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입니다.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그녀는 업소에도 나가지 않고 앓아누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다.
걱정되어서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간 내 앞에 그녀가 누워 있었다.
내게는 ‘고인에 대해 욕되게 해서 미안하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라고 말했다.
같은 구조인데도 그녀의 방은 내 방보다 더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 방에는 없는 거울이 부엌에 걸려 있었다. 출소 후 처음으로 거울을 봤다. 낯선 이가 거울 속에 있었다.
속옷을 이틀에 한 번씩은 갈아입을 작정으로 길거리에서 속옷을 몇 벌 샀다.
벌써 길거리에서는 빨간 홍옥을 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싶어졌다. 팬티와 러닝셔츠는 땀에 흠뻑 젖고 다시 마르고 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 팬티와 러닝셔츠를 몸에서 떼어내고 오랜만에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몸에 조금씩 부었다.
몸에 붙어 있던 속옷의 섬유질들이 때를 미는 대로 국수 가락처럼 말려 떨어져 나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샤워를 마친 후 새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감옥에서 나와서 오히려 살이 많이 빠져서 배변 주머니가 인공항문에 잘 맞지 않아 다시 조절을 해야 했다.
물 담은 세숫대야를 수십 번 들었더니 허기가 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사탕을 몇 개 더 뜯어 먹었다.
최대한 배변 주머니를 아끼기 위해서 하루 한 끼만 먹기를 계속했더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는지 이제 가을철인데도 방 안에 있으면 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
오후가 되어 다시 예숙이의 방에 들어가서 보았더니, 그녀의 사색이 되었던 낯빛에 약간 생명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술을 무척 많이 마셨나 봐. 적당히 하지.”
“진상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줘서......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렇지.”
나의 충고는 바보스러웠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내 눈치 보지 말고 대답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남자와 함께 집에 온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굴은 못 봤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단다.
“왜냐하면 무전기 같은 것에서 쉴 새 없이 소리가 흘러나왔고, 가끔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으니까.”
이번엔 그녀가 내게 물었다.
“인공항문 때문에 많이 우울한가요?”
다소 복잡한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지옥에서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 다음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또 생각이 다르다.
앞으로 배설하든지 뒤로 배설하든지 본질은 변하지 않아. 단지 위치만 바뀔 뿐이지.
만약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인생에서 달라지는 것이 몇 가지나 있을까? 좀 더 편해지겠지만 의외로 달라지는 것이 많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원래 세상이 띄고 있는 회색빛 색조를 제대로 감상하게 되는 것이지. 결국 더 우울해지고 말겠지.”
“아저씨가 감옥에 갈 만한 짓을 했다고는 상상이 안 되는데......”
“성기능을 회복시켜 주겠다며 사기 치던 놈을 바보같이 믿다가 전기구이가 될 뻔했지. 그것도 세 차례에 걸쳐. 나중에 원리를 알고 보니 전기 충격기를 개조한 것이었어.
병원에 물어보니 ‘전기 자극을 어디다 준다는 말인가? 신경이고 전립샘이고 다 없어져서 그런 방법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고.
없는 신경에 어떻게 자극을 주느냐는 것이지.
그래서 권총을 들고 가서 위협사격을 한 뒤, 죽지 않을 만큼 그 사기꾼을 패줬지. 문제는 그 ‘죽지 않을 만큼’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녀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질 듯했다.
“그럼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우울한가요?”
“모르겠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성욕을 느끼는 것과 못 느끼는 것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우울하다. 그것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 내가 다시 성욕을 느낀다고 해도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이진 않을 듯하구나.”
“그럼 왜 돌팔이를 찾아갔었어요?”
“내가 돌팔이를 찾아갔던 것은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였어. 나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