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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하루에 한, 두권씩의 책은 꼭 읽게 된다.
직장이 가까웠을 때는 집에 와서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를 들어가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에 비하면 직장이 멀어 책을 읽을 시간이 늘어난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박완서!
그 이름만으로 연륜이 묻어나고, 신뢰가 간다.
일흔 살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순수함과 정직함이 책 곳곳에서 묻어나고, 무슨 말이든 포용력있게 받아 줄 것 같은 넉넉함이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나름대로 연계성을 지니면서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고 또 유행을 타지 않는 뚝배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이미 예전의 작품들을 다 읽어서 인지 중간 중간의 내용이 좀 더 쉽게 와 닿고 젊은 날 작가의 성격이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된다.
박완서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50,60년대 하면 전쟁, 보리고개 등 어둡고 궁상맞은 현실을 ‘이렇게 힘들었다’ 는 듯의 하소연이 없고, 또 장면이나 사람을 어둡게 그리지 않으면서 그 시대를 나름대로 관조적으로 표현하는 점이다.
그 궁상스럽고 남루한 시대 현실 속에서 아이러닉하게도 주인공 자체가 그런 궁상스러움을 못견뎌한다는 점이 묘하게 동질의식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주인공의 그런 삶의 태도나 생각들이 당당하고 쿨하여 반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속이 시원스럽다.
과거 당시에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구나, 저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첫사랑의 추억은 여전히 풋풋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또 페이지를 넘기면서, 일흔 살의 작가가 젊은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말들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쉽게 읽히면서도 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그리고 뻔히 내용을 알면서도 계속 읽게 된다.