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새 학년이 되어 반을 지정받고 나서 복도에 줄을 선다. 평소에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 짝이 되기 위해 몇 번째에 줄을 서야 할지 마음 속으로 헤아려 보기도 하고 '저 아이만큼은 짝이 되지 않았음….'하고 짝이 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 서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있는 듯하다. 손톱 밑에 새까맣게 때가, 꾀죄죄한 옷차림, 어눌한 말투와 뒤떨어지는 학습능력,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물론 확인할 수 없는 복잡한 가정환경에 대한 소문들. 보통 초등학생들이 꺼릴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아이.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다면 어쩌면 우리 또한 따돌렸을 지 모를 아이. 최영대는 예상대로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영대에게 뒤집어 쒸우기도 하고, 영대의 우유를 쏟아 버리기도 하고 또래 모임에 끼워주지 않는 등 별 다른 죄책감없이 괴롭히지만 그때마다 영대는 묵묵히 참아낸다. 그러나 수학여행 간 경주 여관에서 영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제까지의 슬픔과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 영대를 보고 반 아이들도 같이 울고 선생님도 같이 울게 된다. 그 다음 날 버스 안 버스 맨 앞자리에 혼자 앉은 영대에게 아이들은 겸연쩍어하며 박물관에서 산 기념배지를 영대의 옷에 너도 나도 붙여 준다. 아이들 나름의 사과방식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의 경우 삽화의 역할은 지대하다. 내용전달의 보조수단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동화의 감정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책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책 속의 글만 읽는다면 불과 몇 분만에 끝나지만 그림과 함께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이 주는 감동은 배가 된다. 특히 영대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영대의 슬픔이 책을 뚫고 나와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요즘 서점을 둘러 보면 왕따를 소재로 한 동화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의 결말 때문이다. 어찌 보면 따돌림 영대의 울음 한 번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영대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결말은 오히려 시시하거나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따돌림 받던 영대가 특별한 계기나 재주없이 '울음'이라는 근원적인 소재로 왕따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만약 영대가 반대항 달리기 대표로 나가 1등을 하여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다거나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어 아이들이 영대를 받아 준다면 우리 주변의 특별한 이유없이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예를 들면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재주가 없는 아이는 왕따를 당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영대가 지금까지의 서러움에 대한 울음으로 토해내는 것을 보고 아이들 또한 뭔지 모를 슬픔을 느끼고 영대와 함께 울면서 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함께 밤새워 울었던 친구'라는 묘한 동지의식이 생겨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결말이 제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