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배경은 근미래입니다.  

 

막상 아내의 통장을 열어보니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그리 흔하지 않은 돼지의 이름이 통장에 가득했다. 통장의 내용으로 보아하니,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생활비 정도의 돈을 아내에게 송금해오고 있었으며 총 일 년 반 동안이나 송금은 계속되었다.  

최근 석 달 전까지 송금은 계속되었고, 한 동안 중단되었다가 아내가 죽기 2주일 전에 한꺼번에 매달치의 여섯 배의 돈이 들어왔다. 그 돈은 아내가 죽기 하루 전인 30일에 인출이 되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입이 달려 일제히 ‘바보’라고 내게 외치는 듯했다. 
 

돼지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퇴근 후에 만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난 돈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예전에 자주 들렀던 그 다방에서 보자고 했다. 

돼지가 다방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에게 내가 물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했다.  

“이모는 그만두었나요?”

곧이어 맨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앉자마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곧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난 그에게 통장을 보여 주고는 내 아내의 통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통장에서 확인했으니 이제 내 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설마 자네와 아무 상관도 없는 태아를 지우기 위해 거액을 송금해준 건 아니겠지?”

돼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침 커피가 나오자 우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기계적으로 커피에 설탕을 탔고 크림을 넣어 휘저었다.

난 다시 물었다. “내 아내와는 언제부터 사귀었나?”

그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는다. 2년 정도? 어느 날 전화를 하더군. 나한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 이 다방에 다시 나온다고 하더라.  

난 계획적이지 않았다. 형편 되는대로 그때마다 그냥 도와줬지. 근데 어느 날은 고맙다고 선물을 사들고 오더라.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녀가 그러더군.  

처음엔 당신이 자기가 생각하던 천국과 같은 천국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더라. 근데 살아 보니 자기가 생각하던 천국이 당신이 이야기하던 천국과 다르더라고 하더군.”        

 

난 31일 밤에 낙태 시술이 이루어졌다는 증언을 확보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통장에 아내가 사망하기 약 2주 전에 입금된 불법 낙태 비용은 30일에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과연 시술업자가 29일에 시술을 하고 그 다음날 돈을 받았을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니 시술을 31일 밤에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네 생각엔 31일 밤에 낙태 시술을 받은 지 몇 시간 안에 자살했다는 것이 논리적인가 아니면 그 날 밤 낙태 시술 중에 즉사했다는 것이 논리적인가?”

 

“당신 말을 들으니 자살이 아닌 것 같군.”

“처음부터 자살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나?”

“맹세코 몰랐네. 지금까지 그 놈이 29일에 온 줄 알았다. 29일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날이 맞는다면 시술에서 사망까지 이틀간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공기색전증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놈이라니, 낙태업자를 알고 있나?”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네가 알선을 한 게로구나.”

“예전에 내 정보 제공원이었네.”

“네가 알고 있는 날짜보다 이틀 뒤에서야 낙태가 이루어졌다. 31일 밤에 그 놈이 와서 낙태 시술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화연락은 없었는가?”

“없었네. 그녀의 전화번호를 직접 알려 줬다. 그녀에게도 그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네 의견대로 그녀가 자살했다 하더라도 죄책감은 느꼈을 것 아닌가?”

“그녀는 우울증 환자였지 않은가? 불륜에 대한 죄책감은 물론 가지고 있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도 물론 받았고.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이미 몇 달 전에 끝나 있었어.”

잠시 그는 관계가 끝난 것은 그녀가 죽기 벌써 몇 달 전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낙태를 원한 건 너였나? 아내였나?”

“맹세코 그녀였다. 알지 않는가? 그녀는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해, 그리고 주변 환경에 대해 항상 완전히 통제를 할 수 있기를 바랐지, 그치? 난 승진도 앞두고 있네. 이 일이 아니면 승진이 예상된다네.
동기 중에선 최초로 그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 자리에 오르면 정책을 세울 수도 있네. 강력한 치안정책으로 불법낙태시술업자들을 깡그리 잡아들일 수도 있지. 이 일이 나와 연관되는 것은 나로선 감당하기 힘들다네.”

 

내가 물었다.
“연관되는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불법낙태의 알선인데 단지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가?”

“그래, 그 말이 옳겠지.”

그가 당황스런 미소를 지었다.

“난 그 놈을 잡아들이길 원한다. 그러려면 재수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재수사를 하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불륜과 낙태시술을 알선한 사실을 공개할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당신 친구인 나까지 잡혀가길 원하는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와 내가.” 내가 반문했다.

“내게 계획이 있다.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일단 들어 봐라.”

그는 이번 사건은 자살로 그냥 덮어두고, 그 대신 낙태 비용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보상으로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비교적 가까운, 다른 도시에 있는 시술업자는 자기와 연락이 되고 예전에 자기의 끄나풀이었기 때문에 뒤를 많이 봐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이거 봐, 친구. 내가 지불한 금액이 거마비에다 위험수당까지 포함해서 굉장히 많다. 통장을 보면 알겠지만.  

지불한 금액의 몇 배를 위약금으로 주도록 내가 이야기를 해서 서로 정리를 하게 해줄 테니 그 돈으로 뭘 하나 차리던가 하면 어떨까?  

그리고서 그 자가 다음에 불법낙태를 저지를 때 현장을 덮치면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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