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변 주머니에 약간의 개조를 했다. 일단 반투명한 주머니 안의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안쪽을 변 색깔과 유사한 찰흙으로 얇게 발랐다. 그 안에 마카로프 권총을 넣자 느낌이 묵직했다. 너무 묵직해서 배변 주머니의 접착판이 인공항문에서 떨어지려 했기 때문에, 복대를 구해서 배변 주머니를 지지하는 역할로 배에 차야만 했다.

이것을 차면 배변 주머니로서의 역할을 기대해선 안 된다. 막상 시술업자를 만날 때만 이것을 찰 생각이다.

류 씨에게 예숙이와 둘이 며칠 단풍구경을 하고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류 씨가 미소를 띤 채 ‘날씨가 참 좋지요? 나도 따라가고 싶네.’라고 했다.

 

마지막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렌트카를 한 대 마련했다. 그리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경찰차에 비하면 호화로운 편이었다.

몇 달치의 배변주머니를 살 돈마저 남김없이 가지고 가기로 했다. 얼마 되지도 않지만.

비록 류 씨에겐 단풍구경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예숙이에게 말했듯이, 목적지인 도시의 외곽에 있는, 놀이기구들과 동물원이 있는 유원지를 구경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떠났다. 막상 그 유원지에 도착해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분위기는 유원지라기보다 절간 같았다.

 

동물원에 먼저 갔는데 노루 두 마리가 맨 처음 우리를 맞이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군데군데 털이 빠지고 눈곱이 낀 눈에는 졸음이 가득한, 그런 모습으로 길게 누운 채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동물원에서 한 10년은 묵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외에는 처음 보는 동물들이 태반이었는데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직 퀴퀴한 냄새만이 인상적이어서 놀이기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어느 놀이기구가 가장 비명소리가 많이 나는지, 그리고 어느 놀이기구가 타기에 적당한지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는 호칭에 주의를 줬었다. 

 ‘그 자는 소금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지만 자네는 소금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네. 황 사장이라고 불러야지. 이것도 거래인데 피차 예의는 차려야 되지 않겠나?’

 

“별명이 소금쟁이라는군. 특이한 별명이지.” 나는 예숙이에게 말했다.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자가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신경이 쓰였지만 그 자의 시선을 무시해버렸다. 그 자는 한참동안이나 날 쳐다본 다음 예숙이를 훑어보고 길게 한숨을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그 자가 가버린 후 예숙이나 나나 서로 말이 없었다.  

 

돈이 빠듯했다. 일단 예숙이에게 곰인형을 하나 사주었고, 사진사를 불러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숙박비와 기름값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을 써야 했다.

예숙이가 물었다.
“배변주머니 살 돈은 남겨 놨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진 돈을 몽땅 쓸 작정이에요?”

“돈을 받으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돈을 못 받으면 어쩌게? 요강 단지를 안고 다니게요?”

“돈을 못 받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고? 글쎄,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마음속으론 이렇게 외쳤다.
‘어차피 돈을 못 받는 상황이라면 배변주머니가 문제가 아닐 정도의 상태가 될 것이다.’

 

저녁때가 되어서 우리는 하얀 벽을 가진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실락원’이었다.

화장실이 너무 좋아서 샤워가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샤워는 됐다며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누운 채 재잘거렸다.
“근데 그 시술업자 말이에요.”  

예숙이가 불만에 찬 듯 말했다. 

 “자기가 돈을 들고 오든지 통장으로 돈을 송금하든지 할 일이지 왜 아저씨더러 돈을 받으러 오래요?”

욕실에서 옷을 벗으며 나는 말했다. 
 “아마 아쉬운 놈이 오라는 거겠지.”

“사장이라는 것을 보니 끄나풀 정도가 아닌 모양이네요.”

“그런 부류들을 많이 봐서 잘 알고 있다. 처음엔 살벌한 세상으로 보이지만 곧 힘을 기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소롭게 보이지. 그 불법낙태업자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샤워기를 틀었다.

 

다음날 10시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그녀를 깨운 후에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약속장소를 찾아 나섰다.

 

돼지가 가르쳐 준 번호는 그 자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이를테면 대표전화번호인 듯했다.

“황 사장님?”

“황 회장님을 찾는 거예요?”

순간 멈칫했다가 곧 대답을 했다.

“아, 예. 황 회장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오.”

“서울에서 왔어요?”

“예, 재래시장까지 왔소만, 아파트도 보이네요.”

그가 길안내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번 미로에 빠졌고 그 때마다 다시 전화로 물어 봤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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