전(fat embolism syndrom)으로 죽었다고 했다. 양 허벅지 뼈가 부러지면서 뼛속의 골수성분이나 지방성분이 흘러나와 정맥을 타고 폐로 들어가서, 아주 드문 일이지만 폐를 통과한 다음, 동맥으로 흘러들어가 중요한 혈관들을 막았다고 했다.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운이 없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빗소리와 함께 서서히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웬 여자가 술에 취해 내 방문을 두들겼다.

“그 여자도 할 짓 다 하던 걸요!”라고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나를 비난했다. 예숙이였다. 그 여자란 내 아내를 말하는 것이리라.

왜 자기를 소 닭 보듯 하냐고도 했다.

그녀가 계속 떠들어댔기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비에 흠뻑 젖은 그녀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그냥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왜 냉담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려주면 조용히 하겠느냐고 이야기하고 셔츠를 들어 올려 가스가 약간 찬 배변 주머니를 공개했다.

“2028년 겨울, 평양시가전에서 얻은 부상이다. 내가 널 소 닭 보듯 하는 이유는 널 여자로 보지 않아서도 아니고 죽은 아내에 대해 죄 짓는 것 같아서도 아니다.  

전에 훈장을 탄 이야기를 했었지? 이건 훈장의 대가다. 항문은 막혀 있고 항상 이 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하지. 게다가 난 성욕을 느끼지도 못하고 남성로서의 기능도 잃었어. 왜냐하면 총알이 아랫배로 들어가서 궁둥이로 나왔기 때문이지.
나보고 점잖은 손님이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내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 테고. 나의 점잖음은 내 부상의 후유증에서 나오는 것이야. 그러니 진짜로 점잖은 것은 아니지.”

 

류씨네 방의 문이 열렸다가 조용히 닫혔다.
갑자기 내 모습이,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만두자.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갔다.

밤새 그녀가 토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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