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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8 ㅣ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18
주강현 지음, 이규경 그림 / 보림 / 1995년 2월
평점 :
절판
요란한 치장이나 덧댄 장식물 하나 없이 나무의 질감만으로 투박하게 빚어낸 우리 민족의 예술품 - 장승! 툭 불거진 눈알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모습도, 맹수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들것만 같은 모습도 마음 편히 들여다 보며 정들이기가 쉽지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난 뒤면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볼수는 있으리라.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산사에 오르는 길목에서 장승을 만났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섰는듯, 늙은이의 주름살처럼 깊숙이 패인 나무의 결이 그 우왁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장승끼리 어깨를 기대어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 초라함 속에서도 부라리는 눈매과 '이 노오옴들~'하며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를듯 벌어진 입매는 와락 무서움이 달려드는 위엄과 권위를 자존심처럼 지키고 있었다.
'엄마! 귀신이야!'라며 꽁무니에 숨기 바쁜 아이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장승에 대한 짧은 상식만으로는 그 무서움을 덜어 줄수 없는게 안타깝기만 했었는데.... 아이들 마음속에 막연한 무서움으로만 기억되어버린 장승의 소박하고 정겨우면서도 넉넉함을 지닌 본연의 모습을 가르쳐준 이 책이 더 없이 고맙기만 하다.
'모셔가세 모셔가세 우리마을 지켜주실 장승나무 모셔가세.' 숲속에서 곧게 자란 나무를 베어 마을로 옮기면서 부르는 노래에는 장승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경외심이 듬뿍 묻어난다. 뚝딱뚝딱, 쿵쾅쿵쾅 장승이 다듬어지고 동구 밖에 세워지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은 정겨운 모습으로 웃고있다. 마을 사람들이 쌀도 걷고 돈도 걷어 제물을 준비하여 장승 앞에 차리고 너 나 할것없이 절을 하고 소원을 빈다. 밤새도록 장구치고 춤추며 흥을 돋우는 이 장승제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의 공동체적인 나눔의 자리매김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구 밖에 우뚝 서서 지나는 길손의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기원을 지키며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장승이 마을 신앙의 상징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면면히 지켜왔다한다. 흐르는 세월을 묵묵히 끌어안고 꼼짝도 않고 서서, 처음 그자리에 세워질때의 그 기원들을 생각하고 있을 아름다운 장승을 만나러 가고싶다. 이제는 무섭다 도망가지 않고 그의 세월을 손 끝으로 느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